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출퇴근을 하며 틀에 짜인 일상을 살다 보니 내 버킷리스트 대부분은 여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직장인에게 여행은 큰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질적인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이나 휴식 같은 것을 여행이라고 불러왔던 것 같다. 구경하고 즐기고 먹고 마시고 걷고 뛰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여행자의 하루하루가 부러웠다. 매일이 방랑자 같은 삶은 곧 내 꿈이 됐다. 단 한 번도 도시를 떠나서 살아 보겠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여행자의 삶을 동경하면서부터 전원생활을 꿈꾸게 됐다. --- ‘도시를 떠나다’ 중에서
제주도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인지 일반적으로 육지보다 건축비가 더 많이 든다. 건축 자재 대부분을 육지에서 실어 와야 하기 때문에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배 정도 비용이 더 든다. 예를 들어, 만약 육지에서 평당 300만 원에 지을 수 있는 전원주택이 있다면 제주에서는 5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제주에 새롭게 건축되는 건물이 많아서 노동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시간과 예산에 여유를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건축비만큼 중요한 것은 난방비와 전기료 등 에너지 절감 요인을 고려해서 집을 짓는 것이다. --- ‘제주에 발을 딛다’ 중에서
황량했던 뒷밭을 갈아서 늙은호박을 심었다. 본격적인 첫 농사의 시작이다. 한동안 농사를 짓지 않던 땅이라 지력이 없어 일단 호박을 심기로 했다. 지력을 보강하는 농사를 먼저 짓고 나중에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자라는 호박은 토양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영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땅에 좋은 작물이다. 지력을 키우는 데는 호박이나 콩 종류의 작물이 좋다고 한다. 게다가 농사 초보인 까닭에 기술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작물을 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늙은호박은 토양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재배가 용이하다. 따라서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키울 수 있고, 수확을 하게 되면 농협에서 전부 수매해 간다고 해서 선택했다. --- ‘제주에 뿌리 내리기’ 중에서
제주에 내려오고 1년째 되는 시기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려오기 전인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키는 0.8㎝가 커졌고, 체중은 15㎏이 줄었다. 혈압도 양호하고 시력은 좌우 1.0으로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0.3이 좋아졌다. 혈당도 뚝 떨어졌다. 은퇴할 나이에 키가 크고 시력이 좋아졌다니 스스로도 놀랐다. 밭 갈고 농사지으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내가 키운 작물로 건강한 식사를 하면서 시달리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강군 교수와 제주의 첫 만남은 그리 달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분의 소박한 땀방울이 거친 흙의 마음을 열어 열매를 맺고 한 몸이 되는 애틋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일상이 이렇듯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겸손한 삶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