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흙의 각질을 뚫고 기지개와 혀가 튀어나오고, 아지랑이와 뱀의 긴 꼬리가 스멀거리고, 까맣게 부릅뜬 개구리 눈동자가 굴러 나와 알을 낳고, 해토의 기운을 받은 제비꽃과 산수유와 매화가 퐁퐁퐁 꽃잎을 터트린다.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앞발로 파헤칠 때 포르릉 튀어나오는 아지랑이. 싹이 비집고 나오느라 흙덩어리는 부푼다. 흙은 간지럽다. 겨우내 홀로 문을 닫았던 흙은 문을 열어 어둠을 토하고, 더 깊은 지하를 깨우고 기지개를 켠다. 흙마다 구멍이 생긴다. 점점 구멍이 많아진다. 푸른색, 노란색, 빨간색이 쑥쑥 자란다.
---「흙은 실컷 부풀어 오르는 감성이다」중에서
나는 소 얼굴을 매일 들여다보며 자랐다. 소의 얼굴을 쓰다듬고, 소와 뽀뽀하고, 소의 콧등과 혀를 만지며 자랐다. 소의 이빨은 화강암처럼 크고 튼튼하며 가지런했다. 소 혀는 수세미처럼 길쭉하고 두터우며 거칠었다. 뱀장어가 제 굴 드나들 듯, 소는 자신의 콧구멍에 수시로 긴 혀를 쑤욱 집어넣는다. 긴 혀로 제 콧등을 핥고, 어깻죽지를 핥는다. 소의 눈망울은 감자알만하다. 소는 목이 마르면 물을 한 드럼은 먹어치운다. 목마른 소가 물을 쑤욱 켤 때 소의 목구멍은 수멍이 되어 콸콸콸 물소리가 들렸다.
---「노을과 소나기가 소 등을 넘는다」중에서
자신의 목숨인 작은 불빛 하나로 너울거리는 반딧불. 풀잎에서 풀잎으로 날아다니던 며칠 밤의 춤이 그 생의 전부였다. 아랫배를 활활 태운 작은 불빛이 반딧불에게는 짧은 청춘이다. 심장에 조각칼을 대어 얇은 부스러기로 핏물을 썰어내 태우는 듯한. 반딧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냥. 그 불빛에 나의 임파선과 솜털과 눈썹과 겨드랑이 털까지 심지가 되어 하롱하롱 하르르 타오를 듯했다. 내 몸도 그렇게 불이 켜지고 반짝였으면 했다.
---「달빛은 곤충들의 몸부림을 좋아한다」중에서
시골은 섹슈얼리티의 진열장이고, 에로티시즘의 엑스포다. 인간의 사상과 관념과 태도와 사회적인 관계망 이전에 대자연의 생존과 번식의 순리가 작용하는 공간이다. 번식의 논리는 순연하고 순수하다. 시골은 성애와 애욕의 공간이다. 풀꽃마다, 곤충의 동작마다, 농작물의 꽃망울마다, 돼지의 울음소리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스며있다. 노을, 달빛, 별빛, 강물의 출렁임, 열매는 관능적이다. 관능이 아닌 것이 없다. 관능은 생존 전략이다. 관능은 종족번식을 위한 사투이며, 몸부림이며, 탱고다. 미꾸라지와 맨드라미와 으름과 민들레와 지렁이와 개미와 돼지와 사마귀와 우렁이가 모두 변강쇠고 옹녀다.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들판은 관능적이다」중에서
밭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그 말이 맞다. 주인이 자주 오지 않는 논밭에는 풀이 많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 무섭게 풀이 먼저 쑤욱 자란다. 잡초란 내가 기르고자 하는 식물이 아니다. 그래서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길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이고, 기력이 닿는 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풀을 뽑다보면 작물이 성큼 자라 풀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풀은 예측 불가능한 난세를 즐긴다」중에서
들판을 쏘다니다 보면 수없이 찍혀있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장화 발자국도 있고, 맨발로 찍힌 발자국도 있었다. 우리 논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은 대부분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벼를 베던 발자국이었고, 피사리를 하던 발자국이었고, 우렁이와 미꾸라지와 참게를 잡던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아버지의 발자국에 얼음이 얼면, 나는 그 얼음 조각을 한 입 가득 베어 물거나 아버지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어 보기도 했다. 봄이 되면 그 발자국 안에서 자운영 꽃과 하늘지기가 피어나고, 물이 고이면 거머리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들판에서 새참 먹는 재미를 아느냐」중에서
이 가을의 압권은 터질 듯 팽창하며 푸르른 배추밭과 무밭이다. 11월 중순 즈음, 산천초목이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오색찬란한 단풍이 들어가는데 무와 배추는 거꾸로 시퍼런 위용을 자랑했다. 십리 밖에서도 배가 불룩한 배추밭과 무밭의 푸르름이 선명하게 눈에 띌 정도였다. 배추와 무의 싱그러움은 관능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속이 차오르는 배추와 무의 몸통은 육덕이 풍만한 관능미를 맘껏 뽐냈고 메뚜기들을 끌어들였다. 우주도 덩달아 팽창하는 듯 관능적으로 보였다. 추수가 끝나 황량한 초겨울 들판은 무와 배추의 푸르른 에로티시즘으로 기운이 넘쳤고, 색계(色界)가 되었다.
---「배추는 들판의 관능이고 색계였다」중에서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못생긴 꽃도 많았다. 못생겼다는 것은 또 다른 표정이었다. 잘생겼든 아니든 꽃에는 화려함과 유혹과 관능과 성적인 본능뿐만 아니라 연약함과 쇠락의 느낌,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이 스며있었다. 꽃은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모순 덩어리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의 화려한 희극은 결국 땅에 떨어져 소멸하는 비극이었다. 꽃은 생명의 희열과 쇠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삶의 덧없음, 인생무상,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인식을 일깨웠다.
---「흙색과 꽃색은 서로를 핥고 스민다」중에서
발은 피로와 탈진을 지나 더 멀리 뛰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발은 근육에 쌓인 젖산과 여러 활력의 징후를 소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발을 가진 동시에 발이 되고 싶었다. 뜀뛰기는 심술을 부리며 영혼의 탈출구 노릇을 하려 했던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발끝에 달렸다. 걷고, 뛰고, 발이 닳아 문드러져야 세상이 보인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지금의 한 발자국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흔적이다.
---「시간과 고독과 인생이 함께 걷는다」중에서
가을 하늘에는 묵은 공기가 거의 없었다. 찬 이슬의 발톱을 지닌 찬바람이 허공을 쏘다녔다. 긁힌 허공에 살짝 탄로난 별의 탄생. 별의 조도(照度)가 낚시 바늘의 미늘처럼 시퍼렇다. 어떤 별의 동공은 제 묵은 발톱을 짓찧어 새로운 발톱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보다 매섭게 느껴졌다.
---「마시자! 어스름 한 잔의 불빛을」중에서
누렁이들이 귀를 쫑긋 기울이다 컹컹 짖는다. 눈발 속에는 수많은 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귀에 담아도 끝을 알 수 없는 적막의 소리. 적막이 만들고 적막에서 내려오는 소리. 한 생애의 여백에 쌓이는 소리. 바람으로부터 탯줄과 영혼을 얻어 태어난 적막에서 광막한 광야로 넘어가는 소리를 축생인 누렁이들이 듣고는 컹컹 짖는다.
---「하늘의 열락이 천하를 품는다」중에서
내 추억에 남은 문풍지 소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듬이질 소리, 홍두깨 굴리는 소리, 두 손을 비벼 새끼를 꼬는 소리, 먼 초원의 야생마 울음소리, 충북선 증평역 건널목 차단기 오르내리는 소리, 소 되새김질하는 소리, 콩나물 물동에 물 흐르는 소리, 조그만 가마솥에 고구마 찌는 소리, 초가 처마에서 고드름이 커가는 소리, 꽹과리 소리 앞세워 굿을 하던 이웃집 무당이 칼춤을 추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가 문풍지 파르르 떠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들렸다.
---「문풍지는 우주의 숨소리로 울었다」중에서
얼마 전 아버지는 엄마에게 노인용 전동차를 한 대 사주었다. 엄마는 이제 전동차를 타고 들판을 쏘다닌다.
“이놈이 참 잘 가. 저승사자도 이런 놈이면 좋겠구먼.”
엄마의 전동차 칭찬이 자자하다. 언젠가는 전동차처럼 착하고 잘 굴러가는 저승사자가 오기를 바란다.
---「인수야, 니 망 좀 잘 봐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