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을 사랑하는 눈으로 본, 동학혁명운동사”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이 사상적, 문화적 영감을 주는 것처럼 동학은 한국 근대사의 출발점이면서, ‘개벽(開闢)’과 ‘생명사상’이라는 화두로써 미래로 열린 사상(思想)과 실천(實踐)의 보고가 되어 준다. 최근 전 세계적이 주목을 받으며 혁명(정권교체)에 성공한 ‘촛불혁명’의 기원도 바로 동학혁명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진단이 적지 않게 나온 바 있다. 그것은 동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새롭지 않은 동학’ 이해란 동학을 단지 ‘혁명이나 전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반해 ‘새로운 이해’란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동학 탄생[昌道] 당시부터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이며, 소수의 사람일지언정 면면히 그 이해와 실천의 계승이 이루어져 오고 있던 바다.
이 책의 저자 표영삼 선생은 동학을 혁명(革命)이나 전쟁(戰爭)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서도 평생에 걸쳐 동학은 혁명(革命)일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삶의 틀을 개벽하는 가르침’(宗敎)이라는 신념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동학(천도교)의 본령임을 연구로써 구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으로 실천궁행함으로써 증명해 보인 분이다. 단지 동학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동학을 ‘살아가신’ 분이기에, 그의 동학(혁명) 이야기는 오밀조밀하고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거두절미를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읽는 재미를 더하는 중요한 문체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평생에 걸쳐 일구어 놓은 동학혁명사 연구 가운데서, ‘지역별 동학혁명운동’이라는 관점으로 쓰신 것을 모은 것이 이번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동학(혁명)’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들여다 본 역사라는 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대로, 표영삼은 동학을 사랑하는 그 눈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동학혁명사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그러므로 삼암장이 동학혁명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남과 같지 않다. 한마디로 동학혁명사 이해를 편안히 따라갈 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해 준다.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동학답사’ 안내를 맡았던 이력이 녹아든 덕분일 터이다. 이런 내공 덕분에 같은 사료를 근거로 하더라, 삼암장이 서술하는 동학혁명운동사는 남다른 대목도 적지 않다. 삼암 표영삼은 사실(事實, 史實)을 도외시하지 않되, 그의 눈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역사의 진실(眞實)’이어서 그렇다고 본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단지 사료나 역사적 정황(情況)에 의존하여 써내려 간 글이 아니라, 그가 수십 년 동안 현장을 답사하며 촌로(村老)와 동학군 후손(後孫)들로부터 들었던 생생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그 위에 사료로부터 얻어지는 정보를 추가하여 동학혁명사를 재구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표영삼이 동학 답사를 시작하던 때는 극히 일부 사람들이 한정된(전봉준, 김개남 등의 동학 거두들) 역사적 맥락 외 지역 곳곳의 동학 사적(종교 사적 + 동학혁명 사적)을 찾아다니면서, 그때까지 생존해 계시던 1890년대 전후 출생자들과 후손 중에서도 제1세대에 속한 분들의 증언을 비교적 다수 청취하면서 축적된 내공이 바탕이 되고 있다(이러한 史蹟 탐방의 성과는 별도의 저작선(03)으로 근간 예정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단사(인물사)에 해박한 장점을 살려, 각 지역의 연원(淵源-동학교단의 인맥계통)에 대한 지식을 사료 해석이나 역사 이해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을 배가한다.
그리고 삼암 표영삼은 그 이야기들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원전 인용되었음에도, 그것을 평이한 현대문으로 번역하였으며, 자료의 행간에 숨어 있는, 혹은 자료가 누락된 이야기(역사)의 지평을 때로는 추리와 때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일목요연하게 풀어나간다. 이 책의 미덕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이야기성’과 그 생생한 묘사에 힘입어, ‘문자를 통해 그날 그곳의 전투 상황과 동학군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들의 마음까지’를 마치 그림으로 보듯이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그 사람과 역사들은 삼암 선생이 그때 그곳에 이르러 발굴하고 채록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주 속의 먼지로 산화해 버리고 말았을 바로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고 찾은 것들”(저작선 1권-‘표영삼의 동학이야기’ 서평 중에서)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이미 간행된 [동학1-수운의 삶과 생각] [동학2-해월의 삶과 생각]에 이은 표영삼의 동학 3부작 시리즈 제3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표영삼은 [동학3]의 원고를 탈고하여 출판사에 맡겨 둔 상태인데, 현재까지 출간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표영삼의 동학혁명운동사]는 [동학3]의 출간용 원고의 저본(底本)이라고 할 수 있는 원고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그것이 ‘동학혁명사론’이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삼암 저작선을 통해 ‘동학’의 진면목이 재조명되고, 부활하여 다시개벽의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데에 일조할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 삼암(三菴) 표영삼 이야기
일찍이 도올 김용옥 선생이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자, 80이 되도록 ‘청년’으로 살다가, 위대한 종교인의 모습으로 환원(還元)하신 표영삼 선도사(宣道師).
표영삼 선생은 1925년 평북 구성에서 출생하여 조부(표춘학) 대부터 신앙하던 천도교에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스레 몸담게 됐다. 특히 해방 직후부터 활발하게 교회 활동을 전개하던 중 6.25가 발발하자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1952년 말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그 무렵 부활된 천도교청년회에서 문화부장 겸 중앙상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교회 활동을 재개했다. 1961년 이후 10여 년간 노동 현장에 투신해 체신노조, YH노조 설립 등을?지도했다. 1977년 다시 천도교로 돌아와 신인간사 주간, 교화관장, 상주선도사, 교서(교사)편찬위원 및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30여 년간 천도교 연구에 매진했다. 교리, 교사, 유적지 조사 부문으로 대별할 수 있는 선생의 업적은 특히 동학의 성지, 사적지 발굴 조사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초기의 저술은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과 [천도교월보]를 통해 주로 발표했다.?2000년대 들어 대외적인 발표를 시작하면서 [동학1] [동학2] 저술을 남겼다(최종권인[동학3]은 출간 준비 중이다). 선생의 연구, 조사, 저술의 성과는 대체로 교리 부문, 교사 부문, 동학 유적지 조사 부문 등이다. 말년에는 당신의 연구 성과와 평생에 걸친 조사 결과를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데 관심과 애정을 갖고 강의와 답사 안내에 매진하던 중 뜻밖의 병을 얻어 2008년 향년 84세로 환원하였다.
● 삼암 표영삼 저작선은?
삼암 표영삼 선생은 생전에 저서 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여러 지면에 걸쳐 다양한 글들을 발표하였다. 만년에 그러한 성과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 일을 미처 마치기 전에 환원하였다. ‘삼암 표영삼 저작선’은 그러한 선생의 뜻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발표된 글들의 결을 살려가며 차례대로 발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화석화된 형태로서의 유고전집이 아니라, 표영삼 선생의 생생한 목소리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자 한다.
- 저작선 제1권 : 『삼암 표영삼의 동학이야기』(2014.11.10.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