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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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4쪽 | 562g | 148*210*30mm |
ISBN13 | 9788932022826 |
ISBN10 | 8932022828 |
발행일 | 2012년 0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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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4쪽 | 562g | 148*210*30mm |
ISBN13 | 9788932022826 |
ISBN10 | 8932022828 |
제1장 / 시, 첫 소설 작품, 졸업논문 작가 생활 50년을 앞두고 -어린 시절에 발견한 언어의 세계 -이타미 주조와의 만남 -소설가를 지망하다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과의 교분 제2장 / [기묘한 작업]초기단편[절규][히로시마 노트][개인적 체험] -아쿠타가와상 수상 무렵 -소설은 이렇게 씌어진다 -‘전후파’에 대한 경외와 위화감 -‘안보비판을 위한 모임’과 ‘젊은 일본의 모임’ -[세븐틴]을 읽은 미시마 유키오로부터의 편지 -1963년 장남 히카리탄생 -[개인적 체험]간행 당시의 평가 제3장 /[만엔 원년의 풋볼][손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던 날][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동시대 게임][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 -고향의 중학교에서 -1960년 안보투쟁 -[동시대 게임]을 지금 다시 읽다 -멕시코 체류기간의 자극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를 문단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의 리얼리티 제4장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인생의 친척][조용한 생활][치료탑][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여성이 주역이 된 1980년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와 윌리엄 블레이크 -[조용한 생활]의 가정상 -아버지라는 존재 제5장 /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타오르는 푸른 나무][공중제비돌기] -1987년, 분수령이 된 해 -시의 인용과 번역을 둘러싼 고찰 -기원과 문학 -주제가 사건을 예지하다 제6장 / ‘수상한 2인조’ 3부작 [2백 년의 아이들] -노벨문학상 수상의 밤 -조코 고기토라는 화자 -[2백 년의 아이들]의 판타지 -어디부터가 픽션인가 -성성(聖性)과 고요함 -자폭테러에 대해서 -젊은 소설가들에게 오에 겐자부로, 106개의 질문 앞에 서다 인터뷰 후기 옮긴이의 말 | 노작가의 육성으로 쓰는 자서전 오에 겐자부로 연보 |
나의 일기가 색색의 꿈을 꾸는 공간,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의 단순성을 담고 삶처럼 포효하는 공간, 그 곳에 나의 니가 존재했다. 도플갱어인 너를 도리언이라 부르고 끈질긴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보호받기 위해 기도처럼 써내려간 혈서처럼 너는 내 음성이자 詩였다. 너는 어느 때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오직 너만이 가진 눈빛으로 내 삶을 비추고는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곤 했다. 니 영혼이 속삭이는 순간을 가슴에 묻는 것만큼 쓸쓸하니 행복한 일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고독이 짙게 배인 사랑을 쓴다. 둘이면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詩를 부른다. 더는 이유를 묻지 말라. 아무것도 묻지 말라. 살벌한 통증만큼 아름다운 진실도 없나니...
“상상력이란, 자신이 인식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바꾸어가고 변형해가는 힘이 바로 상상력으로, 문학과 현실의 모든 활동도 거기에서 시작된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기본 구도, 89쪽)
밋밋한 삶이란 없다. 모든 경험을 생생한 날것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에게 현실이란 그 자체로 원고지다. 한 장 한 장 성심성의껏 채워가는 고군분투 속 자유이자 혁명이요, 염원이자 자기 자신이다. 우.에. 겐.자.부.로. 한 개인이 인간적 사명을 글로써 지켜낸 50년. 그 속엔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반대하는 ‘안보비판을 위한 모임’ 참여, ‘젊은 일본의 모임’ 결성, 두개골 이상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히카리, 원폭피해자들의 고통과 그들을 보살피는 자들에 관한 르포르타주 발표, 48시간 단식 투쟁 결행으로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 민주주의 권력의 상징인 천황의 문화공로상 거부, 핵전쟁의 위기 호소 -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이쯤 되면 노벨문학상의 이상과 목표에도 부합하는 듯한 작가의 마음 따듯한 인류애를 캐치할 수 있는 이력이 아닐 수 없겠다. 거기에 애틋한 부정父情의 축성으로 장애아인 아들의 재능을 발견해 작곡가로 만들기까지 부모로서의 의무감과 하루 여덟 시간의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들어버린 휴머니즘의 대명사, 오에 겐자부로. 그가 지난 삶을 회고하면서 재독한 자신의 전작들을 통해 역사 속 산증인으로서 압축한 일련의 현장 보도, 여생에 대한 담대한 준비와 태도, 건강한 후진 양성에 대한 협응과 기대, 자국을 비롯한 세계평화에 대한 소망 등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은 대담집이 출간됐다.
# 일상에서 찾은 또 다른 세계의 언어의 울림과 사고의 확장 #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방울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23쪽)
와타나베 선생님이 “오에 군은 숲 속에서 태어난 것 같아.
숲의 샘물이 솟아나듯 소설을 쓰는 것이, 이제 아무것도 없으려니 하면
다시 새로운 물을 긷듯이 하던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쪽)
지배적인 언어와 피지배적인 언어가 있음을 진작부터 알게 된 어린 소년의 눈에 어느 날 풍경이 들어온다. 풍경은 촉촉한 도트옷을 입고서 그에게 윙크한다. 한때 어느 소녀에게도 헤픈 수작을 걸었던 풍경은 이 소년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 ‘사고한다는 것은 무어니?’ 작은 산골마을을 이루는 제법 많은 것들을 이유 없이 사랑하게 된 소년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에하고 같이 길을 가다 보면 자꾸 멈춰 서서 물끄러미 무엇인가를 쳐다보거나 어떤 소리에 신경을 쓰거나 해. 별난 녀석이야.”(25쪽) 사고의 발흥을 맞이한 소년의 가슴에 詩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별난 것일까.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마음을 주고 대화나누길 즐기는 사람들은 흔치 않기에 오히려 소년은 희귀하고 특별하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1935년생이던 소년의 조모와 아버지는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운명한다. 부친의 죽음으로 임시의 특별 신분이 주어진 소년은 당시 유행이던 죽마竹馬를 탄 채 내려다본 마을전체의 색다른 모습에 감격 비슷한 신선함과 야릇함을 느낀다. 패전과 전쟁 전후의 격동기를 거치며 사회(현실)란 그로 하여금 매사가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상상력을 키워가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독일학제를 따르던 초등학교를 거쳐 패전 이후, 1946년 교육기본법의 개정으로 설립된 마을 최초의 구제 중학교를 다니다 1951년 마을 현립 우치코 고등학교에서 마쓰야마히가시 고등학교로 전학 간 그는 거기서 아내, 유카리의 오빠인 이타미 주조를 만난다. 이어 막 스물한 살이 되던 해,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란 책과의 인연은 그를 도쿄대학으로 이끈 ‘평생의 은사’ 와타나베 가즈오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그를 문인으로서의 삶으로 안내하기에 이른다.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장남 히카리와 함께한 시간을 쓰다 #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서 많은 시간을 아들 히카리와 함께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학은 계속한다. 문학을 하는 이상, 내 문학은 아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구도를 짜보자. 문학을 하는 것과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일을 교차시켜서 양쪽을 잘 조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 상상력의 형태가 될 거라고 생각을 다잡은 겁니다.(111쪽)
“그의 시련은 인간의 문제다.
살아 있는 이상 어떻게든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에 틀림없다.”(116쪽)
‘사르트르의 상상력에 관해서’라는 졸업논문을 쓰던 대학시절,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를 비롯해 겐자부로의 주변은 월등한 학식으로 빛이 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내 학자의 길보다는 소설가로 말뚝 박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순응한 그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는 때 이른 명예를 거머쥔다. 그리고 영화감독 이타미 만사쿠의 딸이자 이타미 주조의 여동생 유카리와 결혼, 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 출생을 기점으로 한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신초샤 문학상 수상, <만년 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최연소 수상, 장편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로 노마문예상 수상 등 작가 인생 채 20년도 되기 전에 그는 국보급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겸손을 잃지 않았다. 의연하니 중심을 지키며 히카리 아버지로서의 의무도 다했음은 물론이다. 매일매일 40년 이상을 화장실에서 나온 아들을 침대까지 데려다주고 담요를 덮어주는 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며 살아온 아버지. 그렇게 아비의 모든 글의 기저엔 늘 아들 히카리가 있었다. 이는 아들의 세대, 그 이후의 세대가 물려받아야 할 올바른 가치관이란 무엇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 사이에서 고뇌하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겐자부로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응축된 소통의 세월은 모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라는 궁극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시간을 사는 영혼 속으로의 회귀 #
늘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시간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흐르는 강물은 같은 물이 아니다. 이 물은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서
좀 전에 보고 있던 물이 아니지만 흐름은 똑같아 보인다.(133쪽)
무엇인가를 언어로 표현해버리면 아무래도 현실에 있는 ‘진실’과는 어긋나버리지요.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어떻게든 ‘진실’을 향해 돌진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젊었을 때부터의 딜레마였어요.(151쪽) - 일흔 하나가 된 지금, 내가 ‘진실은 있다’고 새삼 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일생을 소비하면서 정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진실은 있답니다.(155쪽)
‘착시’다. 시간과 물의 착시. 의식적으로 그를 알아채기 위해서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한 겐자부로는 이미 앞에서 산골마을에서 살던 어릴 적 추억을 많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옛이야기나 숲에 관한 기억들은 집필하는 내내 그를 따라다니곤 했다. 이처럼 추억과 기억을 다스리는 '시간'이란 그에겐 특별한 '무엇'이었다. 이제, 위의 발췌문에서 물 대신 ‘시간’을 대입해보자. 흐르는 시간은 같은 시간이 아니다. 이 시간은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서 좀 전에 보고 있던 시간이 아니지만 흐름은 똑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시간과 물이 동격인 지점에서 과연 그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도쿄에서 소설가로서의 생활 자체에 위기감을 느끼던 시기에 그는 소년 시절을 떠올린다. 그 때 가시화되었던 비극적인 측면에 집중한 그에게 마침 암흑의 사회현실이 클로즈업된다. 즉각적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행동파와 현실에서 좀 떨어져 지켜보기만 하는 아웃사이더. 그러나 아웃사이더 나름대로의 수단, 펜이라는 도구로 행동 못지않은 숨은 파워를 보여주기로 했던, 작게 웅크린 약자의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강력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겐자부로는 갖고 있었다. 내가 주목한 사실은 그 자신은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감지하기보다는 그저 ‘현실을 폭로하고 담아내는데 순수한 목적을 두었다’라는 점이다. 설령 행동파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차선의 선택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독자로서 본, 세계에서 인정한 소설가의 참다운 모습과도 일치했다. 그렇게 만년의 작업을 짧은 장편으로 묶은 작품의 제목으로 그는 <진실은 말할 수 없다>를 생각했었지만, 일흔 하나가 된 지금, 그는 이제 ‘진실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여생동안의 글쓰기 목표는 바로 그 ‘진실’을 전면적으로 표현해내자는 데에 두기로 작심한다.
영혼은 시간(=물) 위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태어난 것과도 같다. 해서 영혼은 산 동안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며 진실을 좇는다. 파괴자가 실은 최초에 그것을 만든 사람과 같은 존재(165쪽)라는 겐자부로의 말은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시간(=물)의 덧없음이란 착시도 결국엔 창조와 파괴의 반복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영혼 역시 그 가운데서, 어느 정도 진실에 근접하게 된 어느 한 순간에, 문득 평온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진실’이 그런 맥락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라는 나의 짐작은 과연 맞는 것일까. 오답이라도 상관은 없겠다. 세상엔 정답 없는 것들로 가득하니까. 그리하여 삶은 어차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들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 그의 말, 말들에서 추려보는 모든 것. 그리고 그를 통해본 나 #
문학에서 가장 날카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 독기에 가득 찬 인간관, 정치론을 내세우고 있는 작가, 역시 조르주 바타유나 모리스 블랑쇼 같은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이 해방시킨 지적인 완전 부정, 전면 파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369쪽)
소설을 쓰면서 내 자신에게 일어난 효과는 확실하게 사생관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 생과 사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지금은 희박해졌어요. 죽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전에 없이 사그라졌지요 - 지금은 어쩐지 파악하기 쉬운 대상으로서 죽음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었어요. 아울러 죽음이 가벼운 것처럼, 생도 가벼운 느낌이 듭니다.(357쪽)
매일 써나가기는 해도 일단 완성된 것을 가능한 한 단기간 안에 정리해서 고쳐 쓰자.
고쳐 쓰며 세세하게 다시 검토하자 - 그것이 고쳐 쓰기이지요.(324쪽)
만약 작가에게 다른 인간과는 다른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찮은 우발적인 사건으로부터 내가 당시 쓰고자 하던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창출하는 거지요 -
그 계기의 유효성을 믿고서 불안감이 들더라도 그것을 향해 점점 파고들어가지요.(332쪽)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고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지요.(310쪽)
나는 다시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311쪽)
겐자부로가 일본 고전문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칠 사람으로 아베고보를 꼽고, 귄터 그라스,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문학거장들과 교류하고,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T.S. 엘리엇, 예이츠, 블레이크를 말한 대목에서 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흠...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다운 지적배경이군. 그러곤 위에서 지목된 인물들의 저작들이 궁금해질 것이고,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들의 작품 한 권쯤은 구매해 읽으리라는 다짐도 설 것이다. 한편으로 어떤 이는 단지 그가 유명작가들과 교류했었다는 그 사실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말아버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소설 작법에 대한 정보를 차치하고라도 이 책을 접하는 사람은 우선 겐자부로라는 인간으로서나 작가로서의 태도나 가치관, 나아가 그의 거시적인 세계애에 존경심이 마구 일렁일 테다. 개인적으로 대담집만큼 한 인간의 솔직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책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적힌 말들은 믿어야한다든가 믿고 싶다든가 하는 갈등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어떤 솔직함이 있다. 나는 그랬다. 숲+히카리+음악+세계+겐자부로=문학. 이런 어쭙잖은 공식으로 요약하는 것마저 굉장한 무례인 것 같지만, 여하튼 대담집에 담긴 50년이란 그의 문학인생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처럼 생생한 것이었다. 거기엔 나와 비슷한 정서와 경험을 만난 반가움도 일조했을 것이고, 자주 그렇듯 시기적으로 공감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내 식으로 이해해서였을 수도 있다. 더불어 그와 나, 둘만이 공유하고픈 어떤 비밀일기처럼 나는 그를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그러면서도 어딘가 부정하고픈 비범한 구석을 숨긴 채 순진무구한 바보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사람, 때때로 어긋남과 분단에서 조화를 찾고야말겠다는 오기를 가진 사람, 뭐라도 끼적이지 않으면 괜히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가진 동질감. 물론 글량으로나 인간미, 뭘로 따지든 나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그를 존경하는 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역시 흡족할 만한 감상을 써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잠 꽤나 설치게 생겼다. 아니, 여러 날 잠이고 뭐고 다 설치다 미흡한 글을 지금 이렇게 올리고 있다. 쓰다 보니 읽으면서 떠올랐던 영감들은 사라지고, 삼천포로 빠진 점도 없지 않아 모두 갈아엎고 다시 써보려고도 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니, 다음 기회에 더 멋진 리뷰를 쓰겠다고.^^
앞으로 접하게 될 모든 인연과 순간순간의 소중함에 더욱 의미를 두고 감사하게 될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영향이다. 하여 이 책을 접하게 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런 인터뷰집은 감동적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인터뷰를 위해 그가 냈던 소설들을 다시 읽었고(거의 50여 권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한 오자키 마리코는 질문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은 지 십 수년이 지난 나에게도 이 책은 <<개인적 체험>>, <<동시대 게임>>, <<조용한 생활>>을 읽던 그 때 그 기분에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리어 최근 들어 오에 겐자부로를 읽지 않았구나 하는 후회까지 들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가의 일반적인 인터뷰집이라고 하기엔 문학(이론)적이고 다양한 작가들-일본 작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작가들-이 등장하고 오에 겐자부로 소설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의견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때 부정적이었음을 인정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노벨문학상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나는 <<해변의 카프카>> 이후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
외국어에서 받아들인 것을 일단 메이지 이후의 일본 문장체로 전환하고 그런 후 나의 소설 문장으로 만들어 가지요.
그런데 바나나 씨나 무라카미 씨는 외국 문학을 자신의 육체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육체로부터 문어체가 아니라 오히려 구어체, 일상 회화와 같은 문체로 자연스럽게 방출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내 소설의 문어체, 즉 쓰기 언어적인 특질이 과거의 것이 되고 그 다음 단계로 살아있는 구어체 문장을 두 작가가 만들기 시작했지요. 더구나 무라카미 씨는 요즘 들어 자신의 구어체를 새로운 문체로 향상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확고히 굳히고 있어서 세계 곳곳에서 작품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신선한 눈부심은 나로서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지요.
- 264쪽
문체에 대한 이야기다. 외국문학에서 영향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외국문학에서 유래한 문장을 일본어 문장으로, 그리고 그만의 독자적인 문체로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한국어 문장이라는 건 뭘까?
역자가, 예를 들어 엘리엇의 시상 속으로 깊이 집중해 들어가서 엘리엇을 일본어로 자기 안에서 공명시키기 위해서는 이 단어 밖에 없었구나 ... ... 그런 사정을 내가 알 수 있을 정도의 번역을 보면, 그것을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나의 언어가 조금씩 솟아나옵니다.
- 274쪽
한국에서는 이제 번역 시집은 팔리지 않고 아예 새로운 시집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 종사자들의 문제가 아닐까. 동시에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로부터 영향받아 우아하게 변할 수 있었던 한국어 문장은, 번역 문학의 영향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한 채로, 정체 불명의 시장(market) 언어로부터 몰락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들은 번역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번역 문학에 대해, 번역된 문학의 문장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도리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두고 번역투의 문장이라며 비난했던. 그러니 좋은 번역문학가가 드물고 좋은 번역에 대한 관심도 없다. 아예 언어에 대한 사랑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와 문체가 된다.
소설가로서 살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신의 문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
- 52쪽
오에 겐자부로는 그가 영향을 받았던 많은 작가들을 언급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맬컴 라우리, 토마스 엘리엇, 오든 등 그는 많은 외국 문학 작품들과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도 일본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동시에 묻어난다. 실은 프랑스어와 영어가 자유로운 것이 그가 세계 문학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 가장 주의하고 계시는 것은?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스스로의 믿음에 빠진 기계가 되는' 것. 노년이란 정말로 그런 방향으로 하락해가는 듯해서요."
- 416쪽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일본 천황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지금도 그는 문학가로서 할 수 있는 바 현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가 한 때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시인 김지하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 '스스로의 믿음에 빠진 기계가 되는' 듯하다. 오에 겐자부로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작품late work'를 자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마티)
"고향을 잃은 망명자는, 언제까지나 안주하지 않고 중심을 향해 비판하는 힘을 지속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
아마 올해도 노벨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한국의 몇 명 작가들 집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갈 것이다. 하지만 몰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부끄럽다고 여긴다. 한국 사회는 날로 형편없어지는데,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작년 슬픈 사건 때 잠시 들렸을 뿐... ... 그것도 문학계의 원로들은 사라진 자리였다. 오에 겐자부로가 칠순의 몸을 이끌고 나와 원전 반대를 말하던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오에 겐자부로가 어학 공부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걸 옮긴다. 영문학과를 다니고 있긴 하지만, 외국어 공부는 참 어렵다. 다시 마음을 잡아야겠다.
어학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을 세심하게 찾아보는 것.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시에서도)은 카드에 옮겨두고 외워버릴 것. 붉은 줄을 그어둔 책을 시간이 지나 몇 번이라도 다시 읽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시에서도)은 자신의 일본어로 번역해보는 것. 같은 작품을 두 가지 외국어로 읽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
평전이나 자서전등 한 인물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있다. 그 중 이 책처럼 대담집 형식을 취하는 방법도 있겠다.
이 책은 양자가 균형을 맞춘 엄밀한 의미의 대담집은 아니고 작가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이가 화두를 던지듯 말을 건내면 작가가 이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는 (굳이 말하자면) 질의응답 형식이라 하겠다.
이런 형식에서는 질문자의 수준이 관건이겠고 이 문제가 잘 해결된다면 그 인물을 오롯이 드러내는데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뿐만이 아니라 '독자가 듣고 싶은 것'과 '작가가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놓지지 않고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질문자는 오랫동안 작가를 담당해온 요미우리신문 문학담당 기자이고 nhk방송국의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같이 책도 만들어 냈다. 작가도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본인의 저서들을 모두 다시 한번 읽어내렸다 한다.
여기서 질문자의 질문은 좀 감탄할 정도로 적절하다.
본인의 알량한 비유를 하나 말하자면 최고의 고수와 소리꾼의 호흡같다.
1.저자의 말 2.질문자의 말 3.작가의 작품에서 인용한 글. 이 세가지가 같은 활자체로 크기와 굵기를 조금씩 다르게 해서 구분을 두고 있다. 질문자의 말은 활자굵기가 조금 얇게, 작가의 작품에서 인용한 글은 크기가 조금 작게..이런 식으로
그 적절함이 아주 적절해서 읽기에 편하고 좋다.(이런게 참 힘들지)
작가의 멘트를 조금 옮겨본다.
.....지금 내가 노인이 되어서 "나는이렇게 살아왔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거다" 라고 인생의 종착지에서 깨달은 지혜를 한장 인생을 살고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소설에 담으려다 보니,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타이틀이 <진실은 말할 수 없다>네요(웃음).
무엇인가를 언어로 표현해버리면 아무래도 현실에 있는 '진실'과는 어긋나버리지요.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어떻게든 '진실'을 향해 돌진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젊었을 때부터의 딜레마였어요.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 여러 가지를 고안했지요. 언어와 인간이 경험하거나 심중에 그리고 있는 사실과의 '어긋남'을 말로 표현해가자. 몇 번이고 그림에 색을 입히듯이 고쳐 쓰면서 진실에 다가가자. 바로 이것이 소설로 표현한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또한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해서 내놓은 것 자체에 내재하는 사실이 아닌 것, 그것을 스스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언어의 '차이'를 구사해갑니다. 조금씩 '어긋나 있는' 그림을 두 장 겹쳐놓은듯이 해서 제3의 진실을 부상시키는 수법에도 착안을 해서 어떻게든 언어로 실상이 갖고 있는 '진실'을 표현할 수 없을까? 악전고투하는 작가로서의 인생이었지요. 그러한 고뇌의 길에 들어서게 된 출발점에 <만엔 원년의 풋볼>이 있습니다.
.....작품을 발표한 직후의 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중략)
시바 료타로(司馬遼太?) 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받은 일입니다. 원고용지로 10매 정도 되었는데, "최후의 장면은 일찍이 소설로 씌어진 적이 없는 장면이고, 지금까지의 자네의 문장 가운데 가장 좋지 아니한가!"라는 찬사였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 장면이 중요했던 것뿐이고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시바 씨의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나는(웃음). 그래서 시바 씨에게 "당신의 평가 방식은 무책임하지 않으냐"라는 회신을, 역시나 원고용지 10매 정도로 써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칭찬하는 말만을 교환하려 편지를 주고받는다. 때문에 서로 책을 보내는 습관은 이제 버리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내가 쓴 책은 증정용으로 보내겠지만 회신을 받는 것은 거절하고 싶다"고 썼지요.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나 시바 씨가 돌아가시기 조금 전이었는데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례한 편지를 써서 실례했습니다. 저로서는 작가로서 추궁당하는 듯한 기분이었고, 그 칭찬의 말을 믿고 나의 불안을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짓을 했습니다"고 했지요. 그러자 "훌륭한 편지였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시바 료타로 기념관을 잘 찾아보면 내가 쓴 편지가 나올지도 몰라요.
--> 아..거장들의 교류는 이런 것인가..난 좀 감동.
(여기서 시바 료타로가 편지에서 언급한 내용에 해당되는 책은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