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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일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일

: 여행지에서 만난 엄마, 와인 그리고 열정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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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여행 에세이 top100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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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310g | 148*210*20mm
ISBN13 9788998690328
ISBN10 89986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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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었던 ‘아그리투리스모’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질 않았다. 재미있는 어감에 내 마음이 술렁거렸다. 이탈리아의 농가에서 일손을 도우며 머무는 여행 스타일이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밭에서 금방 따온 신선한 채소로 만든 음식을 식탁 가득 늘어놓고 “밥 먹어라!”하고 부르며 태양처럼 밝은 미소로 손짓하는 엄마의 모습.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강력한 힘이 있다. --- p.2

드디어 떠나야할 때가 왔다. 어떻게든 짬을 내서 내 눈으로 직접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이 늘 그러하듯,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와 웃는 얼굴만 있으면 어떻게든 길은 열린다고 믿는다. 튼튼한 위장과 이탈리아어 사전을 장착하고,목표는 “만자레 칸타레 아모레!(Mangiare, Cantare, Amore!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라)”의 나라로 혼자 떠나는 여행. 어른의 모험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 p.3

“본 조르노(Buon giorno, 안녕하세요)!” 민박집 주인 할머니 안젤라가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느릿한 걸음으로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기분은 어때? 푹 잤어?” 그렇다. 어젯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와인을 마시고 취기와 졸음으로 몽롱해진 나는 일찌감치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이탈리아어도 못하는 내가 이곳에 혼자 남겨지는 초조함마저 잊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하는 근심어린 목소리를 들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오늘 아침은 의외로 컨디션이 좋다. --- p.14

“뭐 만들어? 나도 할래! 나도 할래!” 마치 지브리 만화의 주인공처럼 씩씩하고 호기심 많은 무적의 세 살짜리 꼬마가 나타나자 카를라는 역시 무덤덤하게, 나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설명해주었고 베아트리체도 진지하게 듣고 있다. 한참 동안 셋이서 토르텔리를 빚었고, 첫날 아침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렇게 달랑 몸 하나만 가지고 찾아들어온 작은 민박집에서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 p.15

밖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둘이서 느긋하게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건 뭘까, 이 편안함은. 불과 며칠 전에 처음 만난 이 집 식구들과, 상상할 수 없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카를라의 부엌에는 빗소리와 함께 느긋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평온한 아침이다. --- p.19

“맞아! 하고 싶은 것에 파시오네(열정)를 쏟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야! 인생은 짧으니까. 신이 주신 천직을 만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네!” 마르코 말이 맞다. 하고 싶은 일을 만나,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다. 이곳으로 오길 참 잘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져 술 한잔 하러 가고 싶었지만,바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포도나무가 기다리는 언덕을 향해 차를 몰았다. --- p.39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하려는 용기를 낸다면 상대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그 순간 여행은 일상이 된다. 아주 조금씩 몸도 마음도 이곳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안녕, 잘 잤어?”하는 아주 사소한 인사가 이렇게 기쁠 수 있다니! 정말이지 여행이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의 연속이다. --- p.41

포데레 포르테에서는 이탈리아 내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비오디나미 농법을 채택하고 있다. 비오디나미 농법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계에 있는 것을 이용해 조합제를 만들고, 땅속에 있는 생태계를 정비해 재배하는 방법이다. 자연에서 비료를 찾고 자연에서 성장 동력을 구하는데, 잡초를 뽑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과 공존한다는 이치다. --- p.44

포데레의 토지를 바라보며 그들이 말했다. “화이트 와인도, 스푸만테도, 최고의 와인을 만들면 독립해서 이 주변의 땅을 전부 사들인 다음 와이너리를 만드는 게 우리의 야망이야!” 꿈은 클수록 신비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 꿈이 구체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끄러움 같은 건 일단 제쳐두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믿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하지만 꿈을 향해 인생을 어떻게 맛있게 숙성시킬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스푸만테가 맛있게 익을 무렵, 우리들은 어떤 건배를 하게 될까. --- p.49

혼자 떠나는 여행은 늘 조마조마하지만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인연에 먹먹해질 정도의 행복한 순간도 만나게 된다. 평범한 하루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스펙터클한 하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 p.51

시에나의 거리는 아름다웠다. 대성당 부속 미술관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마가 근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좁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와 보니 눈앞에 숨 막히는 광경이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산, 토스카나의 구릉, 고도 시에나의 거리. 모든 것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감 중에 번트시에나라는 오렌지가 섞인 짙은 황갈색이 있는데 그것은 이 경치가 황혼에 물들 때를 표현한 색이라고 한다. 인정! 하늘과 맞닿은 오렌지색 지붕과 중후한 석조건물들이 일제히 노을에 물들었을 때, 당연히 색 이름으로 쓰고 싶어지는 광경이었다. --- p.52

지도를 들고 찾아간 곳은 유기농 카페인 ‘카페라떼’. 작은 진열장에는 수제 케이크가 있고 아담한 실내에는 낡은 의자가 늘어서 있다. 테이블 크기도 제각각이라 척 보기에도 문과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조용히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커피와 함께 오후를 보내기에 딱 좋은 카페다. 도시에는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숨겨진 장소가 존재한다. 하나씩 둘러보며 다니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 p.65

어느 나라에 가든 나는 시장을 궁금해한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음식’이 모이는 장소에는 그 도시가 가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흥미롭고, 그 토지가 내어준 맛을 만나는 것 또한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곳이 이탈리아라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피렌체에 있는 몇몇 시장 가운데 도시 중심에 자리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중앙시장이다. 그 규모와 범상치 않은 외관만 봐서는 언뜻 시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발자국 들여놓으면 그곳은 이탈리아인들의 위장을 채워주는 원더랜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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