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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서 | 가하 | 2012년 03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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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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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2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0.3만자, 약 6.6만 단어, A4 약 128쪽?
ISBN13 978896647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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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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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민희서
1월 6일생으로 함박눈이 잔뜩 오던 날 태어났다.
로망띠끄와 다음 팬카페 The Secret◈ 에서 주로 활동 중이며(http://cafe.daum.net/dreamNABY) 강한 남자 캐릭터를 자주 주인공으로 쓰지만 알고 보면 장난꾸러기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유쾌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스스로를 흐뭇하게 보는 여자이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자, 이제 말해보실까? 이 아이는 누구고, 도대체 이 아이가 뭐기에 이 시간에 날 부를 만큼 다급했던 거지?”
제이드는 아무 말도 없는 그를 힐끔 바라봤다.
“저도 잘……. 그저 집 앞에 쓰려져 있는 것을 데려왔습니다.”
순간 라이언은 기가 찼다. 하지만 더 이상 입 밖으로 반박을 못한 것은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어렴풋이 봤을 때 아이는 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모 손길이 절실한 나이의 아이가 영양실조라니. 어떤 작자가 부모인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니까, 동정 따위 베풀려고 이 시간에 날 불렀다. 이건가?”
“뭐가 궁금한 거야.”
그의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날카로웠다. 아이와 그를 번갈아보던 라이언의 눈빛이 차갑게 일렁였다. 자신이 아는 그라면 남에게 호의를 베풀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상대가 누가 됐든 그는 사람이 흔히 가지고 있는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을 느끼거나, 그것 때문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것이든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관심권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오직 하나였다.
라이언의 머릿속은 혼란과 불같은 화로 가득 찼다. 라이언이 비죽 웃었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일 만큼 카일 루이스가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이었던가? 그것도 동양인에게?”
그의 시선이 뽀얀 살결을 흐트러트리며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닿아 있자, 라이언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떼어질 줄 모르는 그의 눈에 가슴이 갑갑해졌다. 담배와 독한 위스키가 절실하게 필요한 밤이었다.
“물론 착각……, 그래 착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문제가 다르지. 쓸데없는 오지랖 부리지 말고 집으로 돌려보내. 저 아이가 돌아가서 맞아 죽든 살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아냈다. 아니 그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뜻대로 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은 뭐든 이루고 또 누리고 살아왔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말리기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저 눈빛, 익숙하고 불안하다. 새벽에 다급하게 제이드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는 의아했다. 워낙에 지독한 놈이라 아파도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밤에 그를 다급하게 찾았을 땐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길을 헤치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헌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비틀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네가 베풀 호의는 딱 여기까지야. 제이드, 저 아이 열이 내리면 집으로 돌려보내.”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뭐?”
잇 사이로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에 아이의 손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움찔움찔 떨리는 손끝에 그의 고운 양미간이 구겨졌다.
아이가 깰까 전전긍긍하는 것인가. 라이언은 코웃음을 쳤다. 웃음은 싸늘하게 입가를 타고 퍼져나갔다.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만 가봐.”
“카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문 밖에 서 있었다. 억지로 끌려 나간 방문은 쇠로 만든 철문이라도 되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한마디로 치료해주고 쫓겨난 꼴이었다. 그는 머리를 거칠게 헝클이며 간절했던 담배를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입 안이 뜨겁고, 타들어갈 것 같은 지독한 갈증이 느껴졌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복도를 메우고 입 사이로 문 그것이 붉은빛을 내며 천천히 타들어갔다. 이 상황 자체가 짜증난다.
“제길!”
쾅,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그의 시선을 받을 것은 저 아이가 아니었다.
의자에 기대어 목을 갑갑하게 죄여오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갑갑하다. 아직도 밤마다 피에 젖은 하얀 손이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그의 손가락이 의자 손잡이를 툭툭 치며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였다. 감고 있던 눈을 느릿하게 뜨며 곤하게 잠든 아이와 자신의 손을 길게 쳐다봤다. 느릿한 움직이는 눈동자는 아이와 맞잡은 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검지로 매끄러운 턱 선을 쓸어내리는 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아이의 손끝에서 뜨거운 온기가 흘러나왔다.
“제이드.”
이번에도 제이드는 그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아이 여기서 지내게 해.”
“조치하겠습니다.”
제이드는 그의 말에 토씨 하나 붙이지 않았다. 그의 명령이 곧 법이었고 그의 지시가 제이드 본인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수년 동안 그래왔고 그를 믿고 따랐다. 그것이 불구덩이 속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리고 이 아이를 데리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봐.”
제이드는 목례를 하며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한참을 아쳀의 상태를 확인하던 카일은 열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방을 나갔다. 닫은 문 밖으로도 그 열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는 서재 책상에 오른 액자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늘한 손으로 액자를 한참을 매만졌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듯이 그의 손길은 꽤 섬세하고 다정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책상 서랍 안으로 넣었다. 그는 피곤한 듯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적막감만 감도는 방의 공기가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깨졌다.
“알아봤습니다.”
제이드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와 파일을 건넸다. 종잇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봐도 특별히 나와 있는 것이 없었다. 가족 사항, 국적 모두 공란이었다. 나이가 열네 살이라고 적혀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세세하게 살펴보던 그의 눈이 끝장에서 멈춘 것을 확인하고, 제이드는 조용히 입술을 뗐다.
“데리고 있던 자는 벌트라는 자였는데 맨해튼에서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이라…….”
“그것 역시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지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저 부르기 편하게 지은 거 같습니다.”
정리된 파일을 책상 위로 던져 놓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긴 속눈썹이 드러나 얼굴에 길게 그늘 졌다.
“없애.”
그의 목소리가 끝이 뾰족한 얼음처럼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다음 날, 아이가 깨어났을 땐 낯선 풍경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여러 번 손으로 비볐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손등을 손톱으로 살짝 꼬집었다. 순간 손등을 타고 오는 통증에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아도 이곳은 낯선 곳이었다. 자신의 몸을 뒤덮은 이불은 포근하고 따뜻했으며, 몸에 닿는 감촉이 벨벳보다 더 부드러웠다. 방 안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구들이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웠다. 누워 있는 침대도 자신이 지내던 창고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아이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발을 한 발 내딛었다. 하지만 곧 휘청거리며 침대에 털썩 내려앉았다. 아이는 작은 입술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를 내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이의 고개가 퍼뜩 들렸다. 들어온 것은 낯선 남자였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잘생긴 남자의 표정엔 아무것도 담긴 것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간밤의 일이 조금씩 떠올랐다.
“몸은 괜찮은가 보군.”
아이는 갑자기 닿은 남자의 손에 몸을 한껏 움츠리며 움찔거렸다. 발톱을 세운 새끼 고양이처럼 남자를 경계했다. 낯선 곳이 두렵고, 겁이 났다.
“이곳은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다.”
그의 말에 아이는 눈을 깜빡였다. 아이는 아직 모든 것이 믿기질 않았다. 이곳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움츠렸던 몸을 좀 더 둥글게 말았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함도 잠시였다. 남자의 핏기가 도는 붉은 입술이 떼어지자 심장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본래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네 이름은 앞으로 미우다.”
“……미 ……우?”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아직도 생소한지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읊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너의 주인이다.”
그의 말이 귓속 깊숙하게 파고들며 몸 전체로 타고 들어와 심장 깊숙하게 박혔다. 오직 아서왕만이 뽑아낼 수 있었던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처럼…….

6년 뒤, 하얀 얼굴에 큰 눈망울을 지닌 작은 여자 아이가 키에 맞지 않는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계단에서 뛰어내려왔다. 어깨선을 갓 넘은 긴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내려오는 여자 아이는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듯한 앳된 모습이었다.
“아가씨, 이렇게 뛰면 안 된다니까요?”
“그래도 지금 온다잖아.”
뭐가 그리 기쁜지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녀는 창문 너머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잠시 찰나도 심장이 요동치며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끼이익, 기다리던 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더 환하게 바뀌었다. 같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녀의 눈엔 오직 그만 보였다. 그녀의 모든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오직 그에게만 반응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보고 싶은 그가 돌아왔다.
“카일, 너무 보고 싶었어.”
“내가 뭐라고 했지?”
아이는 남자의 품에서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어리광을 부렸다. 백인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에 안겨 있던 품에서 빠져나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환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았지만 눈은 오후의 햇살보다 더 따스했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6년이 지난 미우의 모습은 혈관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마르고, 멍투성이였던 작은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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