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마우스가 잡스의 발명품인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제록스사가 내부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발명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68년 스탠퍼드 연구센터의 연구원이었던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C. Engelbart)가 발명한 것이다. 제록스는 컴퓨터 화면에 커서를 그래픽으로 작동시켜 화면을 즉시 변화시키는 마우스가 얼마나 큰 활용 가치가 있는지를 잘 몰랐다. 결국 이 특허권을 4만 달러라는 싼 값에 애플에 넘겨주고 말았다.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 제4장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노마드는 원래 『차이와 반복』(1968)에서 들뢰즈가 철학적인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었는데, 자크 아탈리에 의해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마디즘을 철학적으로 다룬 들뢰즈와는 달리 아탈리는 인간학적, 경제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유랑자'라는 사전적인 정의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노마드’는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며 창조적인 삶을 사는 현대의 젊은이들을 지칭하게 되었다. 소위 디지털 노마드이다.
놀이란 궁극적으로 규칙이 있고, 약속을 따르며, 이유가 없는 모든 형식이다. 그런데 놀이는 아름다워지려는 경향도 있다. 미(美)란 질서 잡힌 형식을 창조하고자 하는 충동인데, 놀이야말로 질서 잡힌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놀이의 요소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말들은 거의가 미적 효과를 기술하는데 쓰이는 미학 개념들이다.
개인적(personal)이라는 말은 ‘잡스 현상’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기계란 원래 비개인적(impersonal)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냉정한 사람 앞에서 “그렇게 기계적으로 말하지 마!”라고 말한다. 기계란 비개인적이어서 개개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기능적이기만 하다는 생각이 이 비유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계란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것이었지 애정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이 기기를 사람들이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개인 기술(personal technology)의 시대를 연 것,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이다.
우리 인간은 원시 시대의 미분화(未分化) 상태에서 고대,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치면서 점차 개인이 되어 갔고, 산업화가 절정에 이른 20세기에 다시 익명성의 대중이 되었다가 이제 다시 개인화되어가는 추세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도 이 개인화의 흐름을 탔기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개인화는 어떤 모습일까? 항공사의 마케팅에서 개인화가 눈에 띤다. 예컨대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승객들이 비행기에 타기 전에 올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검색해 깜짝 선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 출장 때문에 중요한 축구 경기를 놓치게 생겼다”라고 쓴 남성에게는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뉴욕의 술집을 형광펜으로 꼼꼼히 표시한 여행 책자를 선물하는 식이다.
도날드 저드의 가구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존 케이지의 음악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은 20세기의 가장 강력한 초 장르적 미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