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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제스 혈암과 역사의 본질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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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의 개정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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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962g | 152*224*35mm
ISBN13 9788958205500
ISBN10 89582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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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주제는 모든 화석 발굴지들 중에서 가장 귀중하고 중요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버제스 혈암(Burgess Shale)이다. 그 발견과 해석에 얽힌 거의 80년에 걸친 인간 드라마는 문자 그대로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1909년에 연체성(軟體性) 동물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이 최고(最古)의 동물군을 발견한 것은 가장 뛰어난 고생물학자이자 미국 과학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행정가이기도 한 찰스 두리틀 월콧(Charles Doolittle Walcott)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고에 깊이 젖어 있던 그의 입장은 생명의 역사에 어떤 새로운 관점도 열지 못한 채 종래의 해석을 강요했다. 따라서 그곳에서 발견된 독특한 생물들은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그 생물들은 생명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잠재력 면에서 공룡을 훨씬 능가하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하는 일의 혁명적 잠재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연구를 시작했던 영국과 아일랜드의 고생물학자 세 사람이 20년에 걸쳐 남긴 지극히 상세한 해부학적 기술(記述)에 의해 이들 특별한 화석군에 대한 월콧의 해석은 뒤집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연구는 생물의 역사가 진보(progress)이고 예측가능하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우연성(contingency)을 강조하는 역사가들의 도전을 제기했다. --- p.7~8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상 모든 동물집단들이 불과 수백만 년 동안 (최소한 직접적인 화석증거로) 출현한 것이다. 수백만 년은 지질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버제스 혈암은 그 폭발적인 사건이 끝난 직후의 시대, 즉 그 사건이 만들어낸 모든 동물들이 지구의 바다에 살고 있던 시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캐나다 화석이 중요한 까닭은 삼엽충의 뱃속에 들어 있던 섬유의 마지막 한 가닥, 환형동물의 소화관 내에 남아 있는 최후의 식사, 생물의 부드러운 해부학적 구조의 지극히 상세한 부분까지 훌륭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화석기록들은 대부분 생물의 몸 중에서 딱딱한 부분에 대해서밖에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처럼 단단한 조직을 가지지 않으며, 설령 가지고 있다 해도 그 단단한 덮개 아래쪽의 구조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못한다(가령 당신은 껍질만 가지고 대합조개에 대해 어떤 추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 때문에 연체성 동물군의 희소한 화석들은 고대생물의 전체의 범주와 그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문이다. 버제스 혈암은 동물의 진화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캄브리아기 폭발의 첫 번째 개화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넓고, 많은 증거를 갖춘 창문이다. --- p.26

다채로운 다양성을 보이는 현생 생물 속에 단일한 순서가 있다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은 생명이 사다리 모양으로 진화하고 다양성은 역원뿔 모양으로 증가한다는 전통적인 도식과 그러한 도식을 낳은 편견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 사다리에서 참게는 단순한 생물로 인식되고, 원뿔형에서는 오래된 생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원래는 별개였던 두 가지 사고방식이 여기에서 하나로 합쳐져서 사다리의 하위에 위치하는 것은 오래된 생물임을 뜻하고, 역원뿔형도의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은 단순한 생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다리와 역원뿔이라는 잘못된 도상에 대해 우리가 그처럼 충성을 다하는 까닭이 그 근저에 무슨 특별한 비밀이나 수수께끼, 또는 미묘한 심리적 특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한 도상이 채택되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으리라는 우리의 바람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 p.52

이 새로운 방법을 통해 오파비니아의 실험은 결정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갑각을 절개해서 그 밑에 있는 체절의 부속지와 그밖의 부속 구조들을 확인하고, 머리 부분 덮개를 절개해서 전두부의 부속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리는 절지동물 특유의 관절을 가진 부속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가득차서 갑피를 절개했다. ‘그러나 그는 갑피 아래쪽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파비니아는 절지동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은 누가 어느 쪽으로 분명히 분류할 수 있는 종류의 동물이 결코 아니었다. 자세히 조사한 결과, 버제스 혈암에서 발견된 동물들 중에서 현생 그룹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최소한 마렐라와 요호이아는, 비록 고아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절지동물문에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오파비니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 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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