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어디에도 내리고, 언제든 내리며, 내리지 않을 때도 내린다. 비는 아픈 이들이 기다리는 ‘무엇’을 대신해서 찾아오는 저마다의 ‘무엇’이다. --- p.15
바람의 걸음은 담백했다. 들꽃에 눈이 팔려 나비의 날개로 팔랑거렸고, 나뭇가지에 앉아 새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 청보리밭에서는 그들과 춤을 추느라 갈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저녁이 되면 산사의 풍경--- p.風磬)을 흔들어 번뇌의 생명들에게 평온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은 어디에도 미련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으며,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 p.17~18
히말라야 등정 8일째. 가장 큰 고통은 영하의 추위가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다. 히말라야의 바람은 우리의 감정보다 냉정하다. 내리꽂는 칼끝보다 더 빈틈없이 나를 위협한다. ‘자신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내려가라.’고. --- p.72
사막 위를 며칠 째 걷고 있다. 낙타도 지쳤는지 거친 숨소리를 한숨처럼 뿜어댄다. 희미한 길 위에는 낙타의 하얀 뼈들이 이정표로 뒹굴고 있다. 아마도 나는 사막 위의 낙타이리라. 무거운 짐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고 묵묵히 의무의 발자국만 따라 걷는 자. 니체가 말한, “스스로를 시험하는 자를 시험하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가”라고 되물어야 하는 그 낙타. --- p.76
베네치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온 것은 아니다. 안개가 도시의 빛을 삼켜버린 것이다. 곤돌라가 안개를 헤치며 나에게 날아오는 것 같다. 그때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구스타프가 떠올랐다. --- p.86~87
가방을 싼다. ‘현재’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단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작가만을 넣는다. 바람을 따라 문 밖을 나선다. ‘지금’ 그리고 ‘그들의 나’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이 그렇듯이, 미련 따위는 남기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나는 홀로 기다린다. 낯선 도시의 밤을 홀로 들어가야 하는 숨막히는 떨림. --- p.90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남자 주인공 돈 록 우드는 비가 쏟아지는 도시 한 복판에서 텝 댄스를 춘다. 양팔을 벌리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춤을 춘다. 손에 쥔 우산은 애인이라도 된 듯 주인공과 함께 리듬을 탄다. 나는 종종 영화 속 돈 록 우드가 되는 꿈을 꾼다. --- p.95
아테네로 가는 페리가 나의 불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항구로 들어섰다.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고, 성난 파도는 페리와 나의 불안을 낙엽처럼 흔들었다. 나의 방은 8층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슬픈 장면들이 방안 가득 떠다녔다. 불안과 파도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 p.115
모로코의 거리는 적당히 젖어 있다. 소나기와 무더위는 두 다리가 교차하며 걸어가듯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없다.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져버리는 소나기를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리라.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길을 간다. 아이들도 이런 날씨의 변덕에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지는 분수 속으로 물고기처럼 뛰어 든다. --- p.119
바람이 그리울 때, 나는 제주도 두모악에 간다. 그곳엔 바람을 닮은, 바람과 함께 산 사람이 있다. 그는 그의 방과 마당 가득 바람들을 풀어놓았다. 산바람, 들바람, 바닷바람, 겨울바람, 밤바람들. 마당에 들어서면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추억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시골 학교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을 닮았다. 나는 그 바람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언제나처럼 나를 반겨준다. --- p.132
영화 [우편배달부]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쳐준다. 얼마 후, 우편배달부는 병상에 누워 있는 스승을 위해 ‘한 편의 시’를 준비한다. 밤하늘의 흔들리는 별과 일렁이는 바다를 녹음하여 들려준 것이다. 네루다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은유’를 만난다.
---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