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동아시아의 ‘역사 서사’는 ‘국가’의 경계(타이완 해협, 삼십팔도선을 포함) 및 ‘국가’ 내부의 여러 영역(정치, 논단, 미디어 등)에 의해 겹겹이 얽히고 갈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술에 요구되는 바는 ‘안’과 ‘밖’ 각자의 경계에 가교를 놓아 동아시아에 통용되는 ‘역사 서사’를 구상하려는 사색과 대화밖에는 없다. 21세기 동아시아의 특징을 생각해볼 때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정부와 사회, 미디어와 인터넷 공간 등 각 영역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민간의 교류와 대화, 사색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 까닭이다. 동아시아에 통용되는 ‘역사 서사’는 반드시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의할 수는 없으나 이해할 수는 있다’에서와 같은 관용성과 포용력이 필요하다. _32쪽
1953년 12월 저우언라이는 티베트 지방의 통상과 교통을 둘러싸고 인도와 교섭을 벌이면서 처음으로 ‘평화공존 5원칙’을 제출했고, 이듬해 1954년 4월에는 인도의 요청으로 현지를 방문해 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 단, 여기서 말하는 ‘평화공존’에는 당시까지의 대외 관계 원칙이던 상호 영토·주권의 존중, 호혜평등, 상호 내정 불간섭, 평화공존 이외에 ‘상호 불가침’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세계, 특히 중국의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이웃 나라, 그중에서도 아시아 신흥 독립국과의 평화적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전쟁 참가에 의한 중국의 ‘호전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쨌든 이른바 ‘평화공존 5원칙’은 이때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여기서 중국이 말하는 ‘평화공존’이란 사회체제가 서로 다른 국가가 공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평화공존’ 외에도, 나머지 네 항목까지 포함되어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_104쪽
소련의 참전으로 그 조건이 붕괴되어버렸기 때문에 주전파는 항복 그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니시지마는 “원자폭탄 투하는 일본의 항복을 얻어내는 데 안 하느니만 못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원자폭탄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은 결코 전쟁을 종식시켜 일본 국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한 고귀한 제물이 아니었다. 원자폭탄으로 죽은 사람들은 사실상 헛되이 소중한 목숨을 빼앗겨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_154쪽
근대 중일 관계사에 대한 인식에서 여론과 민중의 인식은 여전히 견당사(遣唐使)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예전의 일본은 문화 면에서 중국의 제자이며 근대에 와서는 갚아야 할 은혜와 의리를 망각해 스승으로서의 중국을 괴롭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일전쟁과 일본군의 폭행에 관해서는, 항상 중일 외교의 필요에 따라 관련 보도가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한다. 근래 일본 정치인들의 몇 번에 걸친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우발적인 반중(反中) 언론이 보이는 중국에 대한 강행적 자세로 인해 생겨난 과장과 자극 때문에, 중국 민중 사이에 일본은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싶어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중일전쟁사를 서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나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_247쪽
역사의 발전은 직선적이지 않고, 진보와 발전이 있으면 반드시 반동과 반격도 있다. 이러한 역사 과정은 이 글에서 다룰 한·중·일 3국이 두 차례의 공동 역사 교재의 편찬과 간행 과정에 참여하면서 필자 스스로 하나의 역사 체험으로서 절실히 느꼈다. 역사 발전 과정은 나선형이면서, 진보·발전과 반동·역류·후퇴의 대립을 포함해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일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 타이완, 한국, 북한, 러시아, 몽골,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발전 방향을 궁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_292쪽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비판·반성하는 역사 인식을 ‘도쿄 재판 사관’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하여 부정하고, 정권 차원에서 교과서 공격이나 언론 보도에 대한 간섭 등을 통해 수정하려고 시도해온 것이 바로 아베 자민당 정권이다. 이와 같은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에 반발하는 한편, 이를 역으로 이용한 대항적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켜 국민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 체제나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체제가 등장함으로써, 한·중·일 3국 사이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역사대화와 상호 이해는 한층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한·중·일 3국 정부의 지도자들이 역사 인식의 대립을 국민 여론 통합에 이용하려는 충동을 지닌 시대 상황 속에서 강력히 요구되는 것은, 3국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이러한 ‘역풍 현상’, ‘역류 현상’을 멈추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가는 커다란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_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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