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 초기의 우주인에게는 조종술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21세기의 우주인을 선발하는 기준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 그리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고 비좁은 환경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도 원만히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원 한 명 한 명은 모두 고강도의 다양한 작업을 함께 수행할 동료대원일 뿐 아니라, 룸메이트이자 전 인류의 대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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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 외관은 거대한 음료수 캔 여러 개를 줄줄이 연결한 듯한 모양이다. 다섯 개의 모듈이 길게 일렬로 연결되어 있고, 그중 세 개는 미국 것, 두 개는 러시아 것이다. 여기에 미국, 유럽, 일본의 모듈들이 좌현과 우현에 달려 있고, 러시아 모듈 세 개가 위쪽과 아래쪽으로 달려 있다. 지난번 내 첫 우주정거장 임무 이후로만 무려 일곱 개의 모듈이 추가되었다. 전체 부피 대비 꽤 큰 비율로 몸집이 불어난 것이다. 모듈 추가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1990년대 우주정거장 계획 초창기에 이미 정해놓은 조립 순서를 따른다. 내가 우주정거장 밖으로 나가볼 기회는 두 차례 계획되어 있는 우주유영이 전부다. 첫 우주유영도 앞으로 일곱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우주정거장 생활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아무 때나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외활동복을 입고 우주유영을 나가는 일은 장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우주정거장에서 최소 세 명, 지상 관제소에서 수십 명이 쉴 새 없이 보조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우주유영은 우리가 궤도상에서 하는 모든 작업 중 가장 위험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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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살다보면 자연이 얼마나 절절히 그리워지는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미래에는 틀림없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단어가 새로 생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의 소리 녹음한 것을 즐겨 듣는다. 빗소리, 새소리, 나뭇가지에 바람 부는 소리 등이다.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이곳 우주정거장이지만, 지구의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다. 지구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남들 모르게 나 혼자서 지구를 친하게 알고 지내는 기분이다. 해안선, 지형, 산맥, 강이 보인다. 일부 지역 특히 아시아 쪽은 대기오염이 워낙 짙게 덮여 있어 병든 것처럼 보인다. 뭔가 치료나 관심이 필요할 것만 같다. 수평선 위의 대기층은 안구 위의 콘택트렌즈처럼 얇디얇아 지켜주어야만 할 것 같은 연약한 모습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구의 경치는 바하마 군도 부근으로,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이 황홀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다. 짙푸른 바다에 어우러진 옥색 반점. 햇빛에 황금색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한 모래톱과 산호초. ISS에 대원이 새로 합류할 때마다, 나는 꼭 이곳 쿠폴라(지구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으로 된 모듈)에 데려가 바하마 군도를 보여준다. 바하마를 보고 있으면 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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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국 쪽은 보급선을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받기도 하지만 자주 공급받을 필요는 없다. 러시아 우주인들이 지상에서 공급받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소변을 만들어 우리에게 준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처리해 물로 만든다. 러시아 우주인의 소변은 이곳에서 러시아와 미국 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재화와 용역의 물물교환에 이용되는 ‘상품’ 중 하나다. 그쪽은 우리에게 소변을 주고, 우리는 우리 태양전지판에서 생산된 전기를 나눠준다. 그쪽은 자기들 엔진으로 정거장을 추진해 정상 궤도에 다시 올려놓고, 우리는 그쪽에 물자가 모자랄 때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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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가 그립다. 신선한 재료를 써는 느낌이, 채소 썰 때 나는 냄새가 그립다. 씻지 않은 과일 향기가 그립다. 신선한 농산물이 수북이 쌓여 있는 마트 풍경이 그립다. 원색의 진열대, 매끄러운 타일 바닥, 통로를 오가는 낯선 사람들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 그립다. 남들이 사는 이야기, 내가 모르는 경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립다. 아이들 노는 소리가, 언어에 관계없이 항상 똑같게 들리는 그 소리가 그립다. 다른 방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소리가 그립다. 방이 그립다. 문과 문틀이 그립고, 오래된 건물의 마룻바닥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립다. 우리 집 소파에 앉는 것이, 의자에, 스툴에 앉는 것이 그립다. 온종일 중력에 버티다가 쓰러져 쉬는 느낌이 그립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그립다. 음료를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그립다. 테이블에 물건을 놓으면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그립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얼굴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이 그립다. 샤워가 그립다. 온갖 종류의 흐르는 물이 그립다. 얼굴 씻기, 손 씻기가 그립다. 침대에서 자는 것이 그립다. 시트의 촉감, 이불의 무게감, 베개의 폭신함이 그립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빛깔이 그립고, 지구 곳곳의 아침놀과 저녁놀이 그립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