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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인 콩의 도시에서

끓인 콩의 도시에서

테이크아웃-14이동
한유주 저 / 오혜진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0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8 리뷰 384건 | 판매지수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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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80쪽 | 112g | 115*168*15mm
ISBN13 9791155351444
ISBN10 115535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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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탄의 추억. 아무것도 제대로 말해 주지 않지만 단편 소설의 제목으로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실제로 아일랜드에 가본 적이 있었고, 베케트의 소설도 몇 편이나마 읽어 본 적이 있었다. 이내 짐이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빛에 눈이 부셨다. --- p.10

해금강에 가서 술을 마셔야지, 나는 생각했다. 원 없이 마실 수야 없겠지만 반주를 들면서 토탄의 추억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8

남인도의 식당에서 한국 가요를 들으며 도키를 배경으로 하는 토탄의 추억을 쓰겠다는 생각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무엇이든 써야 했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량이나 다름없이 며칠 보내게 되었 으니 빈 시간을 이용해 무엇이든 써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자이푸르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토탄이면 어떻고 추억이면 어떤가. 글을 쥐어짜 낼 수만 있다면 토탄이건 맥주잔이건 가루로 만들 수도 있었다. 나는 노트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 p.19

하지만 화자에게 토탄의 추억을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나는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지난 십여 년 간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고 몇몇 도시에서는 장기간 체류한 적도 있지만 딱히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토탄과 추억을 연결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도시에서 특징을 찾지 않았다. 어느 도시에 가건 스타벅스부터 찾았다. 어딜 가나 똑같은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현대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 p.27

나는 토탄의 추억을 마저 써야 했다. 사실 토탄은 무작위로 선택된 단어였다. 나는 토탄을 본 적이 없었다. 혹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을 토탄과 연결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다 아일랜드에 갔을 때, 나는 토탄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아니다. 꿈에서 아일랜드에 갔을 때 떠올린 제목이었다. 한 줄도 쓸 수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친구가 자살한 뒤로 한 줄도 쓸 수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짓말이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가끔은 지운 것보다 쓴 것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니, 엄밀히 쓰자면, 아니, 엄밀하다는 단어를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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