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영혼이건 구두 수선공들의 영혼이건, 만들어진 틀은 다 하나이다. 왕들의 행동의 중요성과 그 무게를 보고, 우리는 그들 영혼이 더 무게 있고 중대한 원인으로 만들어진 것인 줄로 생각한다.” 라고 몽테뉴는 주장하면서 이어 이렇게 해명해준다. “그들의 마음도 우리 마음과 똑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우리가 이웃 사람과 말다툼하는 똑같은 이유로 왕들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진다.”
실로 모든 인간은 영혼 앞에 평등하다. 신분이나 빈부 혹은 지식의 고하로 몸이나 의상은 치장할 수 있으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면 아마 각자 지니고 있는 영혼의 향방일 것이다. 영혼이 아름다운 인간이야말로 진실로 고귀한 존재일 텐데,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런 영혼의 형태를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없어 세상은 이제 몸치장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다듬어내려는 영혼의 성형수술이 성행하고 있다.
이 분야의 시술로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이 문학예술인데, 많은 작품들이 각자의 영혼에다 온갖 기교로 장신구를 달아 돋보이게 하고자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그런 영혼의 장신구와 화장술을 동원하지 않은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에 정감이 쏠리는 게 너무나 당연지사다. 바로 김순례의 수필이 지닌 매력 포인트다.
작가 김순례의 산문은 자신의 영혼을 전혀 꾸미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독자들에게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요’, 라고 묻는 듯이 다가서는데 있다. 그녀의 영혼은 노마드처럼 영원한 미로를 떠돈다. 영혼의 안주지를 찾지 못한 이 작가는 그렇다고 결코 불안하거나 불행하지는 않다. 김순례의 영혼은 안주지가 아닌 유랑의 여정 속에서나마 작은 안락과 한조각 행복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그의 구체적인 삶의 자세는 작품 『마음속 풍경』에 잘 나타나 있는데, 작가는 이런 자세를 살아가면서 힘 빼기라고 요약해준다.
작가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들 각자는 자신에게 어떤 색을 칠하며 사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라고 서문 ‘책을 내면서’ 에서 말한다. 세상살이를 들여다보면서 작가는 ‘감탄과 부러움의 눈길로 훔쳐보기’도 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장면도 살펴보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오리무중도 보았음을 실토한다. 이런 세상살이 속에서 작가는 ‘잡히지 않는 생각의 꼬리’를 잡아보고자 하소연 하듯이, 답을 찾듯이 주절주절 써 내려간 게 이 저서로 ‘글이라기보다는 일기, 잡문에 가깝다’고 겸허하게 고백하는데, 그 고백에 진솔성이 묻어난다.
김순례가 영혼의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기준은 ‘꽃은 활짝 피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은 조용히 사색에 빠져있을 때 가장 인간답게 보입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명상과 사색에 큰 비중을 둔다. 그 명상과 사색은 몽상이나 만상이 아니라 소망과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더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빛은 사라지고 말죠.’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이룩한 성과 앞에서 잠시 황홀해 하다가 이내 그 빛을 잃어버리고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마련이 아닌가. 그 도약을 위한 사색은 다시 열정을 낳고, 열정에 불타 끓고 있을 때 인간 존재의 열기는 가장 높게 올라간다. 높게 오른 열기가 새로운 성취에 이르면 다시 하강하는 시피포스의 신화처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김순례의 수필집 『마음속 풍경』이다.
그래서 그녀(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노마드가 될 수밖에 없다. 떠돌면서도 영혼은 언제나 소망과 꿈을 향한 명상과 사색에 잠겨 있는 수필가 김순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가서는 삶의 주제는 아마 작품 『신독(愼獨)의 시간 갖기』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탈을 꿈꾸며 안주하지 못하는 본성은 아마도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갖춘 태초의 파라다이스에서 조차 일탈을 꿈꾸어 그 동산을 쫓겨나게 되는 그때부터 우리의 방랑기질이 DNA화 되어있었던 것은 아닐는지.(『신독(愼獨)의 시간 갖기』)
그러다 보면 작가는 어느새 영혼의 허물벗기가 시작되고, 이내 새로운 허물에 싸인 영혼의 허물을 또 벗어나야 하는 노마드의 운명(이런 현상은 작품 『허물벗기』에 잘 그려져 있다) 속에서 작가는 ‘나의 고독은 어디로 달아나버린 것일까.’라고 반문한다. 이 첫 작품집이 작가 김순례에게 첫 허물벗기 역할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앞으로 두 번 세 번 계속하여 허물을 벗어나며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주기를 기대한다.
- 임헌영 (평론가, 서울디지털대학 교수, 전 중앙대 교수)
그녀의 글은 안개 걷힌 후 서서히 드러나는 내 어릴 적 마을 풍경과 오랫동안 잊어버린 전설들을 떠 올리게 한다. 유년기의 기억을 담고 그리운 옛 동네를 찾았을 때 집 어귀에서 마주했던 큰 나무가 바로 후박나무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어릴 적에도 분명 그 나무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터인데 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글은 가슴 속에서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찾게 해준다. 내 혈관의 요동소리에 묻혔던 은밀한 속삭임을 듣게 해주고, 흩어져 있는 언어들을 다시 세워 우리들이 잃어버린 옛 기억을 찾게 해준다.
- 윤경숙 (서울보훈병원 간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