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애인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그걸 윤서후 씨가 왜 물어요?”
가은은 서후의 말에 애써 태연한 척 말했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만약 지금까지 남자 한번 사겨보지 못한 걸 알면 얼마나 비웃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 가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흠, 가은 씨의 대답에 따라 제 대답이 달라지니까요.”
가은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커피나 마시고 가라고 말하고는 손에 쥐고 있던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그럼 없는 걸로 알고 말씀드리죠. 저랑 연애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푸웁!”
“악, 이, 이게 뭐하는 거야!”
가은은 서후의 말에 마시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그의 얼굴로 뿜어냈다. 서후는 가은이 뿜어낸 커피를 얼굴에 뒤집어쓰게 되자 놀라서 비명을 지르면서 가은에게 소리쳤다.
“켁케, 컥, 미안해요. 이, 일단 이걸로 닦아요.”
가은이 너무 미안한 마음에 옆에 있던 휴지를 마구잡이로 뽑아서 서후에게 내밀자 그걸 신경질적으로 받아낸 서후가 얼굴을 닦았다. 얼굴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던 가은이 이제야 서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하고는 버럭 소리쳤다.
“당신 미쳤어요?”
“미치기는 누가 미쳤다고 그럽니까? 그리고 내가 아까 고기 집에서 물 튀겼다고 지금 복수하는 겁니까? 젠장, 찝찝해 죽겠네.”
휴지로 얼굴을 닦으면서 커피에 들어간 설탕으로 진득진득한 느낌이 찝찝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서후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봅니까? 그리고 제 질문에 왜 대답을 하지 않습니까?”
“무, 무슨 질문이요.”
“나랑 연애하자고 이 여자야!”
서후가 답답한지 큰 소리로 말했다.
“연애? 당신이랑 나랑? 당신 미쳤나 봐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
가은은 서후가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측은하게 쳐다보면서 친절하게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했다.
“이 여자가 자꾸 미친놈 취급하는데, 나 제정신이거든!”
“제정신이고서야 어떻게 연애하자는 말이 나와요? 당신이랑 나랑 만난 지 겨우 몇 번이고 그리고 우린 서로 원수 사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요?”
가은은 서후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자신이 왜 상대를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만 했다. 분명 자신에게 몇 번 당하더니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당하고도 연애를 하자는 말을 하다니 말이다.
“젠장, 그래 우리 몇 번 안 본 사이죠. 그런데…… 당신한테 끌, 끌…….”
서후는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평소 여자들에게 거절당해 보지 못한 자신이라서 오기가 생겨서 그럴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자존심에 오기로라도 반드시 가은과 사귀기로 마음을 굳혀 버렸다.
“무슨 소리에요? 큰 소리로 말 못 해요?”
가은이 서후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답답하다고 소리치면서 말했다.
“당신한테 끌린다고! 젠장, 그래 처음 뺨 맞고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당신을 보고 끌리는 걸 어떡해. 그러니깐 우리 일단 연애부터 해보자고 내 감정을 알 수 있을 때 까지만 말이야.”
서후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이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와 버렸다. 자신조차도 무슨 말을 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젠장,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서후의 황당한 말에 가은은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평소 남자와 가깝게 지내지 않은 가은으로서는 처음 받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학교 다닐 때 자신의 활달한 성격으로 많은 남자들의 고백이 따랐지만 그때마다 가은은 그저 콧방귀만 끼고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대부분 고백의 대상들이 자신을 동경한다는 연하의 남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더는 없었다. 그런데 서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가은은 속으로 떨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헛소리 할 거면 얼른 나가요. 그리고 내가 당신과 왜 연애를 해요?”
“진짜 이럴 겁니까? 당신도 솔직히 나한테 끌리지 않아요?”
서후의 말에 가은이 당황해서 강하게 부정을 하지만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건 사실이다.
‘미쳤나 봐. 저 남자 한마디에……. 그래, 저 남자가 미친 소리를 해서 내가 당황해서 그럴 거야.’
“무, 무슨 아니에요!”
“아무튼 연애합시다! 일단 연애해보고 서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나 정도면 당신한테 행운 아닌가? 설마 연애 초짜라니 뭐 남자가 내가 처음이니 뭐 그런 건 아니겠죠? 그 나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 해본 건 아니죠? 참, 나랑 한 키스가 첫 키스라니 뭐 그럴 수…….”
가은은 서후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순간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서후를 잡아끌어 문밖으로 밀어 버렸다.
“이, 왕자병에 변태 싸이코 똥파리! 당장 나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봐라!”
가은은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서후에게 쏘아붙여주고 가게 문을 쾅 닫아버렸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가은은 씩씩대면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뭐? 행운? 지랄 웃긴다. 이 꼭 먹다 버린 옥수같이 생긴 주제에 변태 싸이코 왕 똥파리!”
너무 흥분한 나머지 들고 있던 빈 생수병이 찌그러지는지도 몰랐다.
서후는 가은의 손에 끌려서 가게 밖으로 쫓겨나자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이 여자가 정말! 내가 뭘 잘못했다고 또 성질을 부리는 거야! 아우, 그래 됐다. 됐어. 내가 너 말고 여자가 없냐? 웃기는 군.”
서후는 가게 안을 한번 째려보고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동안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자신처럼 완벽한 킹카가 연애하자는데 왜 거절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은은 어제 자신의 가게에서 갑자기 연애를 하자는 서후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밤새 잠 한숨도 못 잤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