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예언자, 혹은 영원한 이단자
그녀가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Cold Spring Harbor) 연구소는 이제 그녀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바바라 매클린톡 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연구소에서조차 매클린톡은 ‘다른 세상에 사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발견한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은 이미 정설로 인정되었지만, 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그녀와 다른 이들 사이의 괴리감은 아직도 넓고 깊기만 하다.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물론 매클린톡이다. 그러나 이 현상은 그녀가 제외된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확인되고 재발견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녀의 작업 결과는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업 방식이라든지 설명하는 방법과 논리 등은 여전히 학계에서 수용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벨상 수상이 이슈가 되면서 그녀의 특별한 작업 방식이 세간에 회자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전제 하에 그녀를 인정하는 과학자가 소수 생겨난 것은 사실이지만, 매클린톡은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선 과학계의 이단자로 남아 있는 상태다. 바바라 매클린톡의 일대기가 단순히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 같은 동화, 즉 세상의 몰지각한 편견 속에 천덕꾸러기로 묻혀 살다가 어느 날 진실이 빛을 발하며 지난 세월을 모두 보상받게 되는, 그런 가슴 벅찬 이야기의 틀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 여성의 삶을 단편적으로 조망하는 식으로는 결코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다단한 맥락 속에 얽혀 있다. 따라서 그녀가 걸어온 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아는 것뿐 아니라 학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나아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성찰도 이루어져야만 한다. --- p.12~13
늘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사람
언젠가 매클린톡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과학을 하는 것이 자기가 지닌 능력과 덕목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기꺼이 그것을 선택했다. 그때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일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길인 동시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계약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그녀는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짜는 한편, 무엇보다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보람을 얻고 자긍심도 느낀 그녀는, 자신이 정한 원칙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지켜야 하는 원칙, 품고 가야 할 가치가 그녀에게는 확고했고, 심지어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바로미터이자 삶을 지탱시키는 믿음이기도 했다.
이런 성향이 지나치게 강하면 타인과 화합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 추가된 또 하나의 난제는, 그녀의 말투가 너무나도 직설적인 데다 상대방의 정곡을 찌른다는 점이다. 촌철살인이라 할 정도로 투명하고 날카로운 그녀의 말솜씨는 종종 주변 사람들을 당혹감에 빠지게 했고, 심한 경우 괜한 적개심을 일으켰다. 그녀는 일단 입을 떼면 한달음에 모든 걸 꿰뚫어서 설명했고, 상대가 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얼굴 가득 드러나는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매클린톡은 코넬에 있을 때부터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사람들은 그녀가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쉽게 상하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곧 그녀에게 거리를 두며 멀어졌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미주리에 와서도 그녀의 어법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유창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곤 했다. 아닌 무엇이 밥 넘기려는 목에서 치밀어 올라오곤 해, 좀처럼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 p.179~180
보았다’, 그러나 ‘보여줄’ 수는 없었다
사실 매클린톡이 본 것을 똑같이 본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응시와 더불어, 거기서 보이는 그림을 함께 읽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과학자의 눈은 곧 예술가의 눈이 되어야 한다. 예술 세계에서 소통은, 어떤 세계를 함께 보고 그 안에서 통용되는 규칙뿐 아니라 가장 내밀한 지식과 감각까지 공유한 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다시 말해 공동의 지식에 의한 현실 판단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각 또한 공유해야지만, 비로소 서로 간에 언어가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소통의 전제는 곧 어떤 눈으로 어떻게 보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예술과 시각(Art and Visual Perception)』이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감각이 바깥세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그 형상을 새기고 이를 해석하는 데는 언제나 의식의 차원과 무의식의 차원이 함께 작용한다. 무의식의 차원 역시, 의식의 차원에서 특정 대상으로 감지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각 대상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의식과 무의식은 결코 별개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물을 ‘보는 일’에 모종의 주관적 요소가 내재함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보는’ 능동적 행동에는 보는 자의 고유한 방식이 반드시 전제되기에, 누구도 그 자신의 관점을 완전히 벗어난 채 어떤 사물을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어떤 사물을 본 결과는 그런 결과를 산출해낸 시각의 내면적 요소로 규정되기에, 완전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판단이란 사실상 있을 수 없게 된다. 보는 행위에 내재한 이와 같은 주관적 시점이 일상에서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일상적 차원에서 다른 이들과 대략이나마 소통할 수 있는 시각을 이미 충분히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과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영역에서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경계가 한결 모호하고 까다롭다. 더욱이 과학과 예술 모두 일상적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현상들에 관심을 갖기에, 이런 현상을 감지할 수 있는 ‘내면적 응시’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내면적 응시’를 통해 어떤 원리를 깨친다는 말은 한낱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 게 아니다. 이는 과학의 현장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구체적인 능력으로, 특히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조적 순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중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학적 상상력(The Scientific Imagination)』이라는 저작을 통해 이와 관련한 주제를 다룬 제랄드 홀튼(Gerald Holton)은, 그 구체적인 예로 노벨상을 받은 두 사람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Millikan)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을 꼽으며, 두 사람의 고유한 시각이 그들의 창조적인 작업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흥미롭게 묘사하였다.
--- p.304~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