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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애 1

일월애 1

강애진 | 로담 | 2012년 03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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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63쪽 | 470g | 128*188*30mm
ISBN13 9788997253296
ISBN10 899725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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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이제 됐어요. 됐으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어깨를 붙들고 흔드는 은금의 목소리에 월하는 정신을 수습했지만 찢어진 저고리 앞섶을 움켜쥘 뿐 일어서질 못했다.
“이것으로 가리면 괜찮아요.”
두르고 있던 행주치마를 냉큼 벗은 은금이 월하의 몸을 감싼 채 그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부축했다.
“나리, 우리 아씨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드려요, 나리!”
품에 안 듯 제 주인을 부축한 여종이 거듭 고개를 숙여오자 부채 속에 가려진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황은 월하에게 눈을 고정했다. 조금 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그녀는 후들후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 약하면서 강한 척 했단 말이지? 그것도 두 번씩이나!’
피식 웃음이 났다. 무모하지만 흔들림 없었던 그녀의 당찬 용기에 웃음이 났고, 분을 참지 못해 부르르 떨던 한명회의 모습에 속이 다 시원했다. 두 눈에 한껏 웃음기를 머금은 이황은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닌 제 목소리를 내었다.
“인사라면 응당 네 주인에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이 목소리는…… 설마?’
월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분명 그였다. 비록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부채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 온몸을 가렸다할지라도 저 시원스런 눈매와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만큼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를 알아본 모양이구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부채를 손바닥에 탁 쳐 접은 이황은 월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나, 나리?”
가뜩이나 커다란 눈이 더욱 커다래지자 이황은 장난스레 농을 던졌다.
“이리 묘한 상황에서만 마주하게 되다니, 너와 나의 인연이 참으로 기이하지 않느냐?”
하필이면 이런 꼴을 보일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월하는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은혜를 입었습니다. 무엇으로 보답을 드려야 할지…….”
“두 곡이다.”
“무슨?”
“네 지난 번 약조하지 않았더냐. 내 이곳에 들르게 되면 가야금 한 곡 타주겠다고. 허니 오늘 일까지 합해 두 곡이라야 셈이 정확하지 않겠느냐.”
그녀가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이황은 그 모습이 마치 여름날 서쪽 하늘을 수놓는 붉은 노을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리,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바싹 곁으로 다가온 무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황의 눈이 다시 월하에게로 향했다.
“네 가야금 소리는 저적해놓아야 할 것 같구나.”
“그리는 아니 됩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격양된 목소리에 네 사람의 고개가 한꺼번에 돌아갔다.
“행수 어르신?”
겨드랑이 사이에 치맛자락을 낀 채 중문으로 들어서던 향비는 월하를 무시한 채 젊은 선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인 송림각 행수, 향비라 하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그와는 달리 행수의 의중을 알아차린 월하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런 월하를 차가운 눈으로 힐끗 쳐다보던 향비는 다시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송구하오나 나리께서는 이대로 돌아가실 수 없사옵니다.”
한 쪽 눈썹을 찡긋 치켜세우던 이황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갈 수 없다? 연유가 무엇인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잠시 안으로 드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향비는 집사를 향해 명령했다.
“나리를 별채 끝 방으로 모시도록 하게!”
“예, 어르신. 나리, 소인을 따르시지요.”
불안해 보이는 월하에게 잠시 시선을 주던 이황은 집사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직이 한숨을 베어 문 무영도 뒤를 이었다.
“행수 어르신! 대체 저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넌 돌아가 흐트러진 그 매무새나 다듬는 게 좋을 게야!”
“행수 어르신!”
단호하기 이를 데 없는 향비의 말은 다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얼굴빛이 싸늘해진 월하는 손마디들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행주치마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없기는 왜 없어? 그러게 누가 일을 이따위로 만들래? 감히 상당군이 누군 줄 알고 거부해, 거부하길!”
“만약 상당군께서 벌을 내리신다면 이년 달게 받을 것입니다. 목숨을 달라하셔도 기꺼이 내드릴…….”
“네 이년!”
앙칼진 목소리가 마당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행동을 저질렀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모습에 향비는 속에서 불기운이 치솟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야? 네년이 아주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상투 끝을 휘어잡고 흔들려 하는구나. 감히 네가 무엇이기에 남의 물건을 가지고 네 마음대로 한단 말이냐? 그 목숨이 네 목숨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월하는 그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에 향비의 얼굴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내 원 참! 예쁘다, 예쁘다 해주었더니 네가 아주 공주 마마라도 되는 줄 안 게야?”
“잘못했습니다, 어르신. 허니 저분은 그냥 보내주십시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은금이 넌 뭘 하고 있는 게야! 어서 이 물색없는 것을 데려가지 않고!”
“예? 예, 어르신! 아씨, 어서 가요!”
은금이 팔을 잡아끌자 그 힘에 딸려가면서도 월하는 행수를 쏘아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네가 한 가지를 간과한 모양인데, 기방 법도가 그러하거니와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니라. 그러니 노비 문서에 이름이 오르고 싶지 않거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에 어서 들어가 기도나 하는 게 좋을 게야!”
싸늘한 눈길을 되쏘아주던 향비는 차가운 미소를 남긴 채 돌아섰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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