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상의 종말과 미사, 요한 묵시록과 주님의 만찬, 평범한 매일매일의 일상과 예수님의 재림 등 다양한 주제들을 묵시록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언뜻 보기에는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적 실체들이다.
추천의 글 p.4
가톨릭에 관련된 것들 중에서 가장 친숙한 것을 들라면 서슴없이 미사를 꼽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듯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기도문과 성가들, 정해진 양식에 따라 반복되는 전례 동작들로 인해 미사는 마치 집이나 고향 같은 느낌을 준다.
문 앞에 서 계신 그리스도 p.16
미사는 우리와 아주 가깝고 친밀하다. 반면 묵시록은 상대적으로 낯설고 멀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묵시록의 각 장에는 전쟁, 재앙, 괴물들과 천사들, 피의 강, 악마의 개구리,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용 등 괴상하고 무서운 영상들이 넘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일곱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눈이 달린 어린양이다.
문 앞에 서 계신 그리스도 p.17
예수님에 대한 호칭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주님, 하느님, 구세주, 메시아, 임금, 사제, 예언자 그리고 어린양. 이 호칭들 중 유독 다른 느낌을 주는 호칭이 하나 있다. 일곱 번째 호칭까지는 우리들이 편안하게 하느님이자 인간인 존재(하느님-인간)를 부를 수 있는 이름들이다. 그 이름들은 어느 면에서는 자못 점잖게 지혜나 힘 그리고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어린양이란 호칭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p.33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성되어 있다. 두 부분은 물론 각기 세부적이고 독특한 의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라틴 전례를 예로 들자면 ‘말씀 전례’에는 입당과 참회, 본기도, 성경 봉독 등이 포함된다. 말씀 전례에 이어지는 성찬 전례 역시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예물 준비, 감사 기도, 영성체 예식, 마침 예식이 그것이다. 미사는 이처럼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와 맺은 계약을 갱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복음 p.72
이제 그들은 새로운 예루살렘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요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던 새로운 예루살렘이다.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어디로 내려오는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셨고, 성체성사를 세우셨던 시온산이다. 시온산은 오순절 날 그곳에 모여 있던 사도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곳, 그리스도 신자들이 기원후 70년까지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모였던 곳, 목전에 닥친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인호를 받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이 어린양과 함께 서 있던 곳(묵시 14,1 참조)이다. 새 예루살렘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어린양의 만찬을 거행하는 곳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 p.157
묵시록을 읽는 사람들은 지진이나 메뚜기 떼, 기근과 전갈 같은 것들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런 재앙들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오로지 그분이 우리를 엄청나게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느님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과 세상의 쾌락들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락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것들을 최고의 가치, 신으로 여기고 떠받든다면, 진짜 신인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기초를 부수기 시작하는일일 것이다.
심판의 날 p.171
거룩한 성체성사의 절정인 하늘과 땅의 결합, 이것이 바로 요한 묵시록이 계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묵시록의 첫 마디 역시 그것을 암시한다. 보통 ‘계시(Revelation)’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는 말 그대로 ‘베일을 벗긴다.’는
뜻으로 주중 내내 계속되는 유다인들의 긴 혼인 잔치에서 사용되던 용어였다. 요한 사도 시대에는 ‘아포칼립시스’라 하면 혼인의 절정인 성적인 결합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신부의 베일을 걷어 올리는 것을 의미하였다.
베일을 걷어 올리며 p.190
우리는 하느님을 점점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이것은 죽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분을 모른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그분의 은총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알 수 없다.
하느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싸움에 필요한 무한한 힘과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안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듣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 성장을 해 나가면서 미사를 준비해야 한다.
예배는 전쟁이다 p.215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