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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 조선 후기, 여성해방과 어린이 존중의 근대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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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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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722g | 153*225*30mm
ISBN13 9791188765256
ISBN10 118876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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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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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여성해방의 진행은 서양과 비교해도 그리 늦은 것이 아니었다. 1860년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여종들을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았으며,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은 인간존중과 남녀평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서양은 1869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의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이 발간되면서, 여성의 참정권과 남녀평등 문제가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다. 따라서 조선 사회의 여성해방 흐름은 서양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성리학적 질서와 규범을 전유했던 여성의 노력이 역사적으로 누적된 결과였다. --- p.27

● 조선 사회는 공맹철학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어린이에 대한 교육제도와 시설을 갖추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실시했다. 어린이를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하고 집안 가족 모두가 양육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양에서 ‘아동의 발견’을 근대의 징표로 이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은 서양보다 더 이른 시점에 아동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국가도 보통교육 제도를 통해 어린이를 보편적으로 가르쳤으며, 부모 없는 어린이와 굶는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법률을 통해 구제했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의 철학이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 p.28

● 근대로의 이행은 다양한 단계와 경로를 거쳐 진행되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사회에서 여성해방과 어린이 존중을 통해 최종적으로 국민화와 국민국가의 형성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여성해방도 동학의 인간 평등사상에 의해 동학교도와 백성들에게 확산되었고, 어린이 존중은 동학의 인간 평등사상에 의해 움트기 시작해서 방정환의 어린이날 제정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의 신분해방과 여성해방·어린이 존중은 전 세계적 수준에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 pp.46-47

●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근대는 서양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다. ‘낮은 근대(low modernity)’ 또는 ‘초기 근대(early modernity)’에서 ‘높은 근대(high modernity)’로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따라서 ‘보편사적 근대’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이미 조선 사회에 송대(宋代)의 근대적 문명이 전파·적용·진행되었다. 이는 조선사회에도 이미 ‘낮은 근대’ 또는 ‘초기 근대’가 문명 간 패치워크를 통해 안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 pp.55-56

● 영·정조 시대의 민국 이념은 고종에 의해 새롭게 부활했다. 고종은 민‘ 국상여(民國相與)’, 즉 “백성과 나라가 서로 함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중략) 백성과 국가는 서로 의지해야 나라가 평안하며, 백성과 국가는 서로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은 외형상 황제의 전제정이었으나, 그 황제에 의해 백성의 국가임이 천명된 것이다. --- p.84

●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침공부터 1910년 일제의 한국병탄까지 우리 국민은 16년의 전쟁을 전개했다. 퇴위된 고종은 그 이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망명을 통한 임시정부 수립 등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독시(毒弑)당했다. 고종의 독시 이후 우리 국민은 공분했고 그 공분은 3·1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의 중심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이끌었던 동학의 후신 천도교였다. 그리고 1910년 병탄 이후부터 1945년까지 36년의 대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우리 국민은 5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쉼 없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 p.118

● 서학과 개화사상 모두 남녀평등과 여성문제에 일정한 근대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한계도 명확했다. 이런 흐름은 서학과 개화파들이 서양의 여성관에 영향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의 문화가 수용되었고, 박영효와 유길준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도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모성담론의 지배적인 영향은 빅토리아조(1837~1901) 이후 백인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기는 ‘가정 중심성(domesticity)’이 탄생한 시기다. 이에 따라 당시 많은 작가들은 “여성의 기본 임무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평화·아름다움·정서적 안정이 있는 천국을 만들어주는 가정적 의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여성은 오히려 이 시기에 가정에 더욱 포박되었다. --- pp.221-222

● 모든 인간은 동등하며 따라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상식적 요구는 근대화의 여정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서양 모두 여성의 정치 참여는 불가능했고, 각종 법·제도는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기능으로 작동했으며, 일상생활은 남성 중심의 위계적 질서가 강력했다. 서양에서 여성은 이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조선사회도 이혼과 재혼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사회였다. 18~19세기를 거치며 남녀평등의 주장이 서서히 등장했으며 남성 중심 사회도 조금씩 변화했다. 그러나 지금의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문제는 실제로는 20세기적 현상이다. --- p.282

● 1922년 5월 1일 경성에서 천도교소년회가 주최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고, 이듬해 1923년 5월 1일에는 천도교소년회를 비롯하여 불교소년회, 반도소년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어린이날 시작은 1923년 5월 1일이다. (중략) 어린이 존중사상을 가능하게 했던 동학과 천도교의 종교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녀평등, 인간존중사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동학의 거대한 흐름이 그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 p.294

● 조선사회는 국가와 민간이 분담하는 구휼정책을 추진했다. “민간에서 유기아·행걸아를 노비·고공·양자로 수양하는 것을 법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유기아수양법(遺棄兒收養法)과, 유기아·행걸아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조치로서 이들에게 급량(給糧)을 시행”했던 것이다. 국가의 구휼은 유기아는 풍흉(?凶)을 가리지 않고 급량을 실시했고, 행걸아는 흉년에 보리 수확기까지 급량했다. 유기아·행걸아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지침까지 만들어서 구휼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지침뿐만 아니라 급량의 절차와 사후 감독, 의료 대책, 그리고 이런 실무적 일을 지방 차원에서 진행할 절차와 재정 등도 상세히 규정을 해두었다. --- p.305

● 조선사회는 유교와 과거의 영향으로 교육을 중시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인구 증가, 시장 성장, 국가의 장려 등에 힘입어 민간이 설립한 초·중등교육기관인 서당이 확산되었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禮典)」에 의하면, 19세기 초에 서당이 대개 4~5개 마을마다 존재하여 서당마다 선생이 ‘아동 수십 명’을 가르쳤다. 18세기 중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조선의 서당 수는 2만1천여 개소, 훈장은 2만1천여 명, 학동은 26만여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헌창은 1794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수록된 전국의 동리수(洞里數)는 39,456개이고 『조선총감부통계년보(朝鮮總督府統計年報)』에 의하면 1910년 말 동리수(洞里數)가 68,819개인 것으로 보아, 19세기 초에 서당은 1만개에 달한 것으로 보았다.『조선총독부통계년보』에 의하면, 1911년 전국의 서당 수는 16,540개, 수학(修學) 아동 수는 141,604명이었는데, 조선인이 설립한 각종 사립학교는 1910년 2,225개였다. 경제침체기인 19세기에 서당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 p.325

● 동학의 핵심인 내유신령, 외유기화, 수심정기는 어린이를 대하는 것이며,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의 13자 주문도 궁극적으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은 1886년 「내수도문(內修道文)」에서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은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이를 치면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화순하기만 힘쓰옵소서”라며, 어린아이를 한울님과 같이 대하는 것이 도의 길임을 밝혔다. --- p.327

● 천도교소년회는 “만 7세부터 만 16세까지의 소년으로 조직”되었으며, “소년들의 덕지체의 발육을 위한 실행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했다. (중략) 천도교소년회는 새로운 인격의 향상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동학의 정신과 종교 활동을 바탕으로 소년 대중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운동은 이처럼 동학의 어린이 존중사상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이다. --- p.353

● 지금과 같은 의미의 어린이의 의미로 대중에게 확산되고 정착된 것은 잡지 『어린이』의 창간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린이’란 용어가 보편화되고, 어린이를 중요한 존재로 확인하게 된 획기적 전환 지점에 잡지 『어린이』가 있고,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정환 스스로도 (중략) “‘애 녀석’, ‘어린애’, ‘아해놈’이라 는 말을 없애 버리고 ‘늙은이’, ‘젊은이’란 말과 같이 어린이라는 새 말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요, 어린이의 보육, 어린이의 정신지도에 유의하여 여러 가지의 노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의 일입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과거의 용어를 폐기하고 모두가 동일하게 존중받는 의미에서 어린이란 단어를 제기한 것이다. --- p.356

● 방정환의 종교적 실천과 조국의 독립과 미래를 위한 행동은 어린이운동으로 집약될 수 있다. 가장 깨끗한 ‘인내천의 천사’인 한울님으로서 어린이들을 위한 실천,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미래의 일꾼으로서 어린이운동은 불가분 결합되어 있었다. 그의 종교적 신념과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어린이 존중사상이며 어린이운동이었다. --- p.376

● 방정환은 동학과 천도교의 교리 속에서 어린이를 발견했고,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한 3·1운동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을 교차적으로 경험하면서, 어린이를 앞세워 희망을 조직해 나갔다. 그에게 식민지 조국의 어린이들은 일제의 강점에 의한 억압과 어른에 의한 억압을 동시에 받는 가장 순수한 존재였다. 어린이는 어른과 동일한 인간으로 대우 받고 존중받아야 하며, 동시에 독립된 인격으로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역이었다. --- p.393

● 서양의 근대화를 추격해 가면서 겨우 발전해 나간 저발전의 동아시아와 조선이었다는 우리의 통념은 우리의 실제 역사를 왜곡된 관점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중략) 방정환이 주동하여 시작된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날 제정은 우리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였으며, 세계사적으로도 터키 바로 다음으로 앞선 것이었다.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는 어린이운동은 동시에 짓밟히고 학대받는 조국의 미래와 독립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해방과 인간평등의 세상을 향한 동학의 거대한 족적은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날 제정으로 나타났으며, ‘어린이 존중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동의 발견’을 넘어 인간평등의 한울님으로 어린이를 존중하는 사상이 조선의 후기에 잉태하여 사회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 pp.39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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