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이후 역시 직장생활에 치이곤 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여행을 떠나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고 그 속에서 신체적, 정서적으로 반응하며 행복해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 나 스스로를 알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나를 계속해서 여행으로 이끌었다. 우리 앞에는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기나긴 길이 100여개 놓여있었다. 서로의 헤드랜턴만이 길을 밝혀주는 암흑 속에서 그의 호흡소리와 나의 호흡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는 느낌이 묘했다. 앞서가던 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멈추면, 이내 그도 멈춰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걷기 시작하면 그 역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재촉하거나 추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고 함께 호흡하고 발걸음을 맞춰 가는 것. 그 순간 이것이 바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를 뚫을 기세로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한밤중에 우르르 쾅! 소리를 내며 천둥과 번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 잠에서 몇 번이나 깰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다행히 비는 멈추었으나 이번엔 거센 바람이 불어와 텐트를 흔들어댔다. 텐트를 열어 밖을 보니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었다. 전날 오후부터 계속된 비로 전날 하이킹을 마칠 때 즈음에는 레인 재킷 속에 입은 셔츠며 바지, 배낭까지도 모두 젖었었다.
“사실은 나도 마을에서 쉬고 싶었어.” 혹여 내가 마음을 쓸까봐 짐짓 너스레를 떠는 그가 고마웠다. 물론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겠지만 내가 괜한 걸 걱정했나보구나 싶었다. 우리가 신혼이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평생 동안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던 따뜻한 샤워가 이 길 위에서는 아주 소중하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장거리하이킹에서는 특별한 일이 된다. 한국에서는 밤늦은 시간에도 전화 한 통이면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치킨을, 하이킹 내내 떠올리다가 마을에 도착해서 먹었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보라. 땀 뻘뻘 흘리며 엄청난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산 정상에서 마시는 콜라 한 잔의 맛을 상상해보라. 이 작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내 스스로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어떤 것을 희생하거나 큰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행복해지는, 조건부적인 것이 아니다. 행복의 주체는 오롯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 자체가 내 삶의 행복임을 실감하고 있다. “오믈렛 먹을 거지? 계란 몇 개 먹을래?” “두 개 정도?” “겨우 두 개밖에 안 먹어? 끝까지 AT를 걸으려면 많이 먹고 힘내야지!!” 그는 바로 ‘오믈렛가이’라는 트레일네임으로 알려진 트레일엔젤이었다. 뉴햄프셔 쪽에 가면 길 위에서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트레일엔젤이 있다고 놓치지 말고 꼭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 들어왔는데, 오늘 바로 그를 만난 것이었다. 한 번에 계란 세 개를 먹어본 적이 언제였나.
나는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100m 남짓한 버진로드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거나 하이킹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상대방에게 조금씩 맞춰가는 머나먼, 때로는 험난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다. 몇 박 며칠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긴 신혼여행을 택했다. 신혼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하고 행복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우리 두 사람은 여느 신혼여행보다 의미 있는 여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에 절대적인 지지와 동의를 보냈다. 그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부부로 함께 하는 삶을 준비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에 지쳐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한 논의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세상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에 직접 부딪히고 그 일들을 해결해나가야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해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답답하게 규정짓고, 때로는 보호해주었던 조직생활이 없다. 더 이상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식트레일을 나타내는 흰색과 사이드트레일인 하늘색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흰색이나 하늘색이나 어느 하나 틀린 것은 없다. 대신 여기로 가면 빨리 가는 곳, 이곳은 잠시 딴눈 파는 곳으로 모두 옳은 길일 테다. 잠시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차이이고, 속도나 거리의 차이일 뿐. 우리 삶에는 이런 색 구분보다는 그 어떤 것도, 즉 방황이든 직진이든 간에 모두를 옳다고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회사일 때문에 삶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재빠르게 그 고통의 끈을 끊어내는 것, 즉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옳은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원인 모를 패배감과 실패감 등을 감당해내야 하고, 한동안은 힘듦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나의 첫 번째 퇴사가 그러했다. 그 이후 감정의 소모가 적지 않았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업무적으로 만족감도 있고 일과 삶에서 만족감이 있을 때, 그리고 직장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삶의 만족감’이 있을 때 퇴사하는 것, 그것이 잘 떠나는 것이 아닐까를 작은 경험에서 터득하게 되었다.
2년간의 신혼여행을 하고도 아직 금전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은 조금 독특한 우리 여행방식이 7할은 차지한다. ‘두두부부’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두 바퀴의 자전거와 두 다리의 하이킹으로 여행을 지속해오면서 우리의 대부분 이동수단은 자전거 혹은 두 다리였다. 그러다보니 여행경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교통비가 크게 절약된다. 비록 버스나 자동차에 비해 상당히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계 곳곳을 더 자세히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음악을 끄고 걸었다. 인위적인 소리를 끄자, 바람소리, 땅 위의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 소리,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순간 아주 단순하면서도 큰 울림이 마음에 와 닿았다. 자연의 소리, 나와 그의 조용하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소리, 그리고 존재 그 자체가 이 긴 길을 걷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여자가 장거리하이킹을 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만일 내가 그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니지 않았다면, ‘여자 혼자 여행하는데 위험하지 않아요?’라는 질문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별에 대한 차별적인 잣대를 포함한 질문이어서 ‘여성인 내가 장거리하이킹, 혹은 여행을 하면서 힘들어야 하나?’라고 불필요한 자기성찰을 하게 만드는 다소 불편한 질문이기도 하다.
147일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AT를 열렬히 사랑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날이 덥든, 평범한 날이든 굳세게 AT를 바라보았다. AT와 함께 뜨거운 여름을 치열하게 보냈으며, 함께 울고 웃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AT와의 추억만을 잘 간직한 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3,500km의 장거리하이킹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기회가 된다면 인생에서 이런 기회를 한번쯤은 가져보길 추천한다. 오롯이 자연에 몸을 맡기고 온몸으로 위대한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때로는 하염없이 약하기도 때로는 위대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AT라면 좋겠지만, 꼭 이 길이 아니어도 좋다. 이것만이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장거리하이킹이 아니어도 좋다. 반드시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장기간의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스스로를 마주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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