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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비밀 편지

마틸다의 비밀 편지

리뷰 총점8.8 리뷰 2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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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458g | 140*210*30mm
ISBN13 9791162338865
ISBN10 116233886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노인은 자기 방으로 보이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도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대부분 젊은 시절의 노인과 밝게 웃고 있는 여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비더마이어 스타일의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에는 나무 덮개가 달려 있어서 작업하는 내용이 보이지 않게 덮어둘 수 있었다. 그가 책상 뒤쪽 벽에 붙은 단추 두 개를 누르자 벽 뒤에 숨어 있던 비밀 공간이 열렸다. 그의 손은 반짝이는 작은 위스키 병을 지나쳐 아래쪽 커다란 파일을 잡았다. 파일에는 여러 장의 편지 묶음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 존에게”로 시작하는 첫 장을 읽었다. 그리고 잉크병을 열어 깃털을 병 속에 담갔다. 그렇다. 그는 백 년 전 초등학교 때 배웠던 대로 깃털에 잉크를 묻혀 편지를 썼다. 먼저 수신인에 줄을 긋고 그 위에 다른 이름을 겹쳐 썼다. “사랑하는 손녀, 마틸다에게.” 깃털은 빠르게 움직였다.
---「레일란더가 동봉한 편지」중에서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에는 팩스가 아예 없어졌을지 모르겠구나. 스마트폰마저 사라졌을지 모르지. 머릿속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쩐지 거북한 기분이 들곤 한다. 예를 들어 상상 속 미래의 사람들은 머리에 만능칩을 심어서 훨씬 비상하고 발달된 기능의 뇌를 가졌을지도 몰라. 뉴욕에 사는 친구와 통화하고 싶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되겠지. 귀에 뭔가를 갖다댈 필요 없이 손목시계의 단추 하나를 누르고 말하면 되는 거야. 그쯤 되면 마법과 기술의 차이는 단추를 누르느냐 마느냐 하는 정도이겠지. 오래전 슐로스제크 선생님은 기술이 마법을 대체하고자 노력할 거라고 예상했어. 하지만 선생님은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장담했지. 사실 선생님은 거의 모든 기술을 흉물스럽게 생각했는데 그중 자동차를 유독 싫어했어. 나는 그렇지는 않았지.
---「두 번째 편지 : 아름답게 그리고 다르게 보이기」중에서

나는 아버지가 수영을 가르쳐주었던 일을 아직까지 기억한단다. 잠시 물 위로 나를 들고 있다가 그냥 놓고 가셨어. 내가 비명을 지르고 허우적대자 다시 돌아와서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지. 나는 가라앉지 않았어. 코르크로 만든 구명용 벨트를 가슴에 차고 있었거든. 아버지는 곁에 그냥 머물러 계셨지. 내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눈빛으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 “가끔은 아무도 없이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기분을 느낄 때야. 살아남는 법을 배워라. 헤엄치는 법을 배워!”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었어. 아버지는 그냥 다정하고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지. 그리고 나는 수영을 잘하게 되었단다. 단 한 번도 투명 마법으로 튜브를 만들어 찰 필요가 없었어. 수영에 관해서는 슐로스제크 선생님께 배울 것이 없었지. 그분은 고양이처럼 물을 싫어했으니까. 악어로 변신해도 늪에 들어가지 않는 분이었어.
---「세 번째 편지 : 공중에 뜨기와 날기」중에서

투명인간 되기 마법의 사용법과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중요한 것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지금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마법의 힘으로 인간의 생을 끝낼 수 없단다. 죽음의 마법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어. 능숙하게 쓸 수 있는 마법도 어떤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의도로 사용하면 능력이 사라진단다. 예를 들어 어디론가 올라가서 누군가를 죽일 생각을 하는 순간 바닥에서 단 1센티미터도 날아오를 수 없지.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작은 아기 앞에서 아직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구나. 먼 훗날이라도 네가 다른 사람이 죽기를 바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도 기본 원칙은 얘기해야겠지. 그러니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너는 마법으로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다. 응급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야. 나는 마법이 어떤 특정 의도를 차단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풀 수 없는 퍼즐이란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세계의 핵심은 지성과 의지를 넘어서는 영역인 것 같아.
---「다섯 번째 편지 : 투명인간 되기」중에서

화자의 생각, 특히 문학이나 철학 속 화자의 생각은 비교적 쉽게 읽힌단다. 말하는 사람이 적절한 단어를 정확하게 선택해서 사용하기 때문이지(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확실하지). 그보다 더 쉬운 것은 단순한 희망 사항이야. 이를테면 ‘맥주’, ‘소시지’, ‘담배’ 등 단어가 당장 그림으로 표시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 문장이 중첩 복문일 때, 거기에 가정법이 더해지면 읽기가 힘들단다. 그림으로 표현되는 생각의 알맹이 없이 모든 것이 개념과 문법에 머물러 있거든. 뭐니 뭐니 해도 생각 읽기 마법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지적 영역이야. 끝없는 단어의 연속을 따라가다 보면 어떨 때는 마침표 없이 끝나 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종속문이 앞서 나온 주문을 역행할 때도 있단다. 머릿속이 이미지로 가득한 사람, 예컨대 화가들의 생각 속에는 대부분 키워드가 없게 마련이야.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화면에는 단어 대신 선명한 윤곽이나 색깔이 나타나지. 소시지나 맥주가 그대로 그려지는 거야. 하지만 내면의 그림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드러나는 것은 아니란다. 정신은 밖으로 드러나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마음속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쫓아다니다 보니 마음속 그림들은 번갯불이 번쩍이듯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지지. 그 생각을 읽는 것은 마치 정신없이 내달리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야.
---「여덟 번째 편지 : 생각읽기」중에서

우리가 마법의 힘으로 단번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면 얼마나 좋을까! 진실하고 믿음직한 사람, 다른 사람을 도울 일만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기적인 일은 도모하지 않을 사람 말이야. 선한 마음을 마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럼 우리는 천사가 될 거야. 그런데 천사로 살면 행복할까? 그건 회의적이구나. 아마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마법사의 삶이 소름끼치게 지루할 것 같다. 우리 모두 자동으로 착해진다면, 크든 작든 그 어떤 노력도 필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노력은 우리 인생의 맛을 돋우는 양념과 같단다. 노력을 해서 만족을 얻고, 그 만족감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서 흠잡을 데 없는 완벽에 이르게 되지. 그러니 자기 개량의 마법 따위는 없어도 된단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인생은 이미 무덤에 들어간 것이나 진배없어. 지혜도 비슷하지. 지혜에 이르는 마법은 없어. 하지만 그게 아쉽지도 않단다. 비록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그런 지혜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보수적인 일에만 먹힐 테니까. 그리고 지혜로워지지는 못했지만 통찰은 몇 가지 얻었으니, 110여 년의 인생 여정이 헛된 것만은 아니지. 그런 통찰은 대부분 성공보다 좌절과 함께 온단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어. 그러니 착륙이 순조롭지 못해도 두려워하지 말거라. 불시착 없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법이지. 어떤 통찰에 이르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게 마련이야. 고통 없이는 무분별함이 선물한 안락함에서 헤어날 수 없단다.
---「열한 번째 편지 : 지혜에 도달하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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