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양댁이 하루의 빗장을 걸 때쯤이면 낮새껏 하늘을 건너간 해도 옥여봉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 앉은자리에 벌건 불거지를 풀어놓고, 옥여봉은 샛비재의 몸을 탐욕스럽게 훑기 시작한다. 옥여봉 노을에 몸을 윤간당한 샛비재는 그 수모를 견디며 벼름벼름 아침을 기다린다. 버덩에 선 노송 우듬지에 해를 높이 걸어 두고 옥여봉을 향해 눈심지를 돋우는 샛비재. 늘 앙숙처럼 서로를 쏘아보며 눈겨룸 하는 동안, 낮이 지나고 마을엔 밤이 내려앉는다. 그들이 맞바라기 하는 중간쯤에 마을이 있고, 그 둘이 적대적이건 우호적이건 마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다. 되풀이되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하루, 그런 삶에 익숙해진 마을 사람들의 중독이다. 아궁이의 삭정이를 추스르던 손을 멈추고 문득 눈을 돌린다. 뒷간 지붕 위의 박꽃이 눈부시다. 새벽이슬로 피어난, 까만 루핀 바닥에 함초롬하게 피어난 박꽃, 아양댁 가슴에도 뭉클 하얀 꽃이 피어난다. 이파리 속에 간간이 자리를 틀고 앉은 연둣빛 박, 얼추 속이 여물어지면 하루 날 받아 걷어낼 참이다. 톱질로 양쪽을 갈라내어 삶아 속을 파먹은 후, 그늘에 잘 말려 걸어 두면 내년 모심기 때 모둠밥을 담아내기엔 맞춤한 그릇이 될 게다.
---「박쥐 문양의 들쇠」중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들이 먼저 제거되어야 할 요주의 인물이 될 것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전쟁은 그들을 소탕하는 걸 우선으로 했다. 발 빠른 여권은 의용군으로 출정했다. 용이 여권처럼 그렇게 의용군이 되었다면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을까. 비록 용이 그 전장에서 행방을 알 수 없더라도 생존의 끈 하나는 희망처럼 부여안고 있었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인연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그 뒤에 세워둘 건 아무것도 없다. 죽음은 아픔보다, 절망보다 더 가혹했으며, 그건 없다는 것이다. 없다는 것, 그것만큼 참혹한 형벌이 또 어디 있을까. 여권과 용은 저들의 것을 이념이라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모함이 난무했고, 함정이 곳곳에 돌부리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용이, 여권이 말하는 이념이란 것은 충분한 원한 없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칼보다 더 무섭고 잔인한 무기였다. 용이 죽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내 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적이었고, 그들은 하루아침에 파리 목숨처럼 사라졌다. 죽어 넘어진 송장 앞에 다시 송장이 넘어지고, 그 송장들은 제대로 된 흙이불도 없이 떼거지로 묻혔다. 무리죽음이었다.
---「용의 바다」중에서
굴통 탈곡기의 출현은 사람 손을 많이 덜어 주었다. 장정 너덧 명만 있으면 동네 나락 다 털어도 보리갈이까진 넉넉하고 유유한 시간이다. 힘 좋은 덕재 씨와 또출 아범이 탈곡기 발판을 굴러 대면 허드렛일이 몸에 익은 곡자 할아버지가 조수로 따라붙는다. 몸이 잽싼 판수는 탈곡기 양옆에 부지런히 볏단을 쌓아 올리고 발판을 굴러 대는 두 사람 팔이 내밀기만 하면 잡힐 높이로 눈가늠도 잘한다. 탈곡기가 쏟아 내는 벼 거스러미를 갈빗대로 쓸어 내는 곡자 할아버지의 수염에는 허연 검불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풍구에 넣어 쭉정이를 날리고 남은 몽골벼를 가마니 자루에 담아 마무리하는 중길 씨의 손은 정확하다. 그런 후면 논임자들은 제 몫의 나락을 싣걱질해 가는 걸로 마당질은 끝을 낸다. 가정실습에 들어간 아이들은 볏단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순덕과 명덕은 제철 만난 메뚜기처럼 볏담불에서 치뒹굴내리뒹굴 하다간 제 아버지 후림불에 놀라 쫓아 나오곤 한다. 탈곡기 옆에 가득 쌓인 볏단을 한 아름씩 안고 나르다간 아예 볏단과 함께 쓰러져 드러눕는 놀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가을이 되면 모든 게 넉넉하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맘도 너그럽다. 풋바심으로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봄, 볏댐을 하기 위해 땟거리 퍼낸 바가지를 약게 저울질해 한 끼라도 느루가기 위해 벌벌 떨던 손, 삭막했던 그때의 인심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도 볏가을 때다. 하얀 쌀밥에 푹 꽂는 아이들 숟가락이 보기 좋고 당분간 보리쌀보다 쌀을 더 얹어 밥을 지어도 맘이 조급하지 않아 좋다. 쌀을 넉넉하게 섞은 밥은 안치는 것도, 먹는 것도 일손을 덜어 준다.
---「옥련네」중에서
아양댁 눈에 생기가 돌아 나간다. 그 찬새미 물은 한데우물처럼 물맛이 달았다. 겨울이면 따듯했고 여름이면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양댁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은 많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곤 했다. 해방이 되었고, 전쟁이 일어났고, 4·19, 그리고 5·16도 겪었다. 그런 것들은 다 세상에 휩쓸려 흘러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양골이 거대한 조선소에 파묻히게 된다는 건 그냥, 세상의 일이 아니었다. 아양댁에겐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고, 절망이다.
---「생의 끝갈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