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에서 스무 살이 되는 시절은 인생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는 이 신비하고 거룩한 시간들을 부디 ‘편리하다고 여기는 기계’와 ‘친구도 적으로 만드는 경쟁’에게 빼앗기지 말고, 자연과 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큰 세상을 바라보는 한가로움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는 진정성 어린 이야기들과 상상력이 숨어있지요. 이야기와 상상력이 사라진 시대라면 미래는 어렵습니다.
나는 이 책에 자연과 놀고, 사람과 놀고, 역사와 놀고, 노래와 놀며 캐낸 이야기들과 상상력을 썼습니다. 거기에서 들려오는 애틋하고 절실한 ‘평화의 미래’를 읽어 주시기를 빌 뿐입니다. ---작가의 말
미장이 유씨 아저씨 비오는 날 하신 말씀, 하나 더 소개하려고…
기어코, 새벽녘에 일하러 오셨지. 아침 7시도 되지 않았을 거야. 그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었거든. 평창동에서 용인이니 얼마나 먼 길이야. 그래도 오셨어. 약속은 무거운 거라는 걸 새삼 배웠지. 그런데 막상 집에 오시더니 일을 하시지 않는 거야. 하늘만 보시고 눈만 붕어처럼 뻐금뻐금 거리셨어. 두어 시간 흘렀을까? 그래서 또 여쭤봤지.
“아저씨, 이렇게 어렵게 오셨는데 일은 안하세요?”
“……허허허, 하나님도 말리시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유∼?”
태연하셨어. 40년 노동의 세월이 쌓여 자연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얻으신 거야. 부럽고 존경스러웠어. 하나님 말리시는 일을 끝끝내 해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고개가 숙여지는 가르침이셨지.
아저씨 얼굴은 그야말로 평화였어. 약속을 지키셨으니 평화로웠고, 비가 와서 쉴 수 있으니 평화였고. 훗∼!---「유씨 아저씨의 명언 2」 중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도와준 건 첨이야.” 젖은 손수건을 두 손에 쥐고 한 말씀을 더 하셨지.
“왜 우릴 도와주지 않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배웠다는 젊은이들이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김학순 할머니였어. 할머니는 ‘정신대’를 직접 겪은 분으로 언론에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고 끔직한 역사를 폭로한 ‘최초의 증언자’였지. 1991년 8월 14일의 일이었어.
이 일에 ‘최초’라는 말은 45년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지. 일본은 전쟁이 끝나고 강제로 끌고 갔던 조선처녀들을 죽였어. 증언의 가능성을 없앤 거지. 그러나 무슨 일이든 살아남은 자들이 있기 마련. 맨손 맨발로 그녀들은 조국을 향해 목숨을 걸고 탈출했지. ---「대지의 눈물」 중에서
자, 손을 펴봐. 얼굴도 활짝. 바람이 지나가지. 바람은 아무리 가지려고 해도 가지지 못해. 그러니 그냥 놔줘. 그러면 모든 바람이 다 내 것이 되지. 온몸으로 바람이 지나가니까. 지나갔지만 다시 오고, 왔나 보면 지나가지. 그렇게 영원히 머무는 것이 바람이야. 그러니까 자유지. 그래서 평화야.
자유와 평화는 어느 누구도 소유할 수 없어. 모두 '저마다' 누려야 하는 거야. 자유와 평화를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지.---「바람 구경」 중에서
밝은 곳만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지. 센 친구한테만 붙는 아이들도 있어. 유리한 곳에만 유난히 신경 쓰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나 때로는 어둡고 그늘진 곳에 몸과 마음이 닿았으면 해. 낯을 가리는 친구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 약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큰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것은 시인 윤동주처럼 시대의 그늘을 품고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외로운 친구에게 마음을 주며 말을 건네고 다가갔다면 이미 위대한 시인처럼 세상의 그늘을 품은 사람인 거지. ---「그늘이 평화야」 중에서
아, 생각나는 '숨쉬기'가 있어. 티베트의 숨쉬기야. 그들은 세상의 나쁜 것을 다 들이마시고 맑고 착한 것으로 바꾸어 내뱉는 숨쉬기를 하면서 산다고 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숨쉬기야? 그런 까닭에 아직은 세상에 별이 총총하고 냇물이 흐르는 것이리라 나는 믿어.---「숨」 중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인간과 신 사이! 이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깨진다면 '그다음' 세상(미래)은 이 세상과 벌써 금이 가 있을 거야. 이 모든 '사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람'이야. 사람이 핵심이지. 민족도 국가도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죽게 될 때, 분명히 우리 손에는 책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쥐어져 있을 거야. ---「책과 사람」 중에서
‘평화박물관 건립 모금공연'은 더 어려워. 그 '평화'가 '우리가 말하는''평화'냐며, 진보건 보수건 똑같이 물어오는 거야. 정치도 묻고, 심지어 종교도 물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 평화를 보는 각도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거야. 평화가 쪼개어져 또 싸움을 벌이지. 태양은 지구 전체를 ?추는데, 어느 한곳에서 다른 곳을 보며 묻는 거야. '저 태양이 우리를 비추는 그 태양 맞아'? 하고.---「 춤추는 평화」 중에서
상상력을 키우려면 먼저 '이야기'를 듣는 훈련이 필요해. 사람의 말도 좋고,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겠지. 태양과 별과 바다가 들려주는 은유를 듣게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것은 뉴스에서 떠드는 진부한 소식이 아니라, 아무도 들려주지 않던 지구촌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 광활한 우주에서 떠도는 이야기일 거야.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는 마른 강바닥 같을 거야.---「상상력」 중에서
평화는 밥이 입에 고르게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정희성(시인)
평화는 흔쾌하게 손 내밀고 기분 좋게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가슴 여는 일이다. 도법(스님)
평화는 공존이며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인(수녀)
누구나 제 빚깔 잃지 않고 조화롭게 하나 되는 조각보 같은 것. 이철수(판화가)
평화는 나와 사회와 우주 만물이 본디 조화를 되찾는 것입니다 김규형(칼럼니스트)
평화는 바로 너와 나의 끊임없는 배려다, 윤도현(가수)
병영 같은 학교에서 입시전쟁을 치르는 친구들에게 고상한 평화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잠 잘 자고 시험 걱정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보는 거, 그게 평화겠지요. 한홍구(교수)
평화는 비싸다. 최동훈(영화감독)
---「평화가 뭐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