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무슨 일로 왔느냐?”
하얀 빛의 사람 형상이 말했다. 거대하면서도 완벽한 화음의 소리였다. 더 이상 다른 음계가 들어설 수 없는 최상의 조화를 이룬, 성스럽고 아름다운 소리가 천상의 합창 같았다.
“아…, 어찌 이곳까지 직접…. 들으셨겠지만, 저희가 살 수 있게 지구를 테라포밍하겠습니다.”
함대의 대장은 하얀 빛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듯 예를 갖추어 말했다. --- p.21
불현듯 기리의 머릿속에 인생, 삶, 죽음, 희망, 사랑, 믿음, 의학, 종교 등과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라도 좋아졌을까?’
기리는 지금,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 p.60
창조론은 어떤 마술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필요할 때마다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창조론은 진화의 점진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거나 현재의 지식수준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 즉 어떤 커다란 갭이나 도약이 있다는 의미야. 물론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그것이 정말 누군가의 창조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수준의 지식에서만 이해가 가능한 진화일 수도 있어. --- p.100
빅뱅 이후 20분 정도가 지나면 그때부터 빅뱅 이후 38만 년까지를 전자기파 시기라고 해요. 입자와 반입자의 상호 쌍소멸의 결과 입자가 남게 되는 시기예요. 간단히 말해 입자와 그 반대 성격을 지닌 반입자가 서로 충돌하여 사라지면서 광자를 발생시키죠. 근데 입자가 반입자보다 많아서 살아남은 것은 입자뿐이라는 말이에요. 여러 파장의 빛, X선, 적외선, 자외선, 전파 등이 혼재되어 있지만 아직도 세상은 암흑세계고요. 빛이 온도와 압력에 갇혀 있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 p.108
지금까지의 이론으로 본다면 우주의 탄생은 딱 한 번의 폭발로 지금까지 왔고, 그 과정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짧은 시간과 긴 시간의 조합이었다는 점, 그리고 우주가 성숙해지는 데 필요한 환경이 제때 만들어져야지만 우리가 지금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 --- p.115
노아가 방주를 띄웠던 일은 사실일까요? 만일 사실이라면 언제 있었던 사건일까요? 어쨌든 성경에는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돼요.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가사일 수도 있고, 다른 사회, 다른 문화권,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되던 것이 기독교에 흡수되었을 수도 있고요. 가능성은 모두 열어두고 하나씩 진리를 추구해나가야죠. --- p.152
믿음은 알아서 믿는 것과 알지 못하는데도 믿는 두 가지의 믿음이 있겠죠. 저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믿음만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눈으로 보고, 귀로 확인하고, 피부로 느껴서 아는 것은 저에게 믿음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냥 지식이에요. 믿음과 앎의 차이죠. --- p.179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나는 시점도 지구 탄생부터 대충 10억 년이 흘렀을 때야.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는 대략 15억 년. 그렇다면 이런 고원핵생물과 같은 초기 생명체는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을까?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졌을까? 바로 무생물이야. 물, 공기, 돌, 먼지… 이런 것들로부터 만들어졌지. --- p.188
달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물은 지구로 쏟아내고, 자기 자신은 파편이 되어 지구 밖을 돌다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밤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달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구의 동생이나 자식이 아니에요. --- p.228
예수님은 조용히 자라셨어. 눈에 뜨이지 않게. 한두 마디 하신 것은 기록에 있지만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고 그를 칭송할 수 있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 조용히 어떤 시점을 기다리신 거지. 또는 그렇게 자라도록 교육받으셨지. 그것이 인간적인 아버지 요셉의 역할이었지. --- p.260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 믿음도, 아무 생각도, 아무 고민도, 아무 연구도, 아무 검증도, 아무 진리 탐구도 하지 않고 사는 무의미한 삶이야. 신자들도 비신자들이 볼 때 그냥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집단으로 보이지 않고 신의 존재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지. --- p.264
“하하하. 지혜의 과일이 정말 사과일까? 사과가 아니야.”
“예? 옛날부터 사과라고 해서 다 사과인 줄 아는데요? 그럼 대체 뭐예요?”
“오히려 바나나에 가깝지. 황금빛을 띠고 있는 노란 바나나.” --- p.279
바보 원숭이가 뒤로 돌아서더니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두 발로 섰다. 직립한 원숭이는 다른 수컷 원숭이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었다. 수컷 원숭이들은 갑자기 공포심을 느낀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 p.306
동막골 부대원들은 바보 원숭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직립보행을 보이고 불의 사용법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원숭이들은 손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뭇가지로 불을 피울 줄도 알게 되었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화식(火食)을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턱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 p.316