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영역은 결코 정치와 무관한 영역이 아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를 알게 되고 이를 몸에 익혀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 일어난다. 즉, 가정에서 아이들은 여성이 할 일에 대해 배우고 부모의 관계를 보면서 이를 체득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적인 것은 정치와 무관한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은 고도로 정치적인 영역이며 공적 영역을 보이지 않게 조종하는 근본적인 동인이다. _ 26쪽, 1장 ‘여성과 정치’
여성을 가족에서 해방시켜 공적 영역에 투입하려는 플라톤의 의도는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인적 자원을 총체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생물학적 의미의 여성을 관습적·제도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과 혼동하지 않고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은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주장을 하고 있다. _ 42쪽, 2장 ‘서양 정치사상과 여성’
지금까지 많은 정치학 교과서와 정치학 연구에서 정치문화는 성을 중립적인 것으로 판단해서 특별히 한 성을 유리하게도 다른 성을 불리하게도 다루지 않았거나, 남녀 공히 같은 정향을 보이는 것으로 간주해 논의해왔다. 그러나 성이라는 변수를 감안해 정치문화를 들여다보면 매우 다른 모습이 보인다. 정치문화는 이미 성에 대해서 상당한 규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남성 지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정치에서도 남성 지배의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근본 요인은 사회적 관습, 신념 등과 같은 문화인 것이다. _ 81쪽, 4장 ‘여성과 정치문화’
이제 여성의 정치참여가 수적으로 증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의 이익과 관심을 정당하게 대변하고, 이를 계기로 남녀평등의 균형 잡힌 정치사회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질적인 증가를 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는 여성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소극적인 참여를 넘어, 여성이 정치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치발전과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새로운 참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새 시대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_ 119쪽, 5장 ‘여성과 정치참여’
여성정책 역시 단순히 남성을 배제한,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양성을 모두 고려하고 배려함으로써 양성의 권익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이루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여성’으로만 특화되던 ‘여성 이슈’를 ‘보편적 이슈’화함으로써 여성문제가 모든 국민의 문제로 전환되고 사회의 주류에서 배제되었던 주변부의 평등, 평화, 인권, 복지로 나아가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확장될 때, 남녀의 권익을 모두 지향하는 성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_ 167쪽, 7장 ‘공공정책과 여성’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성폭력과 성매매 등에 관련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성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이때부터 그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암암리에 행해졌던 직간접적인 성폭력과 억압이 비로소 범죄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그동안 법적 개입이 거의 불가능했던 부부간의 성폭력이나 다양한 형태의 미묘한 성희롱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_ 176쪽, 8장 ‘여성과 성정책’
성역할 분업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재생산노동을 저발전국 여성으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저발전국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제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젠더적 접근과 이러한 접근에 기초한 당사국 간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_ 241~242쪽, 10장 ‘국제이주와 여성’
한국의 기지촌 여성들도 국가 안보와 미국의 환태평양 군사전략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감수했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에게는 사회적 멸시와 통제만이 남는다. 기지촌 여성은 매춘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또한 국가는 성병 방지를 위한 정기검진을 통해 매춘 여성의 삶을 통제하지만, 성 구매자의 성병 유무는 문제 삼지 않는다. 여성은 전쟁과 국가 안보에 이용될 뿐, 그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_ 253~254쪽, 11장 ‘전쟁·평화·안보 그리고 여성’
대체로 많은 페미니스트는 차이가 존중되는 페미니스트 연대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대화와 의사소통과 차별적 권력구조와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것을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발 데이비스가 제안한 대로 우리가 어떻게 다른가가 아니라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역점을 두고 협력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_ 314쪽, 13장 ‘세계의 여성운동’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