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은, 그냥 불이 아니라 인육의 불, 한 남정네 욕정의 불이 타면서 그걸 만들었다는 거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에밀레종 전설처럼, 무슨 인신공양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선생님께선 그렇게 할 자식도 없는 줄 알고 있는데요. 뭐 혼자서 수도승처럼 살아왔으니, 수도자들이 금욕 수련할 때처럼 손가락을 태웠다는 말씀이겠죠. 때론 문학·예술가들도 소지(燒指)하거나, 팔뚝 허벅지 같은 곳을 태워 소신(燒身)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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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부라면……?”
“말 그대로 불 때는 화부(火夫)요. 아참 그렇지, 나도 가마에 불 땐 사람이니까 화부네요. 그러니까 화장장이 화부와 도자기 굽는 화부가 합작해서 만든 백자라는 뜻입니다.”
“화장장이 화부가 가마에서 도자기 구울 때 불 때는 걸 거들었다, 그 말씀입니까?”
박 기자는 거참 재밌다, 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고, 명진은 여전히 알아먹기 힘든 말을 했다.
“불 때는 걸 거들었다? 허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자기 몸으로 불을 땐 거와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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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한담? 끝까지 의도적인 살인사건으로 몰고 가? 그러기엔 증거가 아직 미약하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김찬돌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사실만 있지, 사체에 특별히 폭행당한 흔적이나 흉기에 의한 상처 자국이 없고. 목과 가슴 부위에 살짝 긁힌 자국이 있긴 하나, 이 정도 가지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엔 어렵고. 현장에서 체포되었을 당시, 홍기대는 어떠한 흉기도 소지하지 않았다 하니……. 부검자료에도 급성 심장 정지에 의한 사망이라는 내용 외 피부에 긁힌 자국만 있을 뿐, 타격으로 인한 외상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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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은 이제 흙으로 도자기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불 때는 철학자가 될 모양입니더. 선배님한테는 이제 좋은 형수만 옆에 계시모 인생 팍팍 펴일 건데―.”
‘형수’라는 단어가 근수 입에서 나오자 상철이 급히 말을 자르며 나무랐다.
“근수 너! 갑자기 형수 말은 왜 끄집어내 인마!”
못할 말을 한 것처럼 근수가 입을 꼭 다물곤 명진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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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에 쿵, 벼락이 떨어졌다.
‘아니, 이럴 수가!’
사건 당시에 이걸 발견하지 못한 후회로, 나는 마구 가슴을 치고 싶었다. 앞에 기대 할머니만 없다면.
‘홍기대 사건 수사할 때, 그의 주변은 물론 집까지 압수수색 다했는데, 어째서 이걸 발견하지 못했지? 아, 그때 발견했어야 했어, 그때! 압수수색까지 해놓고 이걸 놓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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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검은색도 신비하고 황홀하며, 심지어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스정교회 사제와 가톨릭 신부들의 옷이 검은 건, 성스럽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 이맘들도 검은색 옷을 입고, 유태교 랍비들도 검은 모자와 외투를 입지 않습디까? 종교와 관련해서 한마디 더하면, 불교의 마하칼라, 우리말로는 대흑천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엔 위대하다는 뜻과 암흑이라는 뜻이 함께 내포돼 있어요. 즉 정반대의 대비 개념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습니다. 관념상으로, 검은색은 죽음 또는 음기, 모순이면서도 신성 또는 신비로움을 상징하므로, 이때의 암흑은 완전함이란 뜻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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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들어서지 않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사실 아내가 그 말할 때까지 우리는 아기가 생기지 않는 문제로 싸우거나, 아기를 갖기 위해 애쓴 적이 없었다. 불임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거나 검사해볼 생각도 없었다. 서로가 앞길 개척에 전력투구하느라, 어쩌면 그동안만큼은 아기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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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여인의 육체인 양 끌어안고선 “아이~씨, 아이~씨.” 하고 욕과 괴성이 뒤섞인 동물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어이쿠! 어이쿠!” 자탄하며 소나무 허리에 이마빡을 몇 번이나 짓찧고서는. “뒈져라, 썩을 놈!” 하고 침을 뱉은 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음에도 욕정이 가라앉질 않아 나는 억지우격으로, 불방망이를 움켜쥔 채 어기적어기적, 몇 걸음씩을 뗐다. 누가 볼세라 산행 중에 다리가 아픈 것 같은 시늉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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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이 도자기 굽는 사람들은 가마를 여신으로 받들기 때문에, 가마지을 때는 물론 불을 땔 때 여자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우리 아버지도 옹기 구울 때 그랬고. 여자가 들락거리면 여신이 질투해서 일을 그르친다는 옛말에. 해서 불을 끄고 기물을 들어낼 때도 가마 안에는 남자만 들어가도록 한다. 가마 밖에서 기물을 받아내는 것쯤은 여자가 거들어도 괜찮지만. 여성 출입금지를 아무리 미신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그렇지, 세상에! 내가 작품 만들려고 불 때는 가마 아궁이에 어찌 니가, 다른 사람도 아닌 니가, 일 때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거기 들어가서 섹스를 하자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너와 나, 둘 다 변태가 되자는 거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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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등대를 좀 보소. 등댓불이 점(點)하고 멸(滅)하는, 그 점멸이 배를 인도합니다. 우리 인생도 점했다, 멸했다, 점멸하는 겁니다. 한자로 멸자를 쓰지만 등댓불의 멸은, 인간으로 쳤을 때, 죽음이 아닙니다. 등댓불의 죽음이란, 전원이 끊기거나 폐쇄되는 경우니깐. 등댓불과 같이 인간에게도 멸의 시간이 있어야 점의 시간, 즉 인생의 빛이 충만해집니다. 그 멸의 시간을 실패 또는 고생으로 보거나, 그 순간을 피하려고 목숨을 내던져선 안 됩니다. 한발 물러나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개선의 시간, 내 아집과 애욕을 멸각시키는 대오(大悟)의 시간으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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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사람 시체를 천 도 넘게 하루 이상 태우면, 글쎄요. 뼈는커녕 소나무 장작처럼 재도 안 남든지, 설사 재로 남아도 미숫가루 같이 되든지, 안 그렇겠습니까?”
“그만치 높은 온도로 태우면 냄새도 안 나겠네. 화장로에선 천 도 아래로 태우니까 냄새가 나요. 천이백 도 이상으로 태우면 냄새가 거의 안 날 텐데, 기름 값 계산도 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요즘에는 가스 화장로에다 연기를 모두 집진 기계장치가 빨아 당겨, 냄새도 덜하고 깨끗하오만. 그때는 경유 화장로라 연기도 많이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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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라워하며 문조를 선택했다. 이 새는 원래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반도 쪽이 근거지이나, 옛날 학식 높은 문인과 양반들이 관상용으로 키우면서 문조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특히 부리가 붉고 온 몸이 백색인 백문조는 품위 있는 새라기에.
순남이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앞으로 내 이름 대신 “문조 씨”로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쑥스러운지 혀를 날름, 내밀었다.
고것. 혀를 빨아 먹어버리고 싶은 욕동을 숨기고 내가 물었다.
“미남새를 택하였으면 뭐라고 부르려고 했는데요? 미남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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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색광이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잠시 기억을 챙긴 명진이 유진에게 그간 있었던 유나와의 관계, 소문 등을 속속들이 말해 주었다. 집요하게 섹스 탐닉에 빠진 사실과 가마 아궁이에서 발가벗고 나뒹군 짓까지. 지금은 숨기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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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회 측에선 고맙다며 홍 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뭘,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묻습디다. 그래서 내가 떠올렸는데, 홍 군이 엄마와 같다는 시집 안쪽에 카나리아와 문조가 쓰여 있었어요. 아마 그 새들이 기대의 부모들만이 통하는 별명이거나 어떤 인연 관계가 있지 않겠나 싶어, 그 얘기를 했지요.
그 말을 듣고 수녀회 측에서 ‘날개’라는 시집 제목처럼 홍 군이 훨훨 날아 하느님 곁으로 가길 바란다며, 그 두 종류의 새를 키우기로 했답디다. 요양원 바깥에 두면 환자들 정서에 도움도 될 것 같고, 또 행여 홍 군과 관련 있는 사람이 오면 그 새가 홍 군이라고 여겨도 될 것 같다면서.”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기대가 정말, 훌훌 털고 새처럼 하늘로 날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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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교수가 옷을 벗었다. 하얀 살결에, 젖가슴이 통통하고, 다리는 매끈하였다. 가마 아궁이엔 장작불이 타고 있어 따뜻하고 아늑했다. 불빛이 너울거리며 그녀의 육체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때론 붉은색으로, 때론 주황색으로, 때론 노란색으로, 때론 형광색으로.
그녀는 “나, 처녀예요. 가질 테면 가져보세요.” 하고 음부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불의 혀가 날름날름, 새까만 거웃을 태우고 음부를 핥는 듯했다.
그녀가 흰 천을 바닥에 깔았다. 알몸으로 천에 누워선, 다리를 뻗고 가랑이를 벌렸다. 그녀가 올라타라는 손짓을 했다.
“흰색이 순결이라고 했죠. 나도 처녀막 있어요. 순전해요. 정자도 흰색이에요. 자,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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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자들에 따르면 색욕이 두드러진, 그야말로 정욕이 육신에 꽉 찬 기질을 가진 이들이 따로 있다고 했소. 사주에 쥐, 토끼, 닭이 세 개 이상 들면 그렇다는구려. 내 사주에는 그게 네 개나 들었답디다. 뭐 인륜과 도덕성을 떠나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 딸을 성노리개로 삼는가 하면, 자기 며느리를 범하는 남정네들도 있었잖소. 정욕을 참지 못해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음란행위를 하다가 들킨 검사도 있다는 뉴스를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닐게요.
나도 예전에 부장검사까지 지냈소만, 그와 같은 팔자를 타고 태어났다 하오. 나의 과잉 색욕이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쳤고, 한 젊은이를 죽게 했소. 그 젊은이가 바로 그 여자의 아들이었으니, 내 죄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게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