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이 적신 윤기 나는 입술이 무척이나 자신을 유혹했다. 두근거리는, 아니 거세게 뛰는 심장을 제어해야 했다. 초조해지는 마음과는 달리 입을 열기가 조금은 두려웠다. 내가, 이 차민욱이 두려워한다. 저 조그마한 여자의 입에서 자신을 거부하는 말을 듣는 것을 말이다.
“좋군요. 아주. 자, 그럼 본론으로.”
“민욱이오. 차민욱!”
두 번째다.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이. 하지만 왜인지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차민욱 씨. 아까 못 다한 말을 할까요?”
그가 와인 잔을 옆으로 기울이면서 목을 축였다. 알싸한 향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알다시피 난 당신을 원해.”
간단한 말이었다. 원한다는 말. 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 포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뜻을 지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날 원한다?”
“그래, 그것도 절실히.”
지현은 이 현실이 맘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원하는 그런 감정이 싫었다. 더구나 자신이 피하고 싶은 이한테서 듣는 말은 더욱.
두 번째, 그와 만나는 것이 두 번째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감정은 애써 바라보지 않았다.
“전 생각이 다른데 어쩌죠?”
그만큼이나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아직 서로가 모를 때 끝내는 것이 좋았다. 아니 시작도 안 했으니 발을 빼기도 그만큼 쉬워지리라.
“아니, 당신은 날 원해. 그걸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요.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 말이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음성과 자신에게 시선을 못 박은 채 말하는 그에게, 지현은 박제가 된 듯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해도 좋다. 거절해야한다. 밀어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어서 벗어나야 했다.
왜 그냥 차민욱이란 사람이 말하는 아주 유혹적인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지현 자신도 반신반의 하면서도 이성은 거절을 하고 있었다. 절로 목소리가 격앙되게 나왔다. 잠시 잃은 이성으로 인해서 제 페이스를 놓쳐 버렸다.
“아뇨, 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 누구의 여자는 되지 않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의지대로 살 거예요. 누가 뭐라 해도! 차민욱, 당신이래도.”
“우린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 의식해 왔어. 당신은 피하려 했지만 난 아니야. 난 당신과의 만남을 이제는 오히려 즐겨. 당신과 난 서로 잡혀 버렸지. 아주 지독한 덫에 말이야.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지현은 떨리는 두 손을 잡아야 했다. 더 떨지 못하도록.
민욱은 그녀에게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와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은 사슬에 매여 있음을. 그는 결코 그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아니 지금부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민욱의 거침없는 말에 잠깐 당황한 사이, 자신 앞에서 아주 진지하게 쳐다보는 그를 그녀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이 지금에 어울린단 말인가? 자신 앞에 있는 이 사내의 존재가 너무나 커서 지현은 숨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커다란 손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자 놀랍게도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의 엄지손가락이 자신의 입술을 쓸 듯이 지나가자 훅하고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얼굴이 자신에게로 내려오자 이제 심장은 온몸으로 뛰고 있었다.
민욱이 살짝 쓸어본 그녀의 빨간 입술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최면에 걸린 듯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 맑은 눈동자에 온통 자신의 존재로 꽉 차자, 민욱은 지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다. 이렇게 성급하게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것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것 같은 저 미지의 여인에게 자신의 도장을 찍고 싶은 것은.
최면이었다. 지현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달리 자신의 태도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알고 싶어. 당신의 모든 것을.”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지현의 입술을 빠른 속도로 점령해 나갔다. 혀끝으로 그녀의 고른 치아를 훑어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어디 한 곳 빠짐없이 그녀의 입 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흠칫 놀라는 듯 입술에 힘이 실리자, 민욱은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며 지현의 향기에 빠져들었다. 두 손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입술은 아래로, 아래로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아! 정말 황홀했다. 그저 키스만으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살짝 안겨 있는 지현은 오직 자신만의 여인 같았다. 너무나 소중해서 이렇게 살짝 맛보고 있는 지금에도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소파 위에 눕히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 이성이란 존재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여신인 그녀만이 보일 뿐이었다.
지현은 자신이 어딘가에 눕혀지자 현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달콤한 순간이어서 잠시 모든 것을 망각하고 말았다. 지현은 이성을 배반한 것에 화가 났다. 자신은 누군가 끌고 간다고 끌려가는 여자가 아니었다. 누구의 보호를 받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다가갈 것이고, 가고자 한다면 자신이 훨훨 날아갈 것이다.
나약한 여자는 되기 싫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있는 힘을 다해 싸웠으며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흔히들 말하는 여인의 삶은 자신의 삶과는 달랐다. 그가 그런 여자를 원한다면 더욱 줄 수 없었다.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잃어버린 과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지현은 그걸 변명삼아 애써 그를 밀어냈다. 그에게 끌리는 마음은 무시했다. 아니 버려야 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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