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순수한 욕망의 시대, 가질 수 있는 것만을 욕망하였던 시절. 자기 자신을 벌주거나, 위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 귤 하나에 감동하였던 시절. 욕망이 덜 익은 무화과와 같아, 맑고 순수한 꽃이 아직 과육의 육감적인 향기에 섞이지 못하던 때. 그것에 아직 좀벌의 애벌레가 슬지 못하던 때. 그 순수의 시대.
---「귤의 시대」중에서
할아버지는 말년에 위암으로 고통받다가 돌아가셨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극한의 고통으로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셨고, 귀가 귓불 아래로부터 위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친척 누군가가 귀가 말려 올라가면 임종이 가까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유품은 안경, 낡은 나침반, 대나무통, 그리고 대나무 가짓대 정도가 전부였다. 그 작은 죽간들에는 뜻 모를 한자와 기호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것들은 육효(六爻), 팔괘(八卦) 등 주역과 관련된 상징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체계를 가진 독특한 역학자(易學者)이셨던 것 같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니, 작은 오두막 안에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세계를 스스로 일구고 계셨던 것이다.
---「할아버지」중에서
‘나답다는 것은 뭘까?’
이름에는 경계가 있지만, 늘 확고하지는 않다. 난 이름의 경계가 파도치는 곳에서 서핑하는 것을 즐긴다.
---「명명(命名)」중에서
외할아버지는 다다미방에 원환의 열차 디오라마를 설치하고, 모형 전차를 열심히 달리게 하고 있었다. 당신이 50여 년간 늘 같은 시간에 출퇴근했던 신바시(新橋)역의 모형도 한쪽에 세팅해 놓고, 전차를 잠깐 세운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다시 열차를 출발시키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매우 진지하게 말이다. 그때 외할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어린아이마냥 행복해하시던 외할아버지의 그 눈.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중에서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재미있다고 해 주고, 박수를 친다. 그러나 어리석음에 장단을 맞추다가 결국 그런 어릿광대짓이 내면화되어 버린다. 나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유로 온갖 쇼를 펼쳤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다는 것, 자신의 내면을 잃어간다는 것. 결국 어리석게 끌려 다니는 자신의 모습에 엄청난 환멸감을 느끼게 되고, 나는 강의 공포증에 걸려 버렸다. 그때 본 질르의 모습,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의아해하는 그 눈.
---「앙투안 와토,『피에로 질르』」중에서
우울증을 앓으면서, 우울증을 표현하는 데에도 많은 은유들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칠은 그것을 ‘검은 개’라고 하였으며,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추락한다’, ‘끝없는 어둠’ 등의 은유 표현을 사용한다. 나도 이 우울증을 ‘정신의 실금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도 우울증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뿐, 그것은 그러한 표현들이 감히 닿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는 아픔이다. 우울증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증상을 폄하하기 일쑤이다. 우울증과 우울감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중에서
나는 내 생애에서 자주 부딪히는 두 자아를 조화시키지 못한 채 방치해 놓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부정하였다. 그렇다고 일본인으로서의 자아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한국과 일본 양측의 자아를 모두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조화시키며, 내면에 속한 ‘한국인 vs. 일본인’의 대립을 지양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한국인 & 일본인’의 내면적 혼합을 지향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인류에 속한 자들로서, 한국인 일본인을 넘어 평화를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던 선각자들이 있다. 나도 남은 인생은 그들의 평화 지향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그 단초로 삼기 위해서는, 일생을 그러한 자세로 살아오셨던 분, 내 가장 가까이 계신 어머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