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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야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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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8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266g | 128*188*20mm
ISBN13 9791104918131
ISBN10 110491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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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은 날아드는 검격을 피해 몸을 뒤로 뺐다. 염포와 흉측한 몰골의 화륜대주라는 사내의 대화에서 짙은 위화감을 느낀 탓이다.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더니 달려드는 무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기세로 달려드는데, 그 모양새가 배수의 진을 친 장수의 기세와도 같다.
법륜은 달려드는 화륜대를 뒤로하고 염포의 곁으로 몸을 날렸다. 날아드는 검을 피해 움직이는 모습이 화공의 그림처럼 부드럽기 그지없다. 점점 공력의 운용과 보법이 능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비록 원치 않았던 일에 휘말리긴 했지만 법륜은 오히려 이 상황이 반가웠다. 그동안 꼭꼭 눌러 담았던 무공이다.
상대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망설임 없이 무공을 전개해 본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법륜은 묘한 해방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제 어쩌시려오.”
염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내에 일이니 더 이상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것을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강호의 경험이 일천한 법륜으로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소. 공께서는 이 염모의 목숨은 신경 쓰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 자리를 벗어나시기 바라오.”
법륜을 부르는 염포의 호칭이 달라졌다. 정도의 명문이면서 계산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세가의 일반적인 행태와는 달랐다. 염포는 법륜이 이번 일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란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쉬이 보내줄 것 같지 않소만.”
법륜은 죽립 아래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벌써 이십이 넘는 구양세가의 무인이 법륜의 손에 쓰러졌다. 살수를 펼치지는 않았으니 죽은 사람은 없겠지만, 화륜대에게는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화륜대는 자타공인 구양세가 최고의 무력집단. 대로 법륜을 보내주기엔 면이 서지 않는다.
법륜과 염포를 둘러싼 화륜대의 숫자가 육십을 넘어섰다. 저만한 무인들을 상대해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자신의 새로운 무공을 시험해 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법륜의 죽립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일단은 알겠다는 무언의 승낙이었다.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홀로 빠져나갈 생각은 없다. 같은 식구여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염포를 데리고 빠져나가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리라.
“염 시주, 나는 지금부터 전력을 다 할 겁니다. 죽는 자가 생길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다면 같이 빠져나가 봅시다. 노선배가 계시는 곳이 어느 방향입니까?”
염포의 딱딱하게 굳은 입술이 풀리며 분노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쪽입니다. 서풍장이라는 곳입니다.”
“갑니다. 잘 쫓아오시오. 길을 열겠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법륜의 몸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달려 나갔다. 기괴한 움직임은 여전했지만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법륜이 급작스럽게 몸을 움직이자 화륜대의 무사들이 잘 짜여진 움직임을 보이며 법륜과 염포를 압박해 들어왔다.
“초열검진(焦熱劍鎭)! 검진이오. 빨리 뚫지 않으면 힘들어!”
법륜을 따라 움직이던 염포가 곤을 들어 검진을 완성해 나가던 무사를 강력하게 밀쳐냈다. 쩌엉! 소리와 함께 무사가 밀려나자 염포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법륜의 등을 쫓아 달렸다.
[전방에 세 번째, 일곱 번째 무사가 진의 중추요. 빠르게 무너뜨리고 갑시다.]
일류에 이른 무사들이라지만 절정에 이른 무인 둘의 속도전이라면 큰 피해를 주지 않고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구양세가 검진의 핵심을 법륜에게 일러준 것도 그래서였다. 다치는 자들이 나오더라도 최소화하는 것이 훗날 오해를 풀기에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홍균이 나서기 전에 뚫고 나가야 한다. 그는 섬서 땅을 넘어 중원에 이름을 날린 무인. 구양세가의 위명이 뒤에 있었다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화륜대는 홍균의 수족이다. 그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화륜대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법륜은 염포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달려 나가는 몸에 막대한 진기가 실렸다. 역시나 첫 일격은 천공고다. 제대로 된 공력 운용과 투로를 갖춘 고법은 강호무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법이다. 그만큼 낯익지 않은 수법.
천공고가 염포가 지목했던 자에게 틀어박혔다. 진의 중추를 맡은 화륜대원의 몸에서 화탄이 터지듯 폭음이 일었다.
고법에 적중당한 몸이 허공을 가르고 뒤에서 검진을 짜던 화륜대원의 몸 위로 날아가 부딪혔다. 법륜은 그 모습을 보지도 않고 몸을 날렸다. 어깨에 느껴졌던 충격이 그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던 까닭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법륜이 한 명의 무사를 처리하는 동안에 검진이 계속해서 변했다. 법륜과 염포가 빠져나갈 수 없게 촘촘해지고, 진에 서리는 진기의 흐름이 단단해진다.
법륜은 염포가 말했던 일곱 번째 무사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개진(開鎭)!”
검진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몸에 전해지는 압박감이 한층 거세졌다.
‘이대로는 고립된다.’
그렇다면.
그냥 뚫는다.
처음에 검진의 한 축을 흔들어 쏟아지는 기세가 생각보다 부담이 덜했다. 하나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
법륜은 달려 나가는 와중에도 염포를 살폈다. 그가 뒤떨어지면 곤란하다. 염포는 뒤에서 쌍곤을 휘두르며 화륜대의 검을 물리친다. 그는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었다.
애초에 절정의 무공을 지닌 무인이었으니 살생(殺生)은 힘들더라도 물리는 것 정도는 충분하리라.
철탑신추가 뿜어졌다. 권경이 날아가며 무사들을 밀어냈지만 이미 그가 보여주었던 무공이 보통 수준은 넘어선 바, 검진을 이루고 있던 화륜대도 충분히 긴장한 상태였는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법륜의 추법을 막아냈다.
“놀랍군. 진법이란.”
소림 최고의 진법이라는 백팔나한진(百八羅漢鎭)도 이러할지. 다수로 소수를 압박하기에 이만 한 것도 없어 보였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움직임이 검진 아래에서 가능한 몸놀림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법륜의 송곳니가 드러났다. 마음속 가지고 있던 한줌의 부담이 눈 녹듯 사라졌다. 두 눈을 감자 소림의 전경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마음에 품었던 부처의 집은 없다. 오로지 지옥야차만이 존재한다. 이들은 곧 보게 되리라.
야차가 펼쳐내는 인세의 지옥을.
눈앞에 검진을 이룬 한 귀퉁이가 지척으로 다가왔다. 법륜은 두 손에 무심(無心)과 무정(無情)을 담았다. 자비를 거두고 폭력과 살의만 남겼다.
양손에 몰려드는 진기가 웅웅 떨었다. 광폭한 기운. 막대한 공력이 손에 머물렀다. 육도지옥수가 상대가 내치는 검을 피해 왼팔에 틀어박혔다.
퍼억!
푸화하하하학!
화륜대 무사의 왼팔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부러진 것이 아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져 아예 사라져 버렸다.
튀는 핏방울이 죽립을 다시 붉게 물들였다.
정적.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왼팔이 터져 나간 무사만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륜대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마공… 마공이다!”
이런 무공이 정도의 무공일 리 없다. 마공이 아니라면 이런 위력을 선보이기 힘들리라. 패도적이기 이를 데 없는 권법과 수법을 자랑하는 산동의 황보세가나 진주언가에도 이런 무공은 없었다.
마공이란 단어가 주는 힘은 강력했다. 법륜이 염포의 이름 모를 조력자에서 마인으로 탈바꿈한 순간이다.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 마공이란 단어는 사람들을 광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마공이라… 뭐 상관없겠지.”
법륜은 귓가에 스치는 마공이란 단어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여세를 몰아 내치는 장법이다.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장력을 뻗어냈다.
붉디붉은 장력이 법륜의 장심에서 터져 나오자 화륜대원들이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전력을 다해 검을 떨쳐왔다.
따앙!
‘수준이 천차만별이군.’
검진의 힘을 빌었다지만 어떤 이는 너무 쉽게 공격을 허용했고, 다른 이는 쉽게 공격을 막아낸다. 화륜대 안에서도 수준이 갈린다는 뜻이리라.
적로제마장이 생각처럼 길을 열어주지 못하자 법륜은 다시 지옥의 손을 꺼내 들었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법륜을 향해 내쳐오던 검이 산산조각 났다.
부서진 검 조각이 파편이 되어 화살처럼 뒤로 날아갔다. 법륜은 파편을 피해 뒤로 물러서는 무사를 향해 발을 차올렸다.
전가의 보도처럼 뽑혀 나온 사멸의 각법이 화륜대원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퐈아아악!
상반신이 사선으로 갈라져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염포는 법륜의 뒤에서 곤을 쳐내다 하늘 높이 비산하는 핏방울을 보며 경악에 휩싸였다.
구양백을 통해 법륜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염포도 법륜이 펼친 무공이 정공(正功)인지 마공(魔功)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파괴적이고 무시무시했다.
그런 염포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법륜은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했다. 죽음의 공포가 화륜대원들의 머릿속에 알알이 박혔다.
“막는 자는 죽는다. 비켜서는 자는 산다. 선택하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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