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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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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의 전쟁

황원갑 | 바움 | 2012년 04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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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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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404g | 153*224*20mm
ISBN13 9788958831020
ISBN10 89588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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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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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동쪽 하늘이 허옇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적함이 치열한 접근전에서 불타고 부서졌다. 그러나 적군은 우리보다 수적으로 거의 2배나 되는 500여 척의 대함대였다. 관음포에서 도망칠 물길이 막히자 적군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선봉에 섰던 나와 진린의 전함이 번갈아가며 적선들에게 포위당했다. 그때마다 나와 진린은 포위망을 뚫고 서로를 구원하는 한편, 적선을 한 척 한 척 계속 격침시켰다. 나는 쉴 새 없이 북채를 들어 둥둥둥둥! 전고를 울리고 독전기를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했다.
나는 적선 가운데 한 층각선(層閣船) 위에 적장 세 놈이 타고 지휘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적선에 접근하여 활을 들어 적장 한 놈을 쏘아 죽였다. 그러자 그때 진린의 배를 포위 공격하던 적선들이 층각선을 구출하기 위해 한꺼번에 이쪽으로 몰려왔다.
전투는 더욱 격렬하게 이어졌다. 단 한 놈의 왜적도 살려서 돌려보낼 수는 없다! 나는 더욱 힘껏 전고를 울리고 독전기를 휘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홀연히 날아온 탄환 한 발이 나의 왼쪽 겨드랑이를 관통하여 심장 가까이에 박혔다.
치명상을 당한 나는 갑판에 쓰러지면서도 전투를 걱정했다. 맏아들 회와 조카 완(莞), 몸종 금이(金伊)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방패로 내 앞을 가려라.”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더라도 알리지 마라.”
그것이 나 이순신의 최후의 명령이요 유언이었다.
나는 대장선 지휘소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아, 모든 것이 이제 이렇게 끝나는구나! 나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지나온 54년의 일생이, 그 장면 장면들이 쉴 새 없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서장 노량대첩’ 중에서

나 이순신은 을사년(인종 1년, 1545년) 3월 초여드레 자시(子時, 밤 11시에서 이튿날 오전 1시 사이)에 서울 건천동에서 덕수 이씨(德水李氏) 정(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 부인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나의 자는 여해(汝諧). 이름자의 신은 항렬이며, 순은 고대 중국의 전설상 인물인 순 임금을 가리키니 곧 ‘순 임금의 신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에서 맏형은 희신(羲臣), 둘째 형은 요신(堯臣), 아우의 이름은 우신(禹臣)이니 모두가 중국의 복희씨(伏羲氏)와 요·순·우 등 이른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나의 자 여해도 『서경』에 나오는 순 임금의 말인 ‘왕재여해(往哉汝諧)’, 곧, ‘네가 가서 화평케 하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내가 태어난 자리에는 현재 보잘것없는 기념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목멱산 남쪽 기슭 건천동­마르내골 이웃은 묵사동­먹절골이고 그 동네에서는 뒷날 영의정을 지낸, 나보다 세 살 위의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살고 있었다. ---‘제1장 출생과 성장’ 중에서

나는 왜란에 대비하여 거북선 연구에 침식을 잊다시피 했다. 다행히 부하 중에는 조선(造船)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나대용(羅大用)이란 군관이 있었다. 나대용은 나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오로지 거북선 건조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거의 완공 단계에 있었다. 나는 그 모습과 성능에 대하여 당포해전(唐浦海戰)에서 승리한 뒤 장계를 통해 이렇게 보고했다.
“신은 일찍이 왜적의 침범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건조하였습니다. 앞에는 용두(龍頭)를 만들어 달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못을 박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이라도 능히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
거북선이 완공된 것은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거북선을 비롯한 전함 건조와 더불어 힘을 기울인 것은 해전에서 사용할 각종 화포와 화약의 제조와 비축이었다. 특히 당시까지는 해전에서 주병기로 사용하지 않던 천·지·현·황 등 각종 포와 거기에 사용할 대장군전·장군전·화전 및 철환 등과 화약 준비에 큰 힘을 기울였다. ---‘제4장 전라좌수사’ 중에서

이번 한산도와 안골포 해전에서 나는 병력과 전함에서 적군에 비해 상대적 열세였으며, 지리적 이점도 얻지 못했으나 불리함을 딛고 적의 대함대를 여지없이 무찔렀다. 해전이 끝난 뒤에 보니 아군의 피해는 전사 19명, 부상 114명이었다.
이튿날인 7월 11일부터 적군을 수색하며 항해하여 가덕도와 한산도를 거쳐 13일에는 여수 본영으로 회군했다. 나는 여수로 돌아오자 전과 같이 전사자들은 구휼법에 따르도록 하고, 부상자들도 치료에 최선을 다하도록 조치했으며, 유공 장병들은 전공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하여 후히 포상했다. 그리고 나머지 전 장병에게도 그 노고를 치하했다.
이번 제3차 출동에 따른 한산도와 안골포 해전을 합쳐 뒷날 한산?첩(閑山大捷), 또는 견내량대첩(見乃梁大捷)이라고 불렀다. 이 한산대첩으로 남해를 거쳐 서해로 북상하여 수륙병진하려던 왜군의 기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으며, 수군의 참패 결과 평양성을 점령하여 지원군을 기다리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마침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산대첩은 이후 임진왜란 해전의 양상을 변모시켰다. 왜군의 대표적인 수군 장수가 모두 참패함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수군에게 “조선 수군을 만나면 싸우지 말고 해안에 성을 쌓고 수비만 하라”는 해전금지령을 내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6장 한산대첩’ 중에서

나는 이처럼 난리가 나면 도망이나 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공론이나 일삼는 엽기적인 임금과 대신들의 아우성에 따라 해임되고 ‘조정을 속이고 적을 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는 죄목을 뒤집어쓴 채 선전관에게 잡혀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후임자인 원균에게 군사·무기·군량 등을 정확히 인계하고 그 달 26일 돼지우리 같은 남거에 실려 수많은 백성과 군사가 비통하게 울부짖는 가운데 서울로 끌려갔다.
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붙잡혀 서울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군사와 백성이 길가에 쏟아져 나와 앞길을 가로막고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통제사 대감! 저희를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사또! 이제 앞으로 우리 백성들은 어찌 살라고 하십니까?”
내가 서울로 압송된 것은 3월 4일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의금부 옥에 갇혔다.
나의 죄명은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적을 놓아주어 나라를 저버린 죄, 남의 공로를 빼앗고, 남을 죄에 빠뜨린 죄 등 네 가지였다.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기망했다는 죄목은 이균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른 것이고, 적을 놓아주었다는 죄목도 전적으로 허구에 불과했다. 또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말은 부산포의 왜군 진영에 불을 지른 것과 개전 초의 전공이 모두 원균의 것인데 내가 가로챘다는 것이니, 네 가지 죄목 모두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고 황당무계하기 그지없었다. ---‘제9장 백의종군’ 중에서

그 해 9월 16일 명량해협에서는 바다의 일대 혈전이 벌어졌다. 왜 수군이 133척의 대함대인 반면 조선 수군은 전선이 겨우 13척, 여기에 전함이라고 할 수 없고 어선이나 마찬가지인 탐망선 32척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전멸하다시피 대패한 뒤라 장수나 군사들이나 겁을 먹고 제대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별진군(別進軍)이 보고하기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선이 명량해협을 거쳐 바로 우리가 진치고 있는 우수영을 향해 들어온다고 했다.
명량해협으로 들어온 적선은 133척이었지만, 해협 남쪽 넓은 바다에는 500여 척에 이르는 왜 수군 본대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선봉대 133척이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물길을 열면 그 즉시 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북상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적선 출현 보고를 받는 즉시 출전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바다로 나가자마자 이내 적의 함대에게 포위당했다.
휘하 장수 모두가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지레 겁을 먹고 주춤거렸다. 미리 도망치려고 기회를 엿보는 자들도 있었다.
선두에 나섰던 통제사의 상선(대장선)이 먼저 적선들에게 포위당했다. 나는 몸소 기를 휘두르고 전고를 울리며 독전했다. 목이 터져라 하고 소리쳤다.
“두려워 말라! 왜선 백 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할 수 없다!”
“쏴라! 쉬지 말고 쏴야 이긴다!”
화포수들은 쉴 새 없이 천자포·지자포를 발사했고, 사수들은 빗발처럼 화살을 날렸다. 나는 겹겹이 포위한 적선 사이를 뚫고 손수 활을 쏘며 전투를 지휘했다. 그리고 영기(令旗)를 흔들어 뒤처져 있는 아군 전선들을 불러냈다.
거제현령 안위(安衛)와 중군장 김응함의 배가 먼저 달려왔다. 나는 칼을 휘두르며 목청껏 소리쳤다.
“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친다고 어느 곳에서 살 줄 아느냐?”
그 소리를 들은 안위가 급히 적진 속으로 돌격했다.
“김응함아!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네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가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하리라!”
김응함이 또한 이내 적진 속으로 돌격했다.
이를 보고 있던 왜군 대장이 휘하의 전선 2척으로 하여금 안위의 배를 공격하게 했다. 적선 2척이 안위의 배에 바짝 붙어 왜병들이 개미떼처럼 배에 오르려고 악을 썼다.
안위와 그의 부하들이 죽을힘을 다해 창검과 몽둥이로 치고, 수마석 덩어리를 던지는 등 힘껏 싸우다가 그만 지쳐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안위의 배 옆으로 대장선을 몰고 가서 빗발치듯 포와 활을 마구 쏘아 적선 3척을 거의 다 섬멸했다. ---‘제10장 명량대첩’ 중에서

“이렇게 되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이순신이 죽은 뒤 회가 탄식하자 완이 이렇게 받았다.
“지금 만일 곡성(哭聲)을 내었다가는 온 군중(軍?)이 놀라고 왜적들이 다시 기세를 얻을지 모릅니다.”
“그렇다! 그리고 또 시신을 온전히 보전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회와 완은 터지는 울음을 참고 이순신의 시신을 선실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지휘대로 나와 전고를 울리고 독전기를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했다. 그래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적군은 물론 아군도 이순신의 전사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대장선에 같이 타고 있던 이순신의 심복 군관 송희립(宋希立)도 몰랐다.
그렇게 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날 정오 무렵이 되자 노량해전도 마무리가 되었다. 관음포 해역에 들어온 300여 척의 적 함대는 200여 척이 불타거나 부서져 격침되고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며 전멸하다시피 대패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는 남은 배 50여 척을 이끌고 사천 쪽으로 달아났다. 예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도 노량해전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는 틈을 타 직할 함대를 이끌고 멀리 남해를 우회하고 칠천량을 거쳐 부산으로 도주했다.
처절한 해전이 끝난 그날 11월 19일 남해 관음포 해상은 조명 수군 장졸의 통곡으로 떠나가는 듯했다. 전투가 대승으로 끝난 뒤 통제사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바다는 온통 비통한 울음소리로 울렁거렸다. 조선군은 물론 진린을 비롯한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도 울었다.
---‘후기-천추의 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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