파랑은 신들의 색이다. 신들은 거대한 창공 속에 거주한다. 이런 믿음은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 다름아닌 이스라엘에서 진실로 간주도었다. 이스라엘에서 유일자인 야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야훼의 왕관은 "사파이어"로 되어 있었다. 남국 하늘의 짙은 파랑 또는 고호가 그의 작품 "별밤"에서 진동하는 소용돌이로써 비속세적인 힘의 영역을 암시하려고 한 밤의 신비적인 검은 파랑은 전율적인 계시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잠잠하지만 거역 불가능한 소용돌이가 파랑에서 새어나오는 듯하다. 파랑은 유혹하고 사로 잡으며 동시에 영원히 상실한 고향에 대한 가슴아픈 동경을 불러일으키면서, 영문을 모르는 우리에게 되돌아가라고 명령한다. "별이 빛나는 내 위의 하늘과 내 속의 도덕법칙"은 심지어 임마누엘 칸트까지도 감동시켰다. 압도적인 친근감 그리고 끔찍하게 도달하기 힘든 먼 곳 - 이와 같이 하나의 색이 가진 미스테리는 단 한 가지 것만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신들의 현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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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신앙이 몰락하게 된 심리학적 근거 이외에도 회화의 모든 부분에서 자주색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실제로 항상 어려웠다. 달팽이 자주색은 달팽이 선에서 흔합된 점액에서 결코 완전히 자유로을 수가 없었고 일종의 끈적한 죽 같은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꼬것으로 피지도 염색할 수 있었다. 그것의 유명한 예가 6세기 로사노 성당의 자주색 법전(Codexpurpureus)이다. 그러나 붓으로 고르게 칠할 수는 없었다.
중세 세밀화의 처리 방식에는 '자주색'과 같은 명칭이 자주 나오지만 그것은 달팽이 자주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파스텔 형태의 보라색을 내는 '블로, 로젤, 블리 뷔스(bio, rowel, bly wyβ)'라는 혼합물을 의미하거나 약간 불투명한 '잎새(folium)' 즉 파랑, 빨간 갈색 그리고 보라색 등 여러 다양한 색을 내는 식물즙을 의미했다 그 가운데에는 '자주색 잎새'도 있었고 보다 '아름다운 자주색'을 가진 '프리실레(prisilje)'도 있었다.
자주색이 '모든 다른 색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괴테가 그렇게도 높이 평가했다면 400년 전의 문장학 전공자들은 그와 똑같은 근거로 인해 오히려 반대된 평가를 하게 되었다. 자주색이 단순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으며 모든 다른 색들에서 합성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천한 색으로 간주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색은 당연히 예술사에서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위 높은 사람을 자주색 천과 함께 매장하는 그리스 풍습이 오랫 동안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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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약 140종의 바다 달팽이들이 자주색 염색에 있어 기초가 되는 초기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그것은 지중해 외에 남아메리카, 영국, 그리고 스칸디 나비아에서도 발견되어 사용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비법을 비밀로 붙인 채 그것으로부터 독특한 기술 그리고 당연히 벌이가 되는 사업을 이룩하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페니키아', '페니키아인' 이라는 명칭은 다름아닌 '빨간 자주색의 나라'를 의미한다.
(...중략...) 단 그 두 방울만이 중요하고 단지 그때문에 3천년간 수백만 개의 달팽이가 목숨을 잃어야했다. 완성된 색소 1그램에는 8천 내지는 2만개의 달팽이가 필요했다. B.C. 2천년 말엽 그 수요가 최초로 절정에 달했을 때 염색가들은 달팽이의 양을 충당하기 위해 양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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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문턱에서 편견없이 색 체험과 색의 변함없는 거룩한 광채에 대해 언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로 '화가의 눈'이 필요하며 세잔과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세잔에 따르면 색은 세계의 뿌리로부터 솟아오른 것이며, 그 심오한 것의 표면적 표현이다. 열광적인 자와는 거리가 먼 냉담하고 음울한 작업가 세잔은 '나는 가끔 색이 거대한 실체, 생생한 이데아 또는 순수 이성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고 덧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여러 시대속에서 사람들이 이러한 '생생한 이데아'를 어떻게 다루려고 시도했으며, 어떤 신화와 이론으로 색을 얻어냈으며 흥분을 회피하기 위해 색으로 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려고 했는가 하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보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색 체험 속에 숨겨져 있는, 그리고 역사적 제한 조건 속에서 색 현상에 접근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들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3000년이 흐른 뒤에 우리의 후손들이, 마치 우리가 '고대인'의 진리를 비웃듯이, 우리의 현대적 진리를 비웃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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