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동기화의 개념과 유형
임지룡·송현주
1. 들머리
이 글의 목적은 인지언어학의 주요 관점 가운데 하나인 동기화의 개념과 유형에 대한 주요 내용을 살피는 것이다.
소쉬르가 ‘단어 ‘X’에 대해 ‘X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자의성(恣意性, arbitrariness)’에 대해 언급한 이래, 자의성은 구조언어학에서부터 생성문법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특성의 하나로 강조되어 왔다.
(1)자의성 원칙이 제한 없이 적용된다면 최악의 복잡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수많은 기호의 어떤 부분에 대해 순서(질서)와 규칙성을 고안하며, 이것은 ‘상대적인 동기화(relative motivation)’의 역할이다. 만약 언어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이성적이라면, 이것은 독립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 메커니즘은 자연의 무질서한 시스템에 부분적으로 수정을 가하므로, 우리는 언어의 본성에 의해 부과된 견해를 선택하고 자의성을 제한함으로써 연구한다(Saussure 1916/ 1959: 133).
(1)에서 인용한 소쉬르의 논의를 고려하면, 구조언어학과 생성문법에서 자의성만을 부각해 온 것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소쉬르의 ‘상대적 동기화’의 개념과 인지언어학의 ‘언어의 구조와 의미는 동기화되어 있다’는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쉬르는 복합어 dix-neuf(19)를 예로 들면서 dix-neuf는 dix(10)와 neuf(9)라는 구성 요소에 의해 상당 부분 동기화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다만, 소쉬르는 자의성이 기본적이고 동기화는 자의성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지만, 인지언어학에서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기화되며 자의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된다(Lakoff 1987: 346). 즉 소쉬르와 인지언어학자 모두 동기화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나, 동기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인지주의자들은 언어의 구조가 인간 인지의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인지주의에서는 언어 표현의 구조와 의미의 ‘동기화(motivation)’와 ‘도상성(iconicity)’을 강조하고 있다(임지룡 2008: 7).
인지언어학은 언어 표현의 구조와 의미는 상당 부분 동기화되어 있다고 보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에 있어 ‘동기화’란 정도(degree)의 문제이다. 일찍이 Lakoff & Johnson(1999: 464)은 “대부분의 언어는 전적으로 자의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어느 정도 동기화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Radden & Panther eds.(2004: 2)는 동기화에 대해 ‘자의성과 예측성의 양극단 사이에 있는 연속적인 영역’이라고 하였다. ‘예측성(predictability)’은 동기화보다 훨씬 강한 개념이다. 어떤 언어 단위가 예측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의 의미를 구성요소를 통해 해당 언어 단위의 의미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자의성은 한 언어의 ‘단일어’ 대부분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있지만, 형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새말이나 이미 존재하던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될 때 그 관계는 대체로 동기화되어 있다. 또한, 통사구조나 담화구조 역시 전적으로 자의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기보다 언어 기능과 언어 주체의 인지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임지룡 2008: 328). 즉 언어 표현에서의 구조의 선택은 화자가 전달하려는 의미 및 의사소통 목적에 의해 동기화된다. 같은 관점에서 리치(Leech 1983: 24, 27)는 “문법 규칙은 ‘대화적 목적’에 관해 동기화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언어의 자의성보다는 언어의 구조와 의미의 동기화에 주목한다. 즉 인지언어학자들은 언어의 구조가 인간 인지의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특정 언어 표현은 주어진 상황을 개념화하는 특정 방법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Lee 2001: 1). 따라서 임지룡·윤희수 옮김(2009: 13-14)에서는 ‘동기화(motivation)’는 인지언어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며, 언어 현상들의 이면에 있는 동기화를 이해할 때 우리는 언어 구조에 대한 통찰력을 획득하고 언어가 현재의 모습대로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인지언어학의 동기화 개념은 종래의 언어학에서 구조와 의미 간의 자의성만을 강조해왔던 기존 시각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동기화에 대한 국내외의 대표적인 선행 연구는 다음과 같다. 도상성은 동기화의 한 유형인데, 동기화에 대한 초기 논의는 주로 도상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도상성에 대한 선행 연구를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국외 연구로는 Zipf(1935) Zipf(1935)는 “자주 사용하는 것은 형태를 최소화한다(High frequency is the cause of small magnitude).”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언어 외적 동기화 가운데 경제적 동기, 즉 의사소통적 동기에 대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Haiman(1980, 1985), Cuyckens et al.(2003), Radden & Panther eds.(2004), Dirven & Verspoor(2004), Ungerer & Schmid(2006)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Haiman(1980, 1985)은 동기화를 ‘경제적 동기(economic motivation)’와 ‘도상적 동기(iconic motivation)’로 나누어 살피고, 언어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경쟁적인 동기로 도상성을 최대화하는 경향과 경제성을 최대화하는 경향을 제시한다. Haiman(1980)은 도상성을 ‘영상적(imagic) 도상성’과 ‘도형적(diagrammatic) 도상성’으로, Taylor(2002)는 ‘모방적(imitative) 도상성’과 ‘구조적(structural) 도상성’으로 나누어 살핀 것이다. Radden & Panther eds.(2004)는 동기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모은 것으로 동기화의 개념과 유형은 물론이고, 언어의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동기화를 ‘생태적 동기(ecological motivation)’, ‘발생적 동기(genetic motivation)’, ‘경험적 동기(experiential motivation)’, ‘인지적 동기(cognitive motivation)’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국내 연구로는 박종갑(1996, 2000, 2013), 임지룡(2004), 김규철(2005), 김해연(2007, 2009), 임지룡·송현주(2015), 송현주(2010, 2011, 2017), 정병철(2015, 2016) 등을 주목할 수 있다. 국내에서 도상성에 관한 초기 논의는 이기동(1988), 임상순(1989, 1990, 1991), 권영문(1999), 김광현·황규홍(2001), 김광현(2003) 등과 같이 영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송은지(2006), 이기웅(2006) 등과 같이 러시아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일부 있다. 이 가운데 박종갑(1996, 2000, 2013)의 연구는 동기화의 여러 유형 가운데 도상성에 주목한 연구로 사동문에 관한 새로운 관점의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임지룡(2004)은 도상성을 양적 도상성, 순서적 도상성, 거리적 도상성으로 나누고, 단어와 문장, 텍스트의 다양한 층위에서 도상성의 실례를 풍부하게 수집하여 제시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송현주(2010, 2011, 2017)의 일련의 연구는 동기화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 언어의 다양한 층위를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정병철(2015, 2016)은 동기화의 관점에서 피동문과 사동문 교육 내용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는 점에서 국어교육학적 가치가 큰 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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