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우!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오고?” 현우가 짐짓 볼멘소리를 냈다. “나는 학교에 일찍 오면 안 되냐? 너는 일찍 와서 운동까지 하는 것 같더라?” 진식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운동? 응, 운동장 뛰는 것. 그게 뭐, 운동까지야. 나도 아침마다 내가 왜 뛰는지도 모르면서 뛰어.” “뭐라구? 왜 뛰는 줄도 모르면서 뛴다구?” 현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식이는 현우의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달리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뜻밖이었다. 진식이 입에서 ‘불안’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진식이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여 조금도 빈틈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불안하다니.
형근이가 허리춤에서 바로 오토바이 체인을 꺼냈다. 다른 아이들은 진식이를 둘러쌌다. 진식이가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컸다. 순식간에 가운데로 몰렸지만 진식이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니들 지금 뭐하는 건데?” “보면 몰라? 니놈 손 좀 보려고 그런다!” 형근이가 체인을 오른손에 감아쥐고 진식이를 후려칠 자세를 취했다. “그래? 그럼 쳐봐!” 진식이는 짐짓 여유를 보이는 척하며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 것인지를 살폈다. 그러나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어두운 복도 끝 계단이라 마땅히 피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중략) “니 아버지가 불곰이라고? 니 아버지가 불곰이면 니 새끼도 불곰이냐?” “반장이라고 쟀지? 오늘 니 제삿날인 줄 알아.” “너 어차피 지금 독 안에 든 쥐야. 앞으로 우리 말 듣든가 체인으로 대갈통 깨지게 맞든가 알아서 해!”
진식이는 계속 아버지랑 한 공간에 있기가 어색해 병실을 나갔다. 아무도 진식이를 붙들지 않았다. 병실 밖으로 나온 진식이는 복도 구석에 있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손을 닦고 싶어서였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닦아도 시원해지지 않는 손. 손을 닦고 싶다. 더러운 것,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손을 통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틈만 나면 손을 깨끗이 하고 싶다. 손이 깨끗해야 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불량기는 손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2학년 올라온 뒤론 무슨 일이 그리 많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1학년 때엔 누구 할 것 없이 아직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어리벙벙한 채 지나간 것 같다. 그런데 2학년이 되고서는 나름대로 학교생활도 익고 머리도 더 굵어져 아이들이 변한 것 같았다. 변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차라리 안 변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 많다. 하지만 오늘 뜬 하늘의 해도 어제의 해가 아니라 한다. 그러니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뭐 있겠는가.
주인공 진식은 공부에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모범생 반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읍내 역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주먹계의 전설 ‘불곰’이다.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지도, 전과라는 별 하나 달지도 않으며 팔에 새겨진 문신처럼 ‘차카게’ 사는 멋진 인물이다. 아버지를 닮아 흉기 같은 주먹을 가진 진식을 시기하고 세를 장악하려는 형근 일당, 일명 버섯즙 패거리는 진식과 그의 절친 현우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온다. 오토바이 체인으로 진식을 때려눕히려 했던 이른바 살인미수 사건으로 진식이 아버지, 불곰에게 훈계를 들어야 했던 버섯즙 패거리는 새끼 주먹계를 장악하기 위해 급기야는 주유소 습격 사건, 은빈 납치 사건을 벌이게 되는데…….
『불량청춘목록』의 플롯은 크게 두 갈래 갈등으로 짜여 있다. 하나는 진식과 형근을 비롯한 버섯즙 패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외부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진식이 혼자 겪는 내부 갈등이다. 이 두 갈래 갈등은 이야기의 ‘겉과 속’처럼 서로 역동적으로 얽혀져 흘러간다. 이야기의 겉은 외부 갈등으로 빚어지는 사건들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고, 이야기의 속은 외부 갈등으로 빚어진 사건의 배후를 성찰하는 심리 묘사로 가라앉는다. 이야기가 겉과 속으로 흘렀다가 멈추고, 드러내다 감추는 것처럼, 이 소설의 불량청춘 목록에도 불량의 겉과 속이 있다. 드러나는 ‘겉불량’과 감춰진 ‘속불량’ 사이의 갈등 목록이야말로 이 소설의 참 ‘플롯 목록’이다. (중략) 이 소설을 약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람보나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들이 짠 하고 나타나 해결해주는 청춘 액션 스토리쯤으로 보면 안 된다. 진식의 활약상에서 짱 대리 만족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이 소설 읽기를 그친다면 독자 자신도 불량사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밀림 시장만능주의가 조장한 껍데기뿐인 짱 이미지를 넋 놓고 숭배하는 좀비가 된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진식의 진짜 싸움은 씻어도 씻어도 다시 들러붙는 은폐된 속불량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람보처럼 저 혼자 모든 불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그것도 주먹으로 날려버려야 한다는 불량사회 ‘짱 멘탈리티’ 바이러스와의 투쟁을 읽어내야 한다. 튀어야 산다는 억지 거짓 개성을 조장하는 불량 소비 사회와의 싸움으로 그 의미를 확장해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량사회와 벌이는 진짜 싸움은 주먹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로 하는 것이라는 이 소설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진식이 제 속의 불량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학교를 나와 무작정 떠난 바다에서 맞닥뜨리게 된 불량한 자신과 한판 붙는 싸움이 진짜 싸움이며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란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제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시적 사유’로 벌이는 싸움이란 것도. 박경장(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