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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

작은 곰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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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96쪽 | 214g | 130*195*15mm
ISBN13 9791196517618
ISBN10 1196517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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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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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상처가 아문 터였다. 작은 곰은 몇 주 동안 꼼짝도 않고 캄캄한 고목 안에서 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청명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가문비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췄다. 사방을 덮은 초록색 이끼와 무성한 고사리로 고요한 가운데 숲은 깊게 잠든 듯했다. 잎에 맺힌 물방울이 조그마한 웅덩이로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와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숲속 오후의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곰에게는 적막으로 느껴졌다. 그날의 어미 곰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 p.9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 p.19

“바다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마침내 독수리가 입을 열었다.
들어 봤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왜일까. 작은 곰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은 곰은 그곳에 가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휘파람 소리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 p.31

한때는 어서 자라 어미 곰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미 곰은 힘이 무척 셌다. 호숫가 일대에서는 가히 덤빌 자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어미 곰이 싸움에서 진 것은 밀렵꾼과 마주친, 바로 그날 딱 한 번뿐이었다. --- p.41~42

“금방 돌아올 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다음에는요?”
“네?”
“다시 떠날 거죠?”
이 이상한 감정은 대체 무얼까. 작은 곰의 가슴 한쪽이 천둥새의 번개를 맞은 듯 심하게 아렸다. --- p.47

“이해 못 할 거예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란 이렇듯 무섭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숨어 지내는 삶이 너무 아깝잖아요. 잘 마른 나팔꽃 씨앗을 찾아서 던져 주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 설령 저 짓눌린 토끼들처럼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거죠.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어차피 나도…….” --- p.51

천공을 반으로 가르는 전나무들 사이로 어느 전설에나 등장할 만한 거대한 동물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꽂아 놓은 듯 세월의 무게를 모두 벗어던지고 장렬히 고사한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그 높이와 두께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족히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전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고사목이 처음 싹을 틔우기도 훨씬 전,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된다. --- p.61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더욱이 그 땅이 햇빛과 영양분 모두 충분한 울창한 숲이라면 씨앗은 금세 싹을 틔우고 튼튼한 줄기로 자라난다. 줄기는 수일 내에 땅속 깊숙이 촘촘한 뿌리를 내려 무성한 가지와 잎을 만들어 낸다. 악도 그 성질과 비슷하여 한번 뿌리를 내리면 빠르게 자라난다. --- p.70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잎맥을 따라 한데 모였다가 또르르 떨어지면서 퐁 하는 소리를 냈다. 먼저 떨어져 땅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다. 현재가 과거를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다. 그래도 자꾸만 옛 생각이 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 p.73

작은 곰도 어미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 하늘의 파편에 가슴을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 p.80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슬픔과 목적을 지닌 두 마리 맹수가 한자리에서 상대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목적이란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자 사명을 행하는 힘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 p.81

작은 곰은 울부짖으며 족히 수 킬로미터를 달렸다. 어쩌면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을지도 모른다. 거리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숲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 다시 혼자가 된 후였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멀리 새끼 잃은 어미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소리 없이 울렸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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