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소설]이 보여주는 묘미, ‘그림의 나라’
이 책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그림의 나라’라는 큰 문을 열면, 차례차례 다음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문들을 다 통과하면, 소설이 처음 시작된 자리로 돌아와 책장을 덮게 되어 있다.
주인공인 오홍도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엔 서울에 있는 명문사학의 교사였다. 허나, 수업도중에 학교의 이사장 아들에게 체벌을 가해 폭력교사라는 오명을 쓰고 수모를 겪게 된다. 오랫동안 꿈을 꾸며 준비해 교단에 섰던 오홍도는, 그만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한 시간이 계속되자 오홍도의 어머니는, 그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넨다. 그것은, 13년 전에 병으로 죽은 아버지의 유물이었다. 그 유물은, 평생 동안 우리 옛 그림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일에 자신을 전부 바쳤던 아버지 오주원 선생이 남긴 소설이었다.
아버지 오주원은, 유약한 성품을 지닌 아들 오홍도가 겪게 될 풍파를 미리 예견했을까? 아들을 위로하고, 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는 소설을 선물로 남긴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그림의 나라’는, 어린 소년 오홍도가 화자가 되어 소설을 열어 보인다. 1장부터 7장까지, 각 장마다 다른 그림들과 다른 인물들을 소재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허나 그 인물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화원 김홍도와 연결되어 있다.
1장, ‘할아버지의 자화상’은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과 그 손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 채 방황하고 갈등하는 손자 휘에게, 할아버지는 가문의 허물을 내보이며 진실을 밝힌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손자의 출세와 집안의 번영을 바라고 있지만 계략을 모색하진 않는다. 오히려 몸을 낮추고 정도를 고집하며 ‘조선예원의 총수’라는 명예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과정을 일러준다. 술독에 빠져 살던 손자에게 화원 김홍도를 스승으로 삼아주며 이정표가 되어 준다.
2장, ‘그림이 있어 나는 행복하노라’엔, 김홍도를 총애했던 정조대왕과 정조의 수발을 드는 어린 내시 창희가 등장한다. 밤이면,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왕과 어린 내시 창희는 지체가 다르지만 가슴 속엔 똑같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아픔을 지니고 있다. 왕은, 그리기를 다 마친 그림 「국화」를 창희에게 보여주며 소감을 묻는데, 그 아이는 배고픈 제 어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정을 베풀고자 했던 정조대왕이 화원 김홍도에게 왜 「풍속화첩」을 그리도록 어명을 내리는지, 2장에서 들을 수 있다.
3장, ‘엿 팔아서 우리 어머니 동백기름 사드려야지’에는 단옷날 장터 씨름판에서 엿을 파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풍속화」를 그리러 다니던 화원 김홍도와 엿을 파는 아이 성호가 안성 장터 씨름판에서 만나게 된다. 농사를 짓는 양민의 자식인 성호를 그린 김홍도는 그 아이에게 점심밥을 사주며, 그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4장, ‘땅을 차고 오르면 하늘을 훨훨 난다데’는, 조선 정조시대의 예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림 「무동」에서 춤을 추는 아이 연수가 주인공이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세 살짜리 아이를 데려다 키운 연희패의 고수는, 연수를 데려온 지 열두 해째에 이르러 연수의 생일상을 차린다. 그리고 이제 아들과 아버지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그 다음날, 연희패는 대갓집의 칠순잔치에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집이다. 춤추는 아이의 신명에 겨운 춤사위가 펼쳐지고, 연희가 다 끝난 마당에서 무동과 아버지인 고수는 놀라운 그림을 보게 된다.
5장, ‘내 귀는 꾀꼬리의 봄을 듣는다’에는 화원 김홍도가 현감을 지냈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홍도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구종아이의 눈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중상모략에 빠져 의금부에 끌려가게 생긴 김홍도는 과연 어떻게 될지……
6장, ‘내 꿈은 조선의 자비대령화원이 되는 것이야’에는, 정조대왕의 직속기관인 자비대령화서가 등장한다. 을묘년, 자비대령화원들은 정조대왕의 화성 원행을 기록하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그들을 흠모하고 그들처럼 자비대령화원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인 재관이, 6장의 주인공이다. 왕의 부름으로 다시 궐로 돌아온 김홍도 화원과 그의 절친한 벗인 이인문. 그리고 이인문의 지시로 왕의 화성원행에 따라나선 재관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7장, ‘호랑이가 물어 온 아이와 그림 그리는 노인’이 소설 「그림의 나라」의 마지막 장이다. 김홍도 화원은, 태어난 해는 알려져 있으나 세상을 떠난 날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정조대왕이 그 명을 다하지 못하고 승하한 뒤, 김홍도 화원의 삶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천재화원인 그를 질시했던 재능 없고 어리석은 자들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금강산에서 가장 높고 깊숙한 곳에 작은 암자 하나가 있다. 그곳엔 늙은 스님 한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노인 그리고 호랑이가 물어 와 두 노인이 키운 아이가 있다. 장난꾸러기 아이인 선재의 입을 통해 금강산에 있는 작은 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수 년 만에 이 절엔 손님이 찾아와 한 달여를 머물다 떠나고, 아이와 노인은 그림을 그리며 그 상실감을 달랜다. 그림을 그리는 붓질 소리가 적막한 절간을 채우며, 그림들의 나라의 막이 내린다.
이제 소설은, 시작했던 문 앞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홍도. 그는, 우리 옛 그림을 진정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연구했던 아버지 오주원 선생이 유물로 남긴 ‘그림의 나라’를 다 읽고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밝고 환한 길을 찾아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