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레드 와인은 퍼플에서 벽돌색, 주황색으로 변한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약간 초록빛이 나는 싱그러운 색이다가 점차 호박색 혹은 골드처럼 진한 색이 된다. 그 과정에서 거친 성분이 다 빠지고 찌꺼기가 가라앉는다. 그런 걸 보면, 사람과 와인은 참 닮았다. 우리는 세상의 쓴맛을 보고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철들어간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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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과 사람의 노력이 더해져 탄생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평범한 와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흔히 와인을 ‘천·지·인의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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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을 한다.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인메이커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어느 농사나 그렇겠지만, 모든 과정이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포도를 어떻게 가꿀 것인가, 포도를 언제 수확해 발효시킬 것인가, 언제 병입할 것인가. 게다가 한 번 실패하면 만회하기까지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 와인을 만드는 일에는 엄청난 인내와 열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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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와인 코너에 가면 마음에 드는 와인을 골라 보세요. 10초간 뚫어지게 라벨을 들여다봤는데 라벨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면, 그건 구세계 와인입니다. 반면 귀여운 동물 그림도 있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 같다면, 신세계 지역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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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에서 와인 강의를 제안하면서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테이블 매너로, 그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테이블 매너의 가장 큰 핵심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각자 기본 규칙을 잘 지킨다면, 식탁 위의 풍경은 아주 자연스러워진다. 예를 들어 연회장에 가면 라운드 테이블을 종종 본다. 스퀘어 테이블에 비해 라운드 테이블은 단위 면적당 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앉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때 테이블에 놓인 많은 커트러리를 보고 헷갈리기 쉬운데, 시작점만 알면 된다. 좌빵우물. 즉, 왼쪽에 있는 빵이 내 빵이고, 오른쪽에 있는 물이 내 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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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단맛보다는 쓰고 시고 매운 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음식일수록 리슬링처럼 점잖으면서도 풍미가 또렷하고 뼈대가 강한 와인, 미디엄 플러스 바디에 산도가 높고 드라이한 와인이 잘 어울린다. 또한 한상 차림이 특징인 한국 식단에는 여러 음식에 두루 어울릴 수 있는 유연한 와인이 어울린다.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요소가 있으면 더 좋다. 이러한 와인은 대체로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우아하고 섬세하며 산도가 좋다. 대표적인 예로 샴페인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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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 만 원짜리 와인이라도 한 병 사본다. 라벨을 뚫어지게 보면서,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본다. 실제로 먹어보니 꽉 차는 무게감이 느껴지는가? 맞다. 이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그럼 이 와인과 맞는 음식이 뭘까 생각하던 중, 저녁 때 먹으려고 만들어둔 수육이 떠올랐다. 실제로 페어링해 보니 수육과 카베르네 소비뇽이 꽤 근사한 조합을 이룬다.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정답에 가까워지게 된다. 와인은 꼭 사전적 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가지 팁만 알아도 와인과 함께 하는 일상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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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와인 생산국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진정한 와인 여행에는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 기행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지 땅을 밟고 그곳의 테루아를 온몸으로 느끼며,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노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와인을 만든 사람과 교감하고 돌아왔을 때, 와인 수준이 훨씬 깊어진다. 소믈리에들에겐 특히 필요한 경험이다. 지식만으로 와인을 추천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 것에 는 많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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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와인과 행복한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다양성이 어우러져 만든 균형감이다. 와인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때 균형감을 이룬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압도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명품 와인이 태어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과 주변 사람 중 어느 것 하나 잃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삶을 살길 원한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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