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이론이란 사람들(people)의 건강을 설명하는 것이다. 생과 사에 관한 것이고 생물학과 사회에 관한 것이다. 생태에 관한 것이고 경제에 관한 것이다. 노동, 존엄, 욕망, 사랑, 유희, 갈등, 차별, 부정의와 같은 인간 생활의 수많은 활동과 의미가 우리 몸속에 문자 그대로 들어와서 체현(體現, embodied)됨으로써 우리의 개인적·집합적 건강상태 속에 표현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왜 질병과 사망률이 변화하고 지리적 차이에 따라 다양해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여러 사회가 혹은 한 사회 내에서, 왜 계층에 따라 상대적으로 건강이 더 좋거나 나쁜가에 관한 것이다. 또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 장애, 죽음 등의 불공평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지식에 관한 것이다. (12쪽 / 서문_ 왜 역학이론에 관한 책이 필요한가?)
그러나 역학의 소임은 또 다른 하나의 요구사항을 역학이론에 부과하는데, 역학이론은 인간과 다른 살아 있는 인구집단에 무관심한 과학과 반드시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반세기 전 모리스가 자신의 고전 ??역학의 활용??에서 서술한 것처럼 역학이 보증하는 것과 책임은 명백하다. ‘인구집단의 건강과 질병의 존재, 본질, 분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고(Morris, 1957: 96) 궁극적으로 ‘임상[의학]을 폐기하는’ 것이다. (54쪽 / 1장_ 역학이론은 존재하는가?)
질병 분포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위해서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느냐뿐만 아니라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고려해야 한다. 무엇이 ‘균형’을 구성하는지,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양상의 가능한 결정요인으로 누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일견 ‘자명(self-evident)’해 보이는 가정이 분석적·인과적인 추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94쪽 / 2장_ 균형으로서의 건강)
20세기 초반 역학의 이론화는 인종/민족, 사회경제학적 지위별 건강상태의 차이를 포함하여 질병 발생 양상의 변화가 (이들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세균, 유전자, 진화, 환경에 의해서 일어났는지,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야기되었는지에 대한 담론 혹은 논쟁이라고 특징할 수 있다. (153쪽 / 4장_ 역학의 확장)
환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자연과학, 혹은 더욱 구체적으로는 생의학적 과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 동안 사회과학, 특히 20세기 중반에 나타났던 행동과학에서는 유사한 관점이 점차 지배적이 되었다.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의 영향 아래 나타났던 이러한 경향은 생의학에서의 개인주의와 유사하게 20세기 중·후반 질병의 분포와 원인에 대한 역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데, 첫째로는 방법론적으로, 둘째로는 ‘생활습관’ 접근의 형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219쪽 / 5장_ 현대 주류 역학 이론)
역학의 사회정치적 관점이 질병의 사회적 발생과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틀로 명백하게 구체화된 것은 당시 학문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한 진보적 건강 연구자가 그들의 분석을 역학으로 확장하였던 1970년대였다. 따라서 초기의 글은 주류 역학 학술지가 아닌 대안적 관점을 용인하는 비역학 저널이나, 회색 문헌, 의학과 의료체계의 선도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가인 빈센트 나바로(Navarro, 1971)가 1971년에 창간한 ≪국제의료서비스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등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253~264쪽 / 6장_ 대안적 사회역학)
사회정치적 이론과 심리사회 이론은 사회적 맥락이 인구집단의 건강을 형성하고 건강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관점은 일치하지만, 그 관계를 설명하는 데서는 매우 다르고 때로는 상충되는 일련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역사적·시공간적·생태적 맥락 아래 사회정치적·심리사회적·생물학적 과정을 염두에 두고 캐넌(Cannon)이 말하는 ‘신체 생리와 신체 정치(the body physiologic and the body politic)’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접근법을 찾는 것이 다음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304쪽 / 6장_ 대안적 사회역학)
21세기에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에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엄청나게 높아진 가능성과 역량이 생겨났기 때문에 역학자에게 연결들(connections)에 대한 이해를 향상하기 위한 지적·실질적 작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생태사회 이론이 상정한 것처럼, 인구집단 질병 양상의 현황과 변화를 사회적·생태적 조건의 생물적 발현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생물적 존재로 살도록 하는 생물물리적 과정을 창조할 수는 없어도 이 과정의 존재를 입증할 용어들(terms)은 갖추게 되었음을 의미한다(Krieger, 1994). 우리 사회와 생물학의 제약과 가능성 안에서, 특히 현재의 기후 변화 시대에서, 문제는 인간이 자연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의 역학 특성을 ‘인간화(humanized)’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351쪽 / 7장_ 질병 분포의 생태사회 이론)
호르몬 요법에 대한 사회역학 비판을 생의학 관점이 무시한 대가는 유방암 발생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성건강주도연구의 결과에 고무되어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미국, 유럽, 호주의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 새로운 역학연구는 관찰된 유방암 사례 중 약 10%에서 25% 정도를 호르몬 요법이 차지한다고 추정하였다. (중략)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수행된 14개 인구집단 기반 연구 중 여덟 개는 미국, 다섯 개는 유럽, 하나는 호주(Canfell et al., 2008)에서 이루어졌는데, 유방암 발생률이 해마다 감소하는, 예상과는 다른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는 특히 50대 이상의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모든 연구자가 이러한 추세가 나타난 이유로 2002년 7월 여성건강주도연구가 발표된 후 호르몬 요법 사용이 극적으로 감소된 사실을 들었다.
이러한 유방암 발생의 감소가 호르몬 요법 사용의 감소와 인과적으로 상관이 있는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가설이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제안하는 일군의 연구는 관찰한 추세가 유방암 발견이나 다른 중요 위험요인의 변화에서 기인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366~367쪽 / 8장_ 역학이론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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