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경영진의 부실한 운영으로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났고, 2004년 봄을 지나면서 두 달 동안 240명이 넘는 직원들 임금 60여 억 원이 체불됐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의 퇴직금조차 한 푼도 적립되지 않아 30여 년 근무한 직원의 경우 1-2억 원의 퇴직금을 날릴 상황이란 것이었다. 하루 종일 시키는 대로 성실히 일해 봤자 제날짜에 월급 한 번 못 받는 회사, 게다가 나이 들어 퇴직을 하려 해도 땡전 한 닢 받을 수 없는 회사, 이런 곳에서 과연 그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240명이 넘는 노동자들은 생존권 위기 앞에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었다. _26쪽
일반 기업은 개인 소유이거나 주식회사가 대부분으로, 주식회사는 1원 1표가 원칙이다. 이에 반해 자주관리기업은 구성원들이 실질적 소유주면서도 주식이 아닌 사람이 중심으로 1인 1표의 원리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경영의 측면을 보면, 일반 기업은 철저히 경영자 내지 경영진 중심이다. 자주관리기업에도 경영팀이 존재하긴 하지만 독점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경영자치위원회에서 경영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노동의 측면을 보자. 일반 기업에서는 회사 경영진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여 주어진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표준이다. 하지만 자주관리기업에서는 구성원인 노동자들이 직무자치, 즉 현장자치모임에 참여해 팀별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선다. 각자 성실히 일하되, 팀 단위로 논의하고 제안하며 공동으로 해결하고 공동 책임을 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경영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주체, 노동의 주체가 된다. _51쪽
모든 성공과 실패에는 외인과 내인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실패하는 사례들의 경우 외인과 내인이 모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내외 시장의 경쟁과 독점 대기업의 위협, 나아가 비자본 주의적 사회경제 체제를 혐오하는 정치·경제 엘리트 등에 의한 방해 등이 가장 큰 외인이다. 그리고 내인으로는 자주관리 경영체 내부의 역량과 의지 문제가 중요한데, 내부 분열과 이해 갈등, 그리고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문 역량의 결핍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외적 환경 속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이 있다면, 우리는 그 내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 구성원들 내부에 존재하는 잠재력, 특히 신뢰와 협동에 기초한 ‘휴먼 파워’(human power)의 저력이야말로 온갖 역경과 고초 속에서도 조직적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 요인이 아닐까 한다. _63쪽
우진교통에서는 매월 경영설명회가 열린다.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법’에서 30인 이상 기업에 설치하도록 돼 있는 노사협의회도 우진교통에서는 아주 기본 사항이다. 이미 자주관리위원회에서 노사협의는 물론 노동자치가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진교통에서는 경영설명회를 통해 일상적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경영정상화, 나아가 경영선진화의 기본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기존 경영진이 탐욕과 무능의 결과, 두 달 이상 노동자 임금을 체불하고 상여금도 지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퇴직금조차 지급 전망이 불투명할 정도로 병든 경영을 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가하고 스스로 운영하는 회사다. 따라서 매년 임금인상도 전체 직원의 투표로 결정한다. 직원들은 회사 대표와 임원까지 선거로 뽑는다. 1원 1표의 주식회사 원리를 1인 1표라는 협동조합 원리로 승화시킨 셈이다. 따라서 우진교통은 상법상의 형식으로는 주식회사이지만 경영의 실제에서는 협동조합에 가깝다. 그래서 최근에는 ‘협동조합형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_72쪽
과연 노동자들이 기업을 경영할 수 있을까? 기껏 해봐야 1년을 갈 수 있을까? 전문 경영지식이나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 머리에 뻘건 띠나 두르고 구호를 외치던 파업 노동자들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 아마 빚도 다 갚지 못하고 금세 망하고 말걸? 이런 식이었다. 2005년 1월에 우진교통이 자주관리기업으로 출범할 때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위와 같은 주변의 우려나 회의적인 질문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진교통의 240여 구성원들은 ‘긍정적 집단기억’에 기초해 김재수 대표로 상징되는 ‘혁신적 리더십’ 1 과 그것을 체화한 ‘자주관리 경영구조’의 구축, 나아가 노동자 조합원들이 노동의 가치를 공유한 위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내려는 ‘내재적 동기’로 합심 단결한 결과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_77쪽
원래 공유가치란 핵심가치라고도 하는데, 조직 내에서 그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사고나 행동을 제시하는 기본 규범을 말한다. 우진교통에는 4대 공유가치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소유·결정·이익·문화의 공유가치다. 즉 모든 노동자 구성원들이 경영자치와 노동자치에 참여하며, 1인 1표의 원리로 목소리를 내며, 공동체적이고 자율적인 노동 문화를 창의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소유·결정·이익·문화의 공유가치를 가진 조직은 일반적인 회사와는 전혀 다른 조직 풍토를 갖는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회사 가면 죽는다’고 하지만, 이곳 우진교통에서만큼은 ‘회사 가면 신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_110-111쪽
오늘날 우진교통이 ‘노동자의 희망을 실천한다’는 자주관리기업으로 그 선구자적 면모를 드러내게 된 것은 결코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산 너머 산’처럼 반복적으로 다가온 위기와 도전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고 ‘집단 지혜’를 모아 올바른 방향성을 잡아가며 합심 단결로 모든 도전을 효과적으로 이겨낸 것이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원들의 단결된 마음에 기초해 대내적·대외적 위기 요인들을 정면 돌파하는 가운데 나름의 지혜와 저력을 축적할 수 있었고, 그에 기초해 ‘긍정적 집단기억’을 더욱 많이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저력이 오늘날의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을 더욱 굳건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_129-130쪽
우진교통의 자주관리는 먼저 소유에 있어 이전 경영진으로부터 양도받은 주식 지분에 대해 개별화하지 않고 사회적 소유를 지향한다. 즉 50퍼센트의 주식에 대해서는 공동(집단적) 소유의 의미로 지역의 공익 인사 1인에게 신탁해 사회화 형태를 갖추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역사학자 김정기 교수가 맡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주식 50퍼센트는 점차 전 구성원이 출자전환 등으로 분산 소유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버스 기사 등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1인당 500만 원 내외의 현금 출자를 기본으로 하여 주주가 되었다. 또 2008년 조직적 내분을 겪으면서 구성원들이 받아야 할 체불임금을 출자금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약 40퍼센트의 주식을 유상으로 매입함으로써 전체 구성원이 분산 소유하게 되었다. 나머지 약 10퍼센트는 일부 구성원들이 100주를 기본으로 추가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체 주식의 50퍼센트는 사회적 소유로, 나머지 50퍼센트는 전 구성원과 회사가 분산 소유해 우진교통은 명실상부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 되었다. _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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