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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사이

끝과 시작 사이

: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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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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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52g | 128*188*20mm
ISBN13 9791196402587
ISBN10 119640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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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리스본에서 길을 잃었다.
눈에 익은 길이 보여 그곳을 따라 걸었다. 낯익은 건물들, 사람들, 분위기 그리고 시작이란 단어를 붙인 리스본 대성당. 여전히 골목 어귀에서 견고하게 서 있다. 햇빛을 받는 창문은 깨끗하고 주변 관광객과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들뜬 얼굴이 보인다.
순례도 끝나고 알베르게에서 지낸 생활도 마무리 지었다.
모든 게 끝이 나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이에 만난 리스본 대성당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건네주었다.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뒤 돌아 걸었다.

기분의 높고 낮음의 편차가 큰 하루다.
두 번째 코피가 난 뒤로 완전히 의욕을 잃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게 아니라 매달려 걸었다. 부상당한 패잔병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걷는 속도와 쉬는 리듬을 계속 신경쓰며 걸었다. 하지만 27km가 넘어가면서 더 많이 쉬어야 했고 더 적게 걸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차가 다니는 도로 옆 카페에서 매연과 먼지 속에 앉아있다. 자동차 소리와 함께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횡단보도 옆 신호등은 바쁘다. 정신없는 아침 출근길 위로 안겨오는 햇살에서 향긋한 품을 느낀다. 우유 속에 즐기는 따뜻한 햇살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달콤한 빵과 우유를 탄 커피가 입 안에서 어우러져 녹는다. 커피 잔내가 입에 남아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Don't worry, be happy.’

부끄러웠다.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바라본 사람들의 눈은 더 이상 어두운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서로 도우며 더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들의 무시한 듯한 행동 속에서 힘든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한 것들이 묻어나왔다. 서로 장난치며 웃는 모습은 순진해 보였다. 나는 얼굴을 붉힐 정도로 정말 부끄러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선을 그어 버린 나 자신을 반성했다.

맑은 하늘과 멀리 떠 있지 않은 태양은 묵시아보다 더 깊은 노을을 연출해 주었다.
잔잔한 파도는 절벽을 작은 소리로 쓰다듬었다. 태양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던 순례자들은 점차 숨을 죽였다. 태양은 노란색 빛을 뿜으며 고개를 숙였고 하늘은 파스텔 색조로 덮여갔다. 노란빛을 뿜어내다, 바다에 젖으며 주황빛으로 주변을 얼룩지게 하고, 은빛으로 바다 위에 길을 만들어 주었다. 해가 바다 밑으로 들어갔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노을의 마지막 잔상까지 눈에 담아 오늘을 기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순례자로서 마지막 해가 지고,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등대에 빛이 들어오고 시니아와 나는 자리를 정리하기 전에 잔뜩 그을린 자국이 있는 돌 옆으로 갔다. 마지막 의식을 준비했다. 그녀는 양말을 태우고 나는 무릎 보호대를 태웠다. 35일 동안 수없이 포기를 생각하게 만든 무릎 부상을 마지막으로 잊고 싶었다. 시니아의 소독용 알코올 덕분에 환하게 잘 탔다. 붉은 재가 연기를 남기며 꺼질 때까지 우린 말이 없었다. 세상의 끝에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순례자는 무책임하게 ‘끝’을 선고받았다.

모든 의식이 끝났다.

우리는 마을로 향해 가로등 없는 길을 다시 걸었다. 해가 진 하늘이지만 더없이 밝았다. 길을 걷는 우리 앞으로 별 그림자가 보였다. 그렇게 많은 별이 밝게 빛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눈가에 별빛이 아렸다. 낮은 별은 나무에 걸렸다. 황홀한 기분에 젖었다. 별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많은 별의 잔망스러움 때문에 포기했다. 마이크가 웃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는 카미노가 순례자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야. 순례를 마치고 도착한 순례자들이 끝과 시작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걷도록 응원하지. 우리의 영혼도 저 별 중 하나가 되어서 다른 순례자들을 작은 빛으로 응원할 거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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