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 돌아가고, 틈을 비집어 들어가는 삶의 태도는 비효율적이다. 시간이 돈으로 환원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시간을 돈으로만 돌려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시간은 웃음과 이야기가 되어 소리로도 변할 수 있고, 눈물과 위로가 되어 온도로 바뀌기도 한다. 재밌게 살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편하게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에도 하기 싫은 노동이, 애씀이, 고통이, 갈등이, 낙담이 따라온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 p.40
창원에서 보낸 시간은 반나절 정도였지만 어느새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자본주의의 교환경제’ 따위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사실 나의 노래여행기는 그런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건 볼 수도 만질 수도 설명될 수도 없는 것 같다.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선물을 주는 마음’을 계속해서 생각하다가 우리 동네에 도착해서는 언젠가 그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어야지, 하면서 길에 웃음을 뚝뚝 떨어뜨리며 걸었다. 이것은 절대 은유가 아니다. --- p.49
책임을 묻고 물으며 사건에 대한 ‘대안’과 ‘결과’에 집중하게 되면 약한 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온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강해지고 싶긴 하지만 한 번도 강했던 적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결국 내 자리에서 내가 취할 태도를 돌아보라는, 그러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토닥임 같았다. 내 자리에서,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만큼, 기억하기 위해, 즐겁게, 아프게, 아름답게, 가끔이라도, 혹은 자주, 강렬하게, 조용하게, 잔잔하게, 꾸준하게, 함께.... --- p.55
피곤한 중에도 흔쾌히 달려와 박자를 더해준 간장, 주말에 출국을 앞두고도 달려와 함께 연주해준 혜정 언니, 무심한 척하며 응원하러 와서 끝까지 함께해준 방주 님(다음 녹음 장소인 소소책방의 주인장), 불편했을 텐데도 함께 숨죽여 긴장하며 들어준 다원의 손님들.... 행복했다. 즐거웠다. 편안했다. 그랬으니 나는 충분하다. 그 공기, 우리의 공동 긴장감, 우리의 공동 부족함, 함께한 사람들의 숨소리, 그 마음이 모두 담겼을 테니 정말 충분하지 않은가! 새벽 네 시, 또렷하게 떠 있는 별을 잠깐 바라보았다. --- p.83
부족함은 상상력이 될 수도 있고, 불편함은 재미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 선택할 때만 가능해지는 현실이기에, 타인에게는 제안조차 하기 어렵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틈새를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다. --- p.114
나는 언니에게 ‘나를 키운 건 8할이 언니’라고 자주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언니는 도대체 자신의 어떤 점에 영향을 받았냐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햇살이 좋으니 산책을 하자고 했고, 잔디밭이 좋으니 양말을 벗자고 했고, 이 노래가 좋으니 함께 부르자고 했고, 이 책이 좋으니 읽어보라고 했고.” “그렇게 작은 것들이었어?” 그렇게 작은 것들이었다. 새삼 돌이켜보니 언니가 내 인생의 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사소한 것들이다. --- p.125
유명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거나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싶다거나 하는 어린 시절의 꿈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렇게 곁을 지키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해서 동네 가수로 남는 것, 그것이 내가 꾸고 있는 꿈길이다. --- p.139
아무리 가까이 가려 해도 완월동에서 나는 관찰자, 구경꾼밖에 되지 못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 그리고 ‘남성’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나의 편견까지... 하지만 매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여분의 시간은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조금은 옅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불편함’을 안고도 계속해서 걷고 이야기하고 있다. --- p.173
완벽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나는 천천히 단단해진다. 그것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 p.178
언젠가 폐를 끼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폐를 끼친다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은 그 용기로 나는 노래여행을 시작했고 수많은 폐를 끼치면서 조금씩 자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괜찮아지자 이를 핑계로 나는 다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최근 겪은 불안한 마음에 완벽한 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폐를 끼칠 용기를 내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려는 마음이 효율과 시스템 사이사이에 스며들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83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으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져 있다. 자본 밖에서 자립을 실험하고, 약자들이 힘을 모아야 하는 자리에 마음과 손을 보태고, 갈등과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고, 할 수 있는 만큼의 행동을 계속하는 것. 나와 내 노래가 그런 길 위를 뚜벅뚜벅 걸었으면 좋겠다.
---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