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은 곧 인류가 어떻게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는지, 그리고 어쩌면 인류가 어떻게 자연을 통제하려고까지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떻게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익혔는지, 어떻게 서로를 지배하려고 싸웠는지, 어떻게 갈수록 바빠지는 세상에서 사생활을 모색했는지,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고 제정신을 유지하려 분투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소리의 역사는 고대 로마에서 관중이 격렬하게 내지르는 함성, 중세 부자와 빈자 간의 권력투쟁, 산업화에 따른 긴장, 전쟁이 미친 충격, 도시의 대두, 언론매체가 하루 24시간 쏟아내는 지껄임 등등을 아우른다. 이 모든 것들을 훑어가면서 우리는 인류 역사의 대서사뿐만 아니라 그 속의 내밀한 측면에도 줄곧 귀를 기울이게 된다. - 머리말 p.12
우리가 인류의 연대표를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과거를 현재보다 마법적인 ‘구전’의 시대로, 현재를 과거보다 이성적인 ‘문자’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실상 청각 문화(듣기)와 시각 문화(보기와 읽기)를 구분한다. 더 나아가, 읽기가 주도권을 잡은 뒤로는 시각이 더 종합적이고 신뢰할 만한 감각으로 간주된 반면 청각은 수동성, 미신, 풍문 등과 결부된 채 뒤처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 흔히 시간이 흐르면서 시각이 승리하고 청각은 격하되었다고 간주하면서, 이제는 듣기가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든가, 듣기란 소극적 행위라든가, 본 것이 들은 것보다 증거로서 더 낫다든가, 서양에서 발생한 현상이 동양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고들 짐작한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과연 옳은지 속속들이 따져보아야 마땅하다. 소리와 듣기의 사회사는 그런 짐작이 틀렸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머리말 pp.15~16
통신 기술의 발달이 우리를 더 가깝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곳 샬럿스퀘어를 비롯해 당김줄이나 벙어리 웨이터를 설치한 수많은 주택에서, 기술은 오히려 사람들을 서로 멀리 떨어뜨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인들을 더 이상 문간이나 복도에서 서성거리게 할 필요가 없었다. 주인 가족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격리했다가 필요할 때 불러내면 그만이었다. 라몬트 일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비로소 사생활이 보장되었다. 누구도 엿듣지 않는 가정생활을 꾸릴 기회를 제대로 거머쥔 것이다.
그러나 사생활에는 대가가 따랐다. 인류학자들이 옳다면, 인간은 벽과 닫힌 문 뒤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뭔가를 잃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들린다는 것을 앎으로써 인간은 불안해하기보다는 안심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다. (…) 사람들이 부근을 오가는 소음, 설핏 들려온 대화, 심지어 뒷공론까지도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해주는 배경음 노릇을 한다. 역으로, 사람은 가청거리에서 벗어나면 남들과도 멀어져 고립되고, 외면당하고, 오해를 산다. - 4장_권력과 반란, ‘18. 주인과 하인’ pp.230~231
북 치기가 위험하다고 최초로 경고한 사람들은 16세기부터 가나, 나이지리아, 앙골라, 콩고 등지에 정착한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한 선교사는 “지옥 같은” 북이 “불법인 잔치와 유흥에서 흔히 사용된다.”라고 기록했다. (…) 선교사들은 뿔피리나 북 연주자들이 왕과 궁정에 연관되어 있음을 잘 알았으므로, 북을 두드리는 리듬이 모종의 군사 신호를 포함한다고 의심했다.
(…) 그리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입법자들은 이런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면 노예에게 “북이나 나팔을 비롯한 시끄러운 악기를 사용하거나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그들이 사악한 계획이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서로를 부르거나 신호를 보내거나 통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래스가 지적하듯, 이 법이 1740년에 새로 도입되자 “노예가 북을 친다는 언급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의 식민지 기록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 4장_권력과 반란, ‘19. 노예들의 반란’ pp.238~239
옛날에 사람들은 노동요를 부름으로써 밭 갈기, 고기 잡기, 옷감 잣기 등등 각종 노동의 리듬을 인체의 리듬, 즉 숨을 쉬고 몸을 굽히고 손발을 움직이는 리듬에 맞추곤 했다. 이런 노래 덕에 일은 견딜 만해졌고 일꾼들에게는 서로에 대해 노래를 부르거나 마을 괴짜들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심심풀이 삼아 중매를 설 기회가 주어졌다. 노동이 진행되는 속도는 자연 조건과 현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산업화된 노동은 이와 같이 섬세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엉망으로 흐트러뜨렸다. (…) 노동자는 산업화 이래로 죽 “귀를 찌르듯 윙윙대며 돌아가는 탈곡기” 앞에 “말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계음이 너무나 시끄러워서 노래하거나 수다를 떨기는 불가능해졌고, 자연의 리듬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효율이 요구되면서 노동자는 자신을 기계에 맞추어야만 했다. - 5장_ 기계의 부상, ‘21 산업혁명의 소음’ p.269
우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 너머를 통찰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과거 인류도 소리에 담긴 미묘한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기분을 조절하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잇는 데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도움을 받았다. 귀로 듣고 이해한 세상은 눈으로만 보고 이해한 세상과는 판이할 수밖에 없다.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과거 인류의 삶을 주관적인 측면으로나 사회적인 측면으로나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 맺음말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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