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실력행사에 나선 듯하다. 지시한 사람은 도지마일까, 스기에일까, 아니면 우라와 경찰서 전체의 뜻일까. 어쨌든 얻어맞은 곳은 뼛속까지 시큰거렸고 배신자라고 비난당한 가슴은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왠지 후련하기도 했다. 이로써 나는 우라와 경찰서와 완전히 맞서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라와 경찰서 역시 나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해 온 셈이다. 조직을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충성을 맹세할 것인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미지근한 비가 상냥하게 얼굴을 씻어 주었다. 대로로 나가 가로등 아래로 가자 너덜너덜해진 셔츠와 바지 곳곳에서 피가 배어나는 것이 보였다. 걸어갈 수 없을 것 같아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와타세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택시는 좀처럼 서지 않았다. --- pp.231-232
순간 와타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토록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신다면 형사님이 직접 그 희망이 돼 보시는 건 어떨까요? 두 번 다시 원죄를 만들지 않겠다.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다. 자신이 그런 경찰관이 되고, 또 그런 경찰관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상자를 열어 버린 자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와타세는 조금 곤혹스러워하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판사님. 분명 매우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습니다만, 지금의 저는 그 말씀을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두 번 다시 틀리지 않는 게 중요한 건 알지만, 그러기 위해 뭘 어떡해야 좋을지…….” “앞으로도 계속 형사 일을 이어 가시겠죠?” “허용된다면.” “느긋하게 하시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초조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억울한 누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나락 끝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형사님이 돼 주세요. 그리고 절대 진실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 아시겠어요? 저와 하는 약속이에요.” 와타세가 곤란해하는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서 시즈카는 만족했다. 성인치고는 유치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젊은이는 해가 뜬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뻗어 가는 자질을 지녔다. 재판관 인생 막바지에 이 젊은이를 만난 것이야말로 법의 여신의 뜻 아닐까. --- pp.270-271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 관찰력이 부족했다. 문손잡이와 유리칼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결국 내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 원죄를 만들고 나 자신과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와타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잿빛이던 하늘이 동쪽으로 갈수록 연해지고 있다. 그 끝에는 구름의 가장자리도 보였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비가 어느새 멎고 햇빛이 비친다. 바람은 매번 방향을 바꾸고 어린 새싹은 느리지만 나무로 자라난다. 그렇다면 인간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와타세는 미련을 떨치듯 머리를 흔들었다.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다. 억측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겠다. 깨달음이 부족하면 깨달음을 바로 흡수하겠다. 관찰력이 부족하면 관찰력을 반드시 획득하겠다. 지식이 부족하면 지식을 끝까지 찾아내겠다. 타인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책을 읽고, 조금 더 다양한 곳에 가서 세상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그렇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형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