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수는 2000년 이후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 약 1500대가량의 택시가 운행 중이다(≪노컷뉴스≫, 2016.3.29). 2013년부터 평양시는 영업용 택시 운행을 허용하기 시작했으며, 고려항공 직영의 택시 운수 회사, 대외봉사총국 운수 사업소 택시 회사, 운수무역회사 소속 택시 회사, 승용차관리소 소속 택시 회사 등 10개의 회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영업용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차종은 중국에서 생산된 비야디BYD가 대부분이나 최근 홍콩 회사에서 500대를 추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콜번호(186)로 운영되는 콜택시, 미화 결제 가능한 나래카드 사용, 기본요금 첫 2㎞까지 2달러, 이후 1㎞당 56센트 부과, 밤 9시 이후는 2배의 심야 요금 적용 등 택시가 대중교통의 미진함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_40~41쪽
‘핵 무력 완성’이라는 안보 상황의 변화와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주변 요소의 변화이지 ‘체제 유지’라는 핵심 요소의 변화는 아니다. 김정은이 체제 보장을 전제로 비핵화 군사 협상을 추진하고 있고, 핵 무력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군사 도발을 중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도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을 선택한 것이다. 경제는 핵 무력을 완성한 다음의 선택이었다. _73쪽
1년차와 굳이 비교한다면 2년차에는 개인 욕망의 층위가 달라졌다는 점, 특히 군 지휘관과 가족에 대해 엄격한 경계가 나타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3년차 [포성없는 전구]에서는 ‘성적으로 문란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경계하기’, ‘돈에 배신하지 말기’를 강조한다. 3년차에는 외부 세계에 대한 경계가 증가했다고 하겠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김정은 정권 3년 동안은 군 관료 경계, 개인 욕망 경계, 외부 세계 경계를 강조하는 양상이 포착된다고 하겠다. 군 관료 경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권 초기 ‘비대해진 군을 정상화시키고 당-국가 체제를 회복’하려는 김정은의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_113쪽
연구 결과는 6년에 걸친 육성 신년사 중 2015년 신년사만 제외하고는 성취동기 이미지가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김정은 위원장의 개인적 특성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성취동기 이미지라고 조심스럽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선행 연구에서 전 시기에 걸쳐 높은 성취동기 이미지를 나타냈던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체제 유지를 위해 한반도를 긴장시키는 초강경 조치를 취할 때에도 동시에 출구 전략을 같이 모색했던 지도자였다는 점과,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한 북한 지도자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한북미 관계 개선 과정에서 짧은 시간 내 북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시키는 노련한 정치력과 외교력을 보여주었다. _133~134쪽
북한은 주민들의 사회적 일탈에 대해 실정법에 근거해 법적 처벌로 통제하기 위해 2004년부터 2015년 사이 범죄 규정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전개해왔다. 체제 내부 단속, 즉 주민들의 각종 위법행위 및 범죄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자 여러 가지 형사·행정 처벌 정책, 즉 범죄 규정화 정책을 실행해왔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은 법적 근거와 무관하게 물리적 강압으로 주민 일탈을 통제해오던 방식을 점차적으로 법적 근거에 따라 법적 처벌로써 통제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_169쪽
김정은이 통일 유훈으로 삼은 조국 통일 3대 원칙 중 민족 대단결 담론은 1991년 신년사에서 통일 방안을 언급하며 남북 화해와 체제 공존의 민족주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분단의 원인을 외부의 힘, 특히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에 돌리고 줄기차게 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북한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체제 전환 국면에서 ‘하나의 조선’ 정책을 고수할 수만은 없었다. 1991년 유엔 동시 가입과 4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두 개의 조선’인 것을 인정한 셈이다.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론에서 설명하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는 비록 2국가로 명시하지 않을지라도 내용상으로는 비판의 대상이었던 남한의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와 유사한 통일 방안이다. _196쪽
북한의 사경제화는 아직 제도적 보장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으나, 전반적인 시장화 흐름에 따라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90년대 경제난으로 북한 당국의 계획경제 및 배급제가 사실상 와해되면서 시장화가 급진전되었으며, 돈주들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자발적 사유화, 토지 이용권, 주택 시장, 운수업 및 통신업, 금융업 부문에서의 사경제화 진전이 눈에 띄게 나타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_224쪽
경쟁력 있는 세수 우대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금 혜택과 관련해 지적될 수 있는 문제는 세수 특혜가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발 단계에 따라 개발 초기에는 인프라 건설 산업에 혜택을 집중하는 등 세수 혜택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특구별 주력 산업에 따라 산업별 세수 혜택을 달리하는 등 탄력적인 조세정책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의 법제도하에서 투자 장려 부문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매번 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더욱이 개별 지방급 경제개발구는 주력 산업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기본법상의 투자 장려 부문 규정만으로는 경제개발구의 주력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개별 경제개발구의 지방정부나 관리 기관이 투자 장려 부문을 독자적으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경제개발구의 효율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_245~246쪽
국제사회에서는 2015년 이후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목표를 두고 전 지구적 발전 이슈에 접근하고 있다. SDGs는 2015년 종료한 MDGs를 승계해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사회, 경제, 환경 분야를 망라해 지속가능한 발전과 빈곤 종식을 위해 전 세계가 함께 추구할 목표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전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실현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야 할 것이며, 국제사회의 주요 공여국과 공여 기관들 또한 전 지구적 발전을 위해 북한개발협력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_257~258쪽
남성의 정치 참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학력, 연령, 장사 경험, 생활수준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학력과 연령이 높을수록 통제적 정치 참여가 높으며, 시장 활동의 부재는 당의 노선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령이 높을수록 정치 문제 논의 정도가 높으며, 생활수준은 정치 문제 논의와 외부 정보 접속과 정적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통제적 정치 참여는 정치의식에 영향을 주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활총화 참가 정도가 높고 당의 노선 인식이 강할수록 집단주의 의식이 높게 나타났으며, 높은 수준의 당의 노선 인식은 높은 수준의 적대 의식과 관련되었다. 반면 자율적 정치 참여가 높을수록, 성 평등 의식이 높을수록 적대 의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 평등 의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탈북 연도와 연령으로 나타났는데 탈북 연도가 최근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성 평등 의식이 높았다. _322~323쪽
관계 맺기의 방식이 변화하기는 했으나 불평등한 기존의 젠더 구조는 남아 있고, 오히려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남성이 우월적인 존재의 위치에서 여성을 돌보고 있고, 여성은 순응적이며 남성의 선택을 받기 위한 여성성 유지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화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여과 없이 습득, 수행함으로써 기존의 가부장적 젠더 관계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_345쪽
남한 영상물이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을 잊는 ‘탈출구’가 되었다는 점도 핀란드 TV에 대한 에스토니아 체제 전환 후 평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안정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은 동독의 서독 TV 시청에서도 동일한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점에서 북한 주민의 남한 영상 매체 시청이 북한 체제 내 불안정성과 연관된 분석이 아닌 안정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양자를 모두 염두에 두고 북한 내부로의 외부 정보 유입이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분석돼야 할 것이다. _376쪽
이 과정에서 중국과 대만은 오랜 분단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사회제도와 생활양식, 지리적 환경의 특징, 여러 가지 방언 등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두 개의 사회가 형성되었고, 언어와 문자 역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과 북한도 중국과 대만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이념과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교류마저 단절되어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 등 여러 분야에서 동질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남과 북의 어문규범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남한에서는 북한 사전을 참조할 수 없고 북한에서는 남한 사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한용운, 2015: 200∼201). 이러한 상황은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이 왜 필요한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_391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