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실크로드

실크로드

[ 개정판 ]
리뷰 총점9.5 리뷰 10건 | 판매지수 84
정가
19,800
판매가
17,82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구매 시 참고사항
  • 『살아 있는 길, 실크로드 240일』의 개정판도서입니다.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578g | 153*224*35mm
ISBN13 9791188434077
ISBN10 118843407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여행가라는 호칭을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여행기 몇 권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해야 그런 호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겁 없이 모험에 뛰어드는 용기,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해박한 지식, 그리고 치밀한 정보 수집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여행가가 되어 훌륭한 여행기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콜린 더브런은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훌륭한 여행가다. 그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끈질기고 용감한 추적 의지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역자로서는 그의 문장마저 간명하고 분명해서 번역하기 좋았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실크로드는 세계 최고(最古)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비단이 교역되던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교역로다. 기원전 수천 년에 이미 동서양을 이어주던 문화의 통로이기도 하다. 실크로드가 교역로로서 빛을 잃게 된 것은 나침반의 발명으로 해상 교통이 발달하면서부터다. 지금은 항공교통까지 발달했으니 실크로드의 교역로로서의 가치는 더욱 줄어들었을 터다.
저자는 중국 시안을 출발해서 터키의 안티오크까지 1만 2천 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길을 여행했다. 그는 시안의 비림(碑林)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신부 알로반의 행적을 새긴 비석을 찾아내고(당나라태종이 이방의 종교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항복한 로마 군단 장병들의 후예를 찾기 위해 중국 서부의 오지 마을을 헤매기도 한다. 마침 그 무렵 사스(SARS)가 중국에 번져, 가는 곳마다에서 검문을 당하다가 결국은 격리수용되고 만다. 이 수용소에서 만난 타클라마칸의 오지 마을 청년을 통해 저자는 그곳 오지에도 인터넷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그는 이동전화로 약혼녀와 대화를 나누는 청년을 만나기도 하고, 이란에서는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성소 안으로 몰래 들어가 종교적 열정으로 광란상태에 빠진 사람들 속에 섞이기도 한다. 테헤란의 팝 화가를 만나기도 하고, 이란의 여대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불법으로 설치된 접시 안테나를 통해 서방의 문화와 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또 암살단 종파의 근거지 유적을 찾아 험한 산속을 헤매기도 한다. 암살단 종파는 하산이라는 사람이 11세기에 창설한 이슬람의 이단 종파로, 험한 산 계곡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암살단을 각지로 파견해서 자기네들이 보기에 제거해야 할 인사로 보이는 사람들을 암살했다. 그들은 150년 동안이나 이런 무시무시한 암살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들은 산속에 멋진 정원을 차려놓고 그곳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젊은 여자들과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하시시(대마초)에 취했다고 해서 하샤신(hashashin)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암살자(assassin)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의 근거지를 함락시키고 파괴한 사람들이 몽골 군이라고 한다. 몽골의 정복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저자의 여행은 지중해에 면한 터키의 항구 안티오크에서 끝난다. 실크로드의 종점(혹은 시점)이었던 이 도시는 서양에서 한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인구 50여 만의 대도시였다. 저자는 실크로드의 빛과 그림자를 이 쇠락한 도시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장엄한 역사의 조락이다.
2003~2004년에 걸쳐 총 240여 일간 진행된 그의 여정(사스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던 해 봄에 여행을 시작하여 북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이듬해 같은 계절에 계속된다)은 낙타, 택시, 트럭, 달구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발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이 여정을 통해 중국 서부에서 로마 군단의 자취를 찾았고, 켈트족의 미라를 직접 보기도 했다.
1만여 킬로미터의 그의 긴 여정은, 역사는 인간들 자신과 그들의 삶의 지속이라는 것, 소통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의외로 강하다는 것, 권력의 통제가 아무리 강해도 세계는 어떻든 서로 소통한다는 것(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위성방송 등 소통 수단이 발달해서 소통을 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 특히 젊은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 등을 생생하면서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그의 이 기록에 의해, 13세기의 마르코 폴로의 실크로드는 이제 21세기의 콜린 더브런의 실크로드가 되었다.

--- 역자의 말 중에서

- 노인들은 무정한 가장행렬을 대하듯 이 변모하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마오쩌둥 모자에 해어진 헝겊 슬리퍼를 신은 그들은 길모퉁이나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변화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그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전과 일본 침략 시대에 태어나서 대약진운동 시대의 기근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살아남은 그들이 이제 필요 없는 존재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머리칼이 하얗게 센 그들의 얼굴은 역사로 인해 주름살이 잡혔거나 텅 비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가끔 그들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여유만 있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고 햇볕을 쬐려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렸다. 가끔 그들의 표정이 평화로워지고 심지어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떤 행복한 기억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칠까 궁금했다.(25p)

- 고고학자 오렐 슈타인은 로프 사막의 전망대를 조사하다가 배달되지 않은 편지들을 발견했다. 소그드어로 쓰인 이 메시지들은 그 연대가 서기 313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 편지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종이 위에 쓰인 최초의 편지들이다. 글씨는 먹으로 쓰여 있다. 한 편지는 오래 잊혀진 아내의 넋두리를 담고 있다(“당신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개나 돼지의 아내가 되는 게 낫겠어요!”).
(52p)

- “그분들은 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죠. 농부였으니까요. 그분들은 내가 들에서 일을 돕기를 바라셨지요.” 그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쨌든 나는 갔지요. 하지만 열일곱 살 때 나는 다시 떠나야 했습니다. 공산혁명이 일어났고,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요. 처음에 나는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에 정부가 내게 결혼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들은 승려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게 되기를 바랐지요.”(97p)

- 사실 만리장성은 진정한 방어요새로서는 의미가 없었다. 훈족, 몽골족, 만주족은 거의 마음대로 장성을 넘나들었다. 중국학자 오윈 래티모어는 만리장성이 건설된 건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을 그 안에 가두기 위해서였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리장성은 아마 그 물리적인 방어능력보다는 엄청난 그 상징성에 의미를 두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야만성과 문명, 빛과 어둠을 갈라놓는 선이었다. 그것은 몸서리쳐지는 부정의 행동이었다. “저 너머에는 우리와 다른 인종이 살고 있다.” 만리장성은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죽은 사람들을 성벽을 따라 묻었다. 사막에서 횡행한다는 귀신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인들이 죄 지은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내쳤듯이, 중국인들은 천자의 제국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만리장성 밖으로 내던졌다. 반대자, 죄인, 그리고 심지어는 어리석은 자들까지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정화’했다.(141p)

- 그러나 중국의 불교는 개방적이었다. 여기서 그 창시자의 완성을 향한 엄격한 여행은 신비의 구름 속으로 빠져들었고, 수많은 신들로 부서졌다. 불교는 민간신앙을 흡수하기도 했다. 몇몇 성소의 경우에는 천장에 힌두교의 신들과 연꽃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심지어 머리가 아홉 개인 용과 도교의 온갖 신들─날개 달린 유령과 말, 인간의 머리를 한 새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신선─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왕모는 떨어지는 꽃보라 속으로 불사조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달렸다. 이처럼 이곳에서 꿈꾸는 저세상은 안정된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인간, 이승과 저승이 우주의 회오리바람 속에 뒤섞이고 신앙 간의 경계가 휩쓸려 사라지는 혼돈의 세계였다. 동굴 249호에 그려진 궁전은 힌두교 인드라의 궁전일까, 아니면 황제(黃帝)의 장원일까?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147p)

- 하지만 여기서 나온 문헌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문화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경건한 불경 원고는 다른 용도로 쓰인 종이를 덧붙여 빳빳하게 했는데, 이 덧붙인 종이가 불경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들은 물목, 유언장, 법률 문서, 사적인 편지 등이었다. 중국의 가요와 시도 나왔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록한 문서도 나왔다. 생리통을 완화해달라는 기도와, 심지어 죽은 당나귀에 대한 제문도 있었다. 예법편람의 한 편지는 간밤에 술에 취해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한 여승이 검은 소를 물물교환으로 얻었는가 하면, 다른 여승은 노예를 유산으로 남겼다. 어떤 사람은 차와 술이 벌이는 논쟁을 글로 쓰기도 했다. 중국어로 된 엄청난 양의 기도문 옆에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 코탄어, 투르크어로 된 문서들도 있었다. 유대-페르시아어로 쓴 편지, 파르티아어로 된 마니교 성경, 위구르 문자로 쓰인 터키 탄트라교 경, 심지어 네스토리우스파 사제 알로반이 장안으로 가져온 성경 사본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언어와 인종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153p)

- 나는 머릿속에서 그의 이 말과 씨름을 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동포들은 중국인들이 냉담하고 억제되어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집을 짓는 것을 봐도 그걸 알 수 있어요. 직사각형 아니면 정사각형뿐이지요.” 그는 두 손으로 입방체를 쌓아 올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우린 꽃처럼 집을 지어요.” 모스크의 꽃 같은 돔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음악가들이에요. 심정적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구요!”(177p)

- “당신은 베일을 쓰지 않죠?” 볕이 뜨거운 지금도 그녀는 맨머리였다.
“난 여전히 당원이에요. 내가 머리를 가린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의 분노가 되살아났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엄마예요. 난 내 아이들을 신자로 키우고 싶어요. 신은 우리 동포들에게 아주 중요해요. 그들은 매우 가난하거든요. 우리가 신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삶은 너무 힘들거든요. 그리고 당은 우리에게 뭐 해주는 게 없고.”(233p)

- 그는 어릴 적부터 마나스에 대해 배웠다. 구전되는 설화 속에서 신격화된 이 초인적인 창건자는 그의 민족에게 정체성을 주는 원천이었다. 그 외에 내세울 키르기스인이 누가 있었겠는가? 제정 러시아는 그들을 가파르고 격리된 계곡들에 정착시키고 여러 부족으로 나눔으로써, 그들이 민족의 개념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내려온 그들의 족보를 외울 수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나라였다(칭기즈도 그의 족보를 외울 수 있었다). 1924년 스탈린이 그들의 경계선을 정해주었다. 스탈린은 강압적으로 그들을 집단화했고, 그들의 언어를 적는 문자를 만들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인근에 그들의 인척 카자흐인들과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 많은 외래어를 차용해 사용하게끔 했다. 이제 소련의 비전은 사라졌고, 그들은 반신화적인 민족의 개념에 집착하고 있다.(251p)

- 원래 마나스 이야기는 여러 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언어와 경계선을 정한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이었던 것처럼, 전해오던 이 전설을 음유시인들에게서 수집하고 그것을 수정해서 더욱 발전시킨 사람들 역시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키르기스인들을 터키계의 다른 이웃 민족들과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키르기스 민족국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스탈린의 작품이었다.(283p)
--- 본문 중에서

회원리뷰 (8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2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10.0점 10.0 / 10.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7,82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