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발 스땐다드’에 근거한 입성책동
원나라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치솟자 고려를 아예 원나라에 통합시키자는 고려인이 있었다. 많았다. 연경에도 많았고 개경에도 많았다. 이를 입성책동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을 두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매국노라고 씹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엔 그게 보편적인 주장이었다. 그 근거는 바로 ‘글로발 스땐다드’였다.
세상이 원나라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베이징에 가봐라. 상상도 못할 크기의 도로가 사방으로 쫙쫙 뻗어 있다. 세계의 모든 문화가 베이징에 있다. 제조업, 금융업, 군수산업, 지하자원, 교육, 과학, 패션, 향락 산업이 발달 돼 있고, 세계의 배낭여행객들이 모여 있으며, 마르코 폴로도 살고 있다. 상업이 발달돼 있고, 은행도 있고, 신분차별도 없다. 니들이 헝가리를 알어? 터키를 알어? 이태리를 알어?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에 갇혀서 살래? 이 촌놈들아. 그런 거였다.
입성책동 정도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유사한 일이 있지 않나? 한미연합사 해체에 반대하고, 전시작전권은 계속 미국이 행사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청원하고 다니는 전직 참모총장들, 장군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한 1,000년쯤 지나면 이들을 매국노니, 부미배니 하면서 욕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누가 이들을 공개적으로 매국노라고 하겠는가? 술자리에서 매국노라고 소심하게(?) 안주 삼을 수는 있겠지만 이들은 엄연히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이다.---p.45
이성계 정권의 벼랑끝 전술과 정도전을 두려워한 주원장
주원장이 연일 조선을 압박하고 나설 당시 조선 집권여당인 정도전당의 핵심 3인방은 정도전, 남은, 심효생이었다. 정도전이 총재라면, 남은은 원내총무, 심효생은 사무총장 정도 됐다. 심효생은 차기 대통령 방석의 장인이기도 했다.
정도전의 정치력은 주원장 못지않았다. 명나라의 굴복 요구에 대해 정도전은 시간을 벌면서 주원장에 맞섰다. 이처럼 이성계는 정도전당을 여당으로, 정도전을 책임 총리로 하여, 명나라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벼랑끝 전술을 펼치면서 나라를 운영했다. 조명관계는 이방원이 정권을 잡아 양국관계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상시적으로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상황이었다. 이성계 정권에서의 조명관계는 지금의 북미관계와 비슷했다.---p.88
주원장의 정도전 소환 요구에 정도전 강력 반발 - “명나라 이 새끼들, 더 이상 못 참겠다. 맞짱뜨자”
이방원과 정도전. 이제 서로 올 때까지 왔다. 실마리는 언제나 명나라가 제공한다. 1396년 명나라 대통령 주원장은 표전문(명나라 대통령에게 바치는 외교문서)이 불손하다는 트집을 잡아 또다시 정도전의 압송을 요구하면서 조선 정계를 2년여 동안 발칵 뒤집는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 이놈은 뭐 ‘사담 후세인’을 생포하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송환을 요구했다. 이성계는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거부했고, 대신 정총, 노인도, 김약항 등 정도전 계보 신진 정치인들이 총대를 메고 이역만리 명나라에 소환돼 억울하게 죽었다. 1398년 급기야 주원장은 이성계와 정도전이 간첩을 파견했다는 또 다른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조선을 압박하자 마침내 이성계와 정도전, 남은의 인내심은 폭발한다. “이 띠발눔을 봤나.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홍어 거시기로 아나~”---p.92
국화빵 같은 조일전쟁(1592)과 한국전쟁(1950)
선조는 서울→개성→평양→의주로 튀었다. 의주는 압록강변의 중국 경계지역이다. 북인당 소속 정치인을 제외한 양반 놈들도 다 도망갔다. 이 인간들은 입만 열면 忠이 어쩌고, 삼강오륜이 어쩌고, 나라가 어쩌고 하는 새끼들이, 전쟁 터지니까 임금을 필두로 제일 먼저, 빛의 속도로 도망쳤다.......이승만의 도주경로를 보자. 서울→대구로 갔다가, “각하 너무 많이 도망치셨습니다.”해서 다시 대구→대전→수원→대전으로 갈팡질팡했다. 이 당시 왜 이렇게 갈팡질팡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았다. 아마 이승만 본인도 당황해서 아닐까? 그러다 다시 대전→이리→목포로 가서 목포에서 배타고→부산→대구로 왔다. 이게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그렇게 자랑하는 이승만의 전쟁 발발 후 15일 동안 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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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의문
난 학창 시절 매우 지루한 역사 교육을 받았다. 국사는 무색무취한, 생명력 없는 글자의 나열 같았다. 대학 진학 이후 각종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주류사학의 실증주의 관점이 역사를‘재미없고, 나와는 관계 없는 것’으로 만든 중대한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팩트(fact)만 나열하고 평가는 주저하는 실증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세상에 가치판단이 배제된 순도 100% 팩트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실증주의 사학에 대한 평가는 학자의 몫으로 돌려주고, 나는 일반인의처지에선,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역사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을 나름의 기준으로 구분하고 평가하고 논쟁해줘야지, 덜렁 사건만, 팩트만 늘어놓은 것만이 역사인가? 가치평가가 있으면 좀 어떤가? 주관적이면 좀 어떤가?
한반도 정치의 국제정치적 측면
주변이 4대 강국(북중일미)으로 둘러싸인 오늘날은 물론, 한반도는 외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시기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말 100여 년은 사실상 원나라 식민지였다. 갑신정변 후 ~ 청일전쟁 직전까지 10년간 조선을 통치한 사람은 청나라 군인‘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였다. 해방 직후 ~ 정부 수립까지 3년간 남한을 통치한 사람은 미국 군인‘하지(John Reed Hodge)’였다. 한반도를 통치한 외국인 빼고, 한반도에서 벌어진 외국 간 전쟁 빼고,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열강 간 비밀조약 빼고……, 이것저것 빼고 한반도 역사 얘기를 한다는 건 좋게 말하면 민족적 자존심일지 몰라도, 나쁘게 말하면 역사 왜곡이다. 인조가 광해군의‘평화실리 외교’를 폐기하고‘숭명배청’이라는 잘못된 외교노선으로 선회하여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 받았는지, 열강과 동시다발적FTA를 체결한 고종과 조선이 왜 망했는지, 본문 곳곳에 상세하게 적었다. 특히 개항(1876) 이후 대한민국 역사는 외세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
2011년 11월 22일, 100여 년 만에 또다시 ‘국가적 창씨개명’을요구하는 한미FTA 매국조약이 체결됐다. 한미FTA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분들이‘강화도조약’이‘한일 FTA’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조선 시대는 지금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제가 조선에‘일본식 토지조사령과회사령’을 이식한 것은‘식민지 수탈’이라 가르치고, 미국이 우리에게‘미국식 통상법’을 이식한 한미 FTA는‘글로발 스땐다드’라고 가르친다.
한미 FTA는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근본 틀(헌법), 법률, 제도, 문화, 관습, 사고방식을 미국식으로 개조시키는 총체적 매국 조약이다. 나는 이 책의 하권 부분에서 한미 FTA는 단순한 통상 조건에 관한 문제가 아님을 역설하고자 했다. 요컨대, 조선시대 정치가 오늘날 정치와 다르지 않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우리(민주개혁 세력)가 왜 실패했는지 역사 속에서 진지하게 반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반反MB이기만 하면 다인가
한미 FTA를 찬성하고, 비정규직법안을 합법화하고, 교육, 의료, 주택에도 시장 마인드를 도입하고, 뉴타운을 부르대고, 조중동에서 중앙일보는 빼자던‘유연한’486들은 이제는 반反MB만을 부르짖으며 재집권을 주장한다. ‘깃발(정체성)’은 온데간데없고‘정치공학’만 나부낀다. 이 땅에 유의미한 정치집단으로서의 개혁 세력이 존재하는지도 이젠 회의적이다. 긴 방황을 끝내야 한다. 난 민주개혁 세력이 서민 대중의 지지를 받아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과오에 대한 진실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
민주개혁 세력에게 바라는 점
이 땅에 중산층은 없다. 1%의 부자와 99%의 서민뿐이다. 민주개혁 세력이 지금처럼 서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고단한 삶을‘자유경쟁의 틀’속에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다. 참여정부 5대 실정인 ▲대북송금특검 ▲ 민주당 분당 ▲ 한나라당과 대연정 ▲ 비정규직 합법화 ▲ 한미 FTA 체결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착공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한다. 이는 민주 세력이 부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참회의 말을 아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정의를 기본 원칙으로 천명하고, 구체적 정책으로▲ 보편적 복지(의료, 교육, 주거 영역에 있어 국가보장 5개년 계획 제시) ▲ 은행 국유화 ▲현대판 노예제 비정규직 폐기 ▲ 1:1 한미 FTA가 아닌 WTO 체제하에서의 다자간 무역 추진 ▲ 대륙(북중러)의 내수경제와 해양(미일)의 수출경제동시 지향 ▲ 한미일 3각 동맹이 아닌 4대 강국 선린외교 지향 ▲ 조세개혁 ▲ 가계부채 경감 ▲ 재벌체제와 노동권의 상호 인정 ▲ 외교통상부혁파 등을 내걸길 기대한다.
이 책의 독자들
난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가난을 구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정치가‘가난을 구제할 제도와 시스템’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정치, 그 국가는 존재 가치가 없다. 현실 정치에서 진정한 개혁을 꿈꾸는 정치인,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의 가속기제인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꾸는 소시민적 정의감을 가진 평범한 국민들께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주입식 수험용 역사만 공부해 온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특히 정치참여를 외면하는 많은 청춘들이, 이 책을 통해 현실 정치와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정치’라는 것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저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늘 염두에 둔 것
나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얼치기 지식인의 기회주의적 화법은 동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품위도 있으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능력 밖이다. 품위 있으나 읽히지 않는 글보다는, 죽죽 읽히는 글,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양비론이 아닌 일단 승부를 내는 글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 교양과 재미 사이, 품위와 직관적 이해 사이에서 내내 고민했다.
감사의 말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법학, 국제정치학 등 각 분야 저자들의 저술에 음으로 양으로 힘입은 바가 크다. 대부분 인용표기를 명확하게 했으나, 일일이 각주를 인용하지 못하고 참고문헌으로 모은 점에 대해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