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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한 천사들

미미한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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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26g | 125*210*20mm
ISBN13 9791189356088
ISBN10 118935608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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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진실을 감춰봐야 소용이 없는 법. 몸이 반응하는 게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울음이 잘 안 나온다. 다른 곳 못지않게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달라졌다. 길거리는 비었고, 어느 도시든 이제 사람은 거의 없고, 시골이나 숲에는 더더욱 없다. 하늘은 환해졌지만 여전히 희끄무레하다. 거대한 시체 매립지들의 독기는 수년간 쉼 없이 불어온 바람에 씻겨 나갔다. 어떤 광경들은 아직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어떤 광경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들은 죽었다.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당장이라도 오열이 터질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눈물 조절사에게 가봐야겠다. --- p.11

여기 니콜라이 코치쿠로프, 일명 아르티옴 베시올리가 잠들다, 여기 그를 구타한 개새끼들과 그를 살해한 개새끼들이 잠들다, 여기 짭새들이 축제를 중단시켰을 때 콤소몰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던 아코디언이 잠들다, 여기 피 웅덩이가 잠들다, 여기 누구도 다 마시지 않았고 누구도 주워 담지 않아 오랫동안 벽 밑에 남아 몇 주고 몇 달이고 탁한 빗물이 차고 약 1년 뒤 1938년 5월 6일 말벌 두 마리가 익사한 찻잔이 잠들다, (…) 여기 체포된 날의 하늘 모습이, 거의 티끌 한 점 없는 하늘 모습이 잠들다, 여기 베시올리의 잊을 수 없는 소설 『피에 씻긴 러시아』가 잠들다. --- p.34

이제 내 말을 잘 들어라. 더 이상 농담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능숙하게 그려졌느냐 아니냐, 초현실적이냐 아니냐, 포스트엑조티시즘 전통에 속하느냐 아니냐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얘기들을 풀어내면서 두려움에 소곤거리고 있는지 분노로 포효하고 있는지, 아니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얘기들을 풀어내는지를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내 목소리 뒤에서, 내 목소리라고 불러야 할 것 뒤에서, 현실에 맞선 급진적 전투의 의지를 감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아니면 단지 현실 앞에서의 정신분열적 무력감밖에 감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혹은 평등주의 투쟁가를 부르려 하면서 현재나 미래 앞에서 절망과 환멸로 침울해졌느냐 아니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 p.139

노파들은 원을 그리며 주변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몸이 다 망가지고 건망증이 심해졌으며, 이제는 손가락뼈나 입을 내 피부에 대고 즙을 빨아 되새김질하는 짓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제 감정도 향수도 느끼지 못한 채 느릿느릿 내 주위를 돌았다. 그들은 불사의 존재로, 삶을 계속 꾸려갈 형편이 못 되면서도 죽는 법을 몰랐으며, 가끔은 냄비 파편을 두들기거나 한동안 자기네 골격을 보강하는 데 썼던 철근을 망치질하기도 했고, 상황이 어떻든 내가 자기들에게 이상한 ‘나라’를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을 어렴풋한 몸짓으로 전하기도 했다. 기실 육신이 탈바꿈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무(無)가 행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 샤이드만은 계속해서 매일 하나씩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아마 달리 할 말이나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할머니들에 대한 연민이 지독히 순종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구도 짐작 못 할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더 이상 청중의 반응이 없고 지평선과 그 너머까지 모든 것이 사멸했으므로 일화를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거나 스케치만 할 때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그는 매일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마흔아홉 개 단위로 배열했다. 그는 그 뭉치 하나하나에 번호나 제목을 붙였다. 그날 밤, 그 10월 16일에, 나는 그에게 다음번 ‘나라’ 뭉치에는 ‘미미한 천사들’이라는 제목을 붙이라고 제안했다. 그건 내가 예전에 다른 상황, 다른 세상에서 로망스 한 편에 붙인 제목이지만 샤이드만이 마무리하고 있는 이 모음집, 이 마지막 뭉치에 잘 어울려 보였다. --- p.150~151

프레드 젠플의 책들을 읽으라. 마지막 쪽이 여전히 피와 그을음으로 끔찍하게 더럽혀져 있는, 끝까지 다 쓴 책들뿐 아니라 끝이 없는 책들도 읽으라. 애호가들에게 배포하려고 때로는 사본 두 부를, 심지어 세 부를 만들어놓은 소설들을 읽으라. 몇몇 작품은 이러저러한 시체 매립지에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에워싼 재를 긁어내고 스며든 생석회를 제거하고 젠플 자신의 피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쉽게 접할 수 있다. 몇몇 다른 작품은 아직도 그의 꿈이나 당신 꿈의 수면 밑, 두 흐린 물 사이로 떠다니고 있다. 이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해도 읽으라. 그 책들을 좋아하라. 그 책들은 종종 굴욕을 산 채로 통과한 사람들이 살아 숨 쉬어야 했던 굴욕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 책들에는 관능적 애정의 장면들도 있다. 그 소설들은 어찌 되었든 때로는 순정과 추억을 비추는 것을 단념하지 않는다. 그 책들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때 남는 것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책들이 훌륭한지의 여부는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 책들 대부분은 프레드 젠플이 수용소 시절과 수용소 시절 이후에 몰두해 있었던 만물과 만인의 소멸에 대한 성찰을 재개하고 있다. 그 책들을 읽으라. 그 책들을 찾아보라.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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