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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

시우

: 때맞춰 내리는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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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30*200*20mm
ISBN13 9788998258146
ISBN10 899825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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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가 마른 대지를 적시고 난 이튿날에는 봄바람을 따라 어김없이 고운 흙 사이로 싹이 움틉니다. 알맞은 빛과 따사로움, 수분 그리고 토양을 비롯한 조건 아래, 원래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던 풀씨는 스스로의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DNA에 새겨진 결을 따라 환경에 조응해 갑니다. 그리고 다시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변화에 맞춰 잎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구며, 한해살이풀은 생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가 다음 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 p.6

축구부 아이들로 먼지 자욱이 이는 운동장 구석자리, 석양을 바라보며 식은 도시락을 열었다. 찬밥 덩이에, 참치 김치 볶음, 구운김. 목메지 말라고 컵라면도 곁들였다. 멀리 학교 담장 너머에 안양천이 흐른다. 물가 외진 땅에 울타리 치고 양 치던 목자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람을 기르고자 목장 터에 학교를 열었다. 이십여 년의 군 생활을 마친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이모가 계신 서울 시흥동을 인생 2막 출발지로 삼았다. 그리고 그해, 사교육비를 덜 들이고도 좋은 대학에 잘 보낸다고 입소문난 문일고등학교에 나는 입학했다. 아버지는 낯선 도시에서 일자리 잡기 어려운지, 맥없이 등을 보이시며 구석에 누워계신 날이 늘었고, 어머니는 구두공장에 다니며 꼬박꼬박 적금을 부었다. 어느 날엔가 그렇게 번 돈으로 밥통을 새로 사 따순밥을 지어주셨다. 가방끈이 짧은 어머니는, 아들 형제가 공부 잘해서 당신 몫까지 배워 남부럽지 않게 자라주길 바랐다. 부담스러웠다. --- p.18

인건비 아낀다고 밤낮 2교대하던 부부.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던 손님. 알바비를 왜 적게 주냐고 펑펑 울며 따지던 여대생. 월세 갖고 거드름 피우던 건물주. 7시면 출근해 사원들을 독려하던 사장님. 프랜차이즈 체인의 공세에 버티다 망해가던 골목상점들. 그리고 나의 사회 초년병 시절. 수행자는 기부자의 재물을 좇지 않는다. 보시하는 그 마음을 살려 너른 세상에 두루 복이 되도록 인도하는 스승이며, 돈에 묻어온 고통과 슬픔까지도 풀어내는 데 수도인의 보이지 않는 적공이 있다. 참된 수행처는 맑고 밝고 훈훈하다. --- p.71

딩동’ 휘경국민학교 같은 반 E에게서 10년 만에 문자가 왔다. 만나고 싶으니 먼저 전화하란다. 동급생으로 한 해를 다녔으면서도 말 섞지 않은 사이였기에, 뜻밖의 연락에 놀랐다. 농성텐트에서 몸을 빼, 성균관 명륜당 앞 400년 넘은 은행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앉았다. 시골에서 전학 온 독특한 아이였던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E는 궁금해 했다. 수줍음 많은 내 눈에 비친 E는 문학가를 꿈꾸는 총명하고 담박한 소녀였다. 그런데 전공이 법학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성적이 너무 좋아서 서울대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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