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나,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이 있다면 권할 만한 작품이 있다. 바로 197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이다. 동화라 불러도 좋고 동화가 아니라 해도 상관없는 이 이야기는 어른이든 아이든 누가 읽어도 좋게 무리 없이 쓰여져 있다. 어른을 위한 이야기와 아이를 위한 이야기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믿는 작가가 풀어내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순수함'이 있다.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은 켈름, 바르샤바, 루블린, 피아스크 등 한정된 무대를 배경으로 소수 민족의 일상을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전체 스물 두 개의 이야기가 4장에 나뉘어 담겨 있다. 켈름 마을의 일곱 현자와 주민들의 너무나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 바르샤바에 사는 성장기 소년과 소녀의 단상, 하누카(B.C 165년, 마카베 유다가 시리아와 치른 전쟁에서 이기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한 기념일)의 악마 이야기, 꼬마 정령과 꼬마 도깨비, 마녀 이야기가 있고, 개와 고양이, 게으름뱅이 이야기꾼 등의 일화가 여러 단편에 차곡차곡 들어 있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종류의 바보가 등장한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기발한 발상과 행동을 하는 이 바보들은 `모자라' 보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깨우침을 준다. 이 이야기에서 세계는 각종 도깨비와 악마의 지배를 받는 듯하다. 그러나 악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셰비스 싱어가 드러내고 싶은 것은 신의 존재이다. 저자는 악마를 벌하는 법이 없다. 그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그들을 혼내지 않는다. 마치 악마들을 통해서 삶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어지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쳇바퀴 삶, 그 일상을 재미나거나 흥미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을 보고 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을 보게 될 것이다. 바보처럼 보이는 그들, 그 행복을 바라보노라면, 그 행복의 원인이 아주 합리적인 사고나 높은 학벌, 누구를 제치고 나서 얻는 승리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마을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자격도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도 따 떼어낸 바보 같은 순수함만 지니면 충분한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보면, 우리가 아등바등하며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바보들의 자유를 나누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하고 거침없이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돋보이는 기교나 꾸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맺힌 곳이 없이 유유히 흐르는 그 흐름은 그가 천부적인 이야기꾼임을 의심치 않게 한다.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들만이 쓰는 언어라는 이디시어. 그는 많은 작품을 유태인 사이에서도 천대 받는, 오늘날에는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이디시어로 썼다. 그러나 고집스레 자신의 언어를 지키고 있는 작가처럼 우리 마음속의 켈름 마을도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 갈 수 있을 것임을 작품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어른답지 않아도, 아이답지 않아도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그 곳, 켈름 마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 추구하는 우리 지친 일상의 짐을 내려 놓고 쉬어 갈 수 있는 쉼터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