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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하실래요 3

차 한잔하실래요 3

[ 완결 ] 제로노블(Zero Novel)이동
김지아 | 동아 | 2018년 12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8 리뷰 5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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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528쪽 | 620g | 147*210*35mm
ISBN13 9791163021155
ISBN10 116302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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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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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에서 환생했다. 그리고 내가 환생한 나라, 메시리아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는 헨더슨 가문의 이자벨은 대낮에도 술을 퍼먹는 지독한 술꾼이었고, 그녀의 벌건 얼굴은 이 아름다운 장소에는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가 차를 마실 때, 저 홀로 포도주를 고집하는 그녀가 왜 하필 내 옆에 앉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게 분명했다. 멜바른 62년산 포도주는 아주 독한 술이다. 윌리 경과 버젠 경의 결투를 보며 수다를 떨어 대는 이자벨에게서는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황제가 참석한 황실 정예 기사단 수련장. 빳빳한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등장한 윌리 경과 버젠 경은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예의 지긋하고 지루한 결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루한 공기 사이로 공터 한구석에 마련된 귀족 여인들의 천막에서는 요란스러운 소란이 벌어졌다. 워낙 자주 있는 싸움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할 일 없는 귀족 여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난데없이 벌어진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소란의 주인공은 메시리아의 미치광이로 정평이 난, 퀼트 공작가의 금지옥엽 레나타였다.
“흐어엉! 제발 놔주세요, 퀼트 영애!”
레나타에게 머리끄덩이를 붙잡힌 소녀는 레나타보다도 한참은 앳되어 보였다. 나만큼이나 작은 키에 주황색 곱슬머리를 한 소녀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열넷을 넘을 것 같지 않았다. 얼굴이 제법 익숙한 것으로 보아 제도에 얼굴을 꽤 자주 비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귀족가의 여식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미치광이 레나타의 소문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레나타를 도발하는 모습이 신기하긴 했는데, 기어코 그녀의 이성을 엇나가게 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나는 황성의 시녀들이 만들어 놓은 시원한 천막 그늘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너 나 할 것 없이 레나타와 소녀에게로 쏠렸다. 이제는 기사들마저 이쪽을 쳐다본다. 나는 왜 난장을 치는 건 저들인데 창피함은 내 몫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했다. 두 여자의 보기 흉한 싸움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시선엔 여인을 향한 폄훼가 깃들었다. 대부분 사람은 레나타가 으레 그렇듯이 패악을 부리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실제로도 그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전생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 속에서 비중이 없어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백작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패악을 부리고 있는 저 여자, 레나타는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녀였다.
“놓긴 뭘 놔? 이 여우 같은 계집! 너 죽고 싶니?”
레나타가 소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가릴 것 없이 좌우로 흔들었다.
“난 분명 경고했었어! 조반니에게서 떨어지라고!”
끼어들어서 말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평화주의자였고, 레나타는 성격 파탄자다. 그리고 문제의 주인공 조반니는 바로 이 나라의 황제였다. 이 자리는 황제가 참석한 윌리 경과 버젠 경의 결투 자리이고 말이다. 나는 황제 앞에서 깽판을 벌이고 있는 레나타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있던 소녀들이 겁을 먹고 목을 움츠렸다. 옆에 서 있던 시종 하나가 빈 찻잔에 쪼르르 찻물을 따르는 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나는 수많은 신료들의 틈에 둘러싸여 앉아 있는 황제 조반니를 보았다. 확실히 그는 모든 여자가 한 번씩 꿈꿨을 이상적인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거기다 더해, 그는 이 나라 최고의 지위를 가진 남자가 아니던가. 햇빛에 반짝이는 주황빛 금발이 영롱했고, 남자다운 체격과 걷어붙인 소맷자락 사이로 보이는 힘줄에 여자들이 침을 삼키는 것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의자에 늘어지듯 무료하게 앉아 시녀들의 부채질을 받는 황제의 얼굴엔 표정이랄 것이 없었다. 결투를 방해하고 패악을 부리는 저의 소꿉친구 레나타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지 하품까지 한다.
“치워.”
황제 조반니의 한마디에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일방적으로 어린 소녀를 구타하는 레나타를 떼어 냈다.
바닥에 눈물을 흩뿌리며 조반니를 간절히 바라보는 몸집 작은 소녀도 내 눈에는 꼴사나웠다. 머지않아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면 그녀들의 패악이 얼마나 더 꼴사나워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소박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악녀 레나타와 관련된 일에는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냥, 차 마시며 구경이나 하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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