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1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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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58g | 128*188*20mm |
ISBN13 | 9788965707127 |
ISBN10 | 8965707129 |
발행일 | 2018년 1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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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58g | 128*188*20mm |
ISBN13 | 9788965707127 |
ISBN10 | 8965707129 |
서장|정의로운 사람인가, 위험한 사람인가? 잘못을 찾아내서 인터넷으로 공격하는 사람들│피해자를 대변하는 관계없는 사람들│융통성 없이 규칙을 외친다│그건 정말 정의감인가?│직장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 1장|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복잡한 까닭은 무엇인가? 왜 말이 통하지 않을까?│‘능력’과 ‘연공서열’을 둘러싼 공방│커리어가 전부냐, 가정이 우선이냐│경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입장에 따라 보는 이치가 달라진다│이치가 다르면 정의도 달라진다│일방적인 자 기주장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환상이 비뚤어진 정의감을 키운다│정의감을 앞세워 집단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상대의 아픔이 전해지지 않아 잔혹하게 정의를 주장한다│익명성이 일방적으로 정의를 주장하게 만든다│왜곡된 정의감을 부채질하는 대중매체 2장|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정의를 믿는가? 일방적으로 자기 이치만 주장하는 사람들│다른 관점에서 이치를 상상하지 못한다│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심한 억측에 빠져 있다│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더 자신만만하다│인지 복잡성이 부족하다│가치 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감정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믿었던 상대를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한다 3장 정의를 밀어붙이는 행동 이면의 심리 분노의 이면에 있는 갈등│욕구불만이 유발하는 공격적인 행동│생리적 욕구불만이 초래하는 공격성│사회적 욕구불만이 초래하는 공격성│지역적 정서에서 발생하는 욕구불만│채워지지 않는 승인 욕구│개 인이 활약하는 사회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자신│고용 불안에 노년 복지까지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해?│위아래에 껴서 눈치만 보고, 우리는 누가 대접해주나?│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한다는 불만│감정노동의 스트레스│자신은 정의의 편이라는 자아도취│자기 효능감의 추구│자신에게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다│정의가 통하지 않고 나쁜 놈이 더 잘사는 답답한 세상│자기주장으로 기분을 환기한다│개인적인 울분을 타인에 투영해 발산한다│질투가 공격하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핀다│정의의 가면을 쓴 샤덴프로이데 4장|정의를 비웃는 정의감의 역설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바르게 하기보다 무조건 잘하기를 바라는 사회│약육강식 세계화에 따라 무너지는 윤리관│정의를 비웃는 정치인│정의를 무시하는 기업가│정의를 좇는 사람을 오히려 야유하는 분위기│수치심과 부러움│정의를 좇는 인물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 5장|정의를 밀어붙이는 위험한 사람의 특징 자신의 가치 판단을 절대시한다│타인의 입장과 기분은 알고 싶지 않아│내 생각만 일방통행으로 말하기│나는 특별해, 나만 특별해│친해지면 극단적으로 스스럼없이 대한다│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한다│언제나 불만투성이│의문을 던지거나 부탁을 거절하면 화를 낸다│이치가 옳다 해도 감정적으로 대응한다│타인에 대한 평가가 180도 바뀐다│남이 성공하면 침울해진다│남이 행복하면 조바심이 난다│잘난 사람을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괘씸하게 여기는 상대의 관계망을 파괴한다│악인을 비난하는 일에 집념을 불태운다│일반적인 감정이 통하지 않는 사이코패스 6장|정의로운 사람이 위험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 정의로운 사람이 어느새 변해 있을 때│왜 가까운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인가?│가까운 사람이야말로 위험하다│위험한 사람이 가진 일상적 패턴│인지 왜곡이 왜곡된 정의감을 낳는다│의심이 많거나 자신 감이 부족하면 인지 왜곡이 생긴다│우울한 사람에게 인지 왜곡이 많은 이유 |
요즘 세상은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비리 사건이나 불의한 사람을 향한 비난의 여론은 삽시간에 퍼지곤 해요.
스마트폰과 SNS는 좋든 싫든 온갖 이슈들을 공론화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어요. 과거에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갔다면, 지금은 클릭 한 번이면 끝이에요.
수많은 익명의 댓글들 중에는 정의를 앞세워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이른바 악플이 존재해요.
잘못된 건 바로잡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칼날을 휘두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표현할 자유는 있으나, 그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해요.
문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책임한 정의의 사도는 거짓말쟁이, 폭력배인 거죠.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정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변신하는지 그 실체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정의롭지 않은 사람, 즉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을 분석하여 정의내린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인가요, 아니면 정의를 밀어붙이는 위험한 사람인가요?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나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될 거예요.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정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파렴치한이에요.
그들의 특징은 자기 주장만 밀어붙이면서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또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가까운 사람도 순식간에 적으로 간주해서 헐뜯고 비난하죠.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의 심리에는 욕구불만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이러한 심리적 동기 요인 중 하나가 패배자 의식이에요.
누구는 경제력과 권력을 휘두르며 제맘대로 사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이 질투의 감정으로 바뀌고,
결국은 승자의 발목을 잡아서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진다고 해요. 정의를 빙자한 불의를 저지르는 거죠.
현대사회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패배 의식에 빠진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사실 질투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더 심각해지면 타인의 행복을 용납하지 못하는 위험한 심리에 빠지게 돼요.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불행을 원하고, 타인이 불행해지면 기뻐하는 이상 심리, 이것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라고 한대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과 왜곡된 정의감을 부채질하는 대중매체는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더욱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왜 익명성이 문제인가, 그건 익명성이 공격적인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을 밝혀낸 유명한 실험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교 명예교수인 필립 짐바르도의 몰개성화 실험.
이 실험은 학습자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실험 참가자가 학습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방식인데, (실제 실험에서는 전기 충격 버튼은 가짜였고, 전기 충격을 준다고 속인 거예요.) 그 결과가 놀라워요. 익명이 보장된 몰개성화 집단이 학습자에게 전기 충격을 준 횟수가 개성화 집단이 준 횟수보다 2배 가량 높았어요. 실험 참가자들은 학습자에게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는 걸 알았지만 상대방이 겪을 고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전기 충격 가해자)에 충실했어요.
아무리 실험이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전기 충격이라는 비윤리적 장치에 대해 반대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 사회도 실험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의'라고 떠들면서 밀어붙이는 사람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전기 충격과 같은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면서 가짜 정의감에 빠져 있어요. 어쩌면 그게 자신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정의로울 것인지, 정의로운 척 할 것인지 선택할 일만 남았네요.
나 자신이 이런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게 나 역시도 이런 범주에서 벋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정의를 밀어 붙이는 사람에서 예외가 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정의를 밀어 붙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정 반대에서 밀어 붙임을 당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무엇이 맞을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가 이 질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는 말을 들었고 공감했다. 나혼자서 일을 잘한다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잘 어울어 져야 한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분위기에 적응을 했다고 느낄 무렵,좀 의외의 경우에서 심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을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어떤 대처를 해야 했나,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했는데, 책에 그 부류의 사람들을 분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할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 또한 업무상 체크해야할 부분이 많아진 입장에서 신입직원에게 자주 지적하게 되는 것이 같은 사람이 될수 있다는 생각에 불편하기도 하다.
대화를 하면서 흔하지는 않지만 어떤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절대’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그렇고 다양성에 대한 재고가 없는 것이 그렇다.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시각의 생각을 인정하면 더이상 나만의 ‘일반적인’은 더 이상 ‘일반적인’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시각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다. 사고가 흔들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고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유연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는 알지만 실천은 더딘 부분이 많다.
고백하건대 책을 볼때 제목에 꽂히는 경우가 더러 있는 편인데, 이 책은 제목만으로 ‘밀어붙이는’에서 내 생각대로 얘기했던 부분들이 떠올라 마음을 움직였고, ‘정의’라는 기준은 뭘까 하는 의문으로 두가지 생각을 도시에 이끌어 내어 그 의도가 적중했다고 본다. 적어도 나와 같은 고민에 있는 사람은 말이다.
논쟁이 있을 토의를 해도 협의점을 찾아야 하는 부분은 문제 전체의 20%에 정도에 달한다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일반화 하기 어렵지만, 20% 크다면 큰 입장의 차이지만 간극을 좁힐수 있는 기회조차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저 의미없는 가설일 뿐이다.
책에서의 ‘정의’라 함은 주관적인 의미에 가깝다 할수 있어 정의론에 한정짓지 말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다수를 위한 목적성을 띈 정의라면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를 돌이켜 내가 '나만의 정의'를 밀어붙이지 않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