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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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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9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554g | 146*210*30mm
ISBN13 9791130813714
ISBN10 11308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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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돌아오려는데 지수가 신발장에서 워커를 한 켤레 꺼냈다. 그 워커는 약간 낡은 것으로 목이 뭉텅 잘려 있었다.
“너 가져다가 신어.”
“니 와 이카노.”
옷도, 신발도 무척 귀하던 시절이었다. 군부대 철조망 밖으로 흘러나오는 군복이나 워커는 그대로 입거나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복은 검정 물을 들였고, 워커는 목을 뭉텅 잘라 신었다. 서울 아이들은 그 시절 목 자른 워커를 신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신문 배달원들도 대부분 목 자른 워커를 신고 다녔다.
“지난번 만났을 때 네가 고무신을 신은 채 절름거린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머니가 남대문시장 헌 구둣가게에서 구해주신 거다.”
사실 현은 그 워커를 몹시 신고 싶었다. 배달 초기 고무신을 신고 다니자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나 가래톳이 부었다. 그래서 절름거리던 것을 지수가 본 모양이었다. 지수가 준 워커를 신자 조금 헐렁했지만 끈을 꽉 조이자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가뿐했다. --- p.82

내 머리숱에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아졌다. “청춘은 희망에 살고 노년은 추억에 산다”고 하더니, 나이가 들수록 지난날의 추억들이 더욱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살아생전에 꼭 만나고 싶은 이들의 얼굴들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떠오른다. 고1 때 짝 장지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틈틈이 노트에다가 그 배우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시골 사람인 나에게 애써 그들의 얘기를 들려줬다. 1975년 내가 모교 교단에 서 있을 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그가 불쑥 엽서를 보낸 뒤 여태 더 이상 소식을 모른 채 지내고 있다. ……그가 보고 싶다. 죽기 전에 그를 꼭 만나서 부둥켜안고 포옹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제 흔적도 없는 모교 옛터 수송동 골목을 거닐며 지난 추억을 얘기하고 싶다. 그는 나에게 포숙(鮑叔)과 같은 친구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p.94~95

“하지만 맹목적인 용서는 곤란합니다. 그 용서의 대전제는 가해자의 참회입니다. 가해자가 먼저 회개해야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는 참회한 자에 뒤따르는 화답이지요. ‘정의가 없는 용서’ ‘회개하지 않은 용서’ ‘대가 없는 용서’는 값싼 용서로 잘못이 계속 되풀이될 수도, 더 큰 재앙을 낳을 수 있습니다.
”“참 ‘용서’란 어려운 화두로군요. 그렇다고 상대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마음속에 쌓인 원한으로 스스로 불행해진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지는 게 아닐까요?”
--- p.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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